황금만능주의에 물드는 청소년사이버 세계의 돈맛에 빠져 '허우적'

[10대 도박중독] 한탕주의가 아이들을 망친다
황금만능주의에 물드는 청소년
사이버 세계의 돈맛에 빠져 '허우적'


“열 번을 잃어도 단 한 번에 만회할 수 있어요. 난 불사조에요!”

지난해 5월 119에 의해 서울의 한 정신과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 A(15ㆍ중학교 3년)군. 그가 도박에 빠지게 된 과정은 아이들에게 황금만능주의라는 비뚤어진 가치를 심어 준 가정 교육, 아니 우리 사회의 폐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A군의 아버지는 화투에 빠져 집을 날린 전형적 도박 중독자. 특별한 벌이가 없는 그는 무능력자임에도 “돈이 최고다”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A군이 점점 아버지의 한탕주의 가치관에 물들어 간 것은 필연이었다. 주의가 산만하고, 공부에 흥미가 없어 학교 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그의 방황은 시작됐다. 괴로운 현실에는 고맙게도 유일한 탈출구인 도박이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에 비례해,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결국 가출, PC방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데, 이상하게 컴퓨터 앞에 앉으면 힘이 솟는다. 정신이 바짝 들고, 며칠 밤을 새도 피곤할 줄 모르겠고….”충동 조절 장애의 일종인 ‘병적인 도박증’.

이 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사이버 세계에서 환상의 돈 맛에 빠져드는 풍조는 비단 A군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교복을 입은 채 청소년들이 휴대폰으로 사이버 도박을 즐기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이제 드물지 않다. 이민수 고려대 의료원(안암병원 우울증센터)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의 약 1%가 도박 중독자로 추산된다”며 “중년기 이후 도박에 빠져 들기 시작하는 여성들과 달리, 남자들은 대개 사춘기에 도박 중독이 시작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A군의 경우. 청소년이 도박에 빠져드는 원인으로 부모의 역할 상실이나 사망, 황금만능주의 가정관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성인까지 이어지는 중독성
최근 확산 일로여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우울증’도 청소년을 도박의 늪에 빠져들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전교 10등 안에 들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에 속하는 B군(18)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겨울, 인터넷 도박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친구에 의해 PC방에서 발견될 당시, 그는 현실과 사이버 세계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나락에 빠져 있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3개월째 병원과 가족 치료를 병행하여 받고 있는 그는 ‘가면성 우울증’이 도박이라는 비행으로 번진 경우다. 이 교수는 “우울증의 변형으로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청소년이 실제 도박 중독자보다 2~3배는 많다”고 말했다. 도박벽에 빠진 아이들의 대부분은 답답하고 울적한 심사에서 일단은 벗어나 보려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차츰 생활리듬이 흐트러지고, 성적이 떨어지는 등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일상에서 벗어나 가출과 비행으로 이어지는 일탈로 빠져들게 된다”며 그들의 특성을 전했다. 청소년 도박 환자들은 도박 중독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받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보통 3~4개월 입원 치료를 하면서 ‘도박 사회’가 아닌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강조다.

청소년 도박은 중독성이 성인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정상적 생활 패턴을 잃게 해 사회의 낙오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 대책이 시급하다. 이 교수는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도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아 효과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치료를 위한 당국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3-17 16:43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