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불신으로 시장 가파른 성장세, 미래 성장성 큰 시장

[먹는 물 전쟁] 수입 고급 생수 국내 소비자 공략 본격화
수돗물 불신으로 시장 가파른 성장세, 미래 성장성 큰 시장

#1:‘세계 3대 광천 지역에서 추출해 더 깨끗하고 건강한 물, 천연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천연 광천수는 오직 ㅇㅇ뿐입니다. ㅇㅇ는 우리 몸에 유익한 10여종의 광물질과 용존 산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 좋은 물입니다.’ #2:‘알프스 안에서 3만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낸 지하 암석층이 바로 깨끗한 물 ㅇㅇ의 모태입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천연 필터의 작용을 하여 칼슘과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을 함유한 세계 최고의 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내 생수(먹는 샘물) 시장에서 선두권으로 꼽히는 한 토종 업체와 수입 업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각각 올려진 홍보 문구들이다. 어디 이들 업체뿐일까. 생수 업체들은 저마다 하나같이 자신들의 생수가 천혜의 환경에서 길어 올려진 최상의 물이라고 자랑한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생수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소비자들의 귀에 속삭이는 유혹이다.

현재 국내서 생수를 제조하는 업체는 올 1월 기준으로 72개에 달하며, 공장 소재지는 경기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팔도를 망라하고 있다. 한 업체가 여러 종류의 생수를 제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브랜드 숫자로는 100개에 가까운 생수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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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불신으로 시장 가파른 성장세
이처럼 생수 업체들의 백가쟁명이 연출되는 까닭은 수돗물 불신 풍조가 뿌리 깊이 박힌 상황에서 생수 시장의 파이가 꾸준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생수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는데, 2004년 기준으로 그 규모는 2,500억~3,000억원 대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2010년쯤에는 생수 시장의 규모가 연간 5,000억원 대로 커질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도 나온다. 시장의 성장성으로 미뤄 업체들이 사활을 거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모두가 대박을 터뜨리는 것은 아니다. 생수 시장에도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엄연히 있다. 70여개 업체 중 30여개 업체는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OEM)으로 다른 업체에 납품만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이다. 나머지 업체들 중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제법 내세울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진로석수(진로), 동원샘물(동원F&B), 제주삼다수(제주도지방개발공사), 풀무원샘물(풀무원), 퓨리스(하이트맥주) 등 상위 5개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절반에 가까운 44%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생수 수입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생수 시장이 다국적 생수들의 전장이 된 것이다. 현재 환경부에 생수 수입 판매 업체로 등록된 곳은 올 1월 기준으로 42개에 이른다. 더 늘어날 여지도 많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생수 수입 판매업을 할 의사를 갖고 문의 전화를 해오는 경우가 하루 서너 건씩은 꼬박 꼬박 있다”고 말했다.

수입 생수들의 원산지는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10여개 국으로 다양한 편이다. 생수 원산지별 수입업체 수를 보면 일본이 13개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북한이 7개, 캐나다ㆍ중국이 5개 등의 순. 하지만 수입 물량으로 따지면 프랑스가 압도적인 1위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로부터 수입되는 생수량은 전체의 80%를 웃돌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가 ‘에비앙’ ‘볼빅’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눈에 띄는 것은 북한이 2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국내에 2003년 첫 선을 보인 북한 생수의 수입 물량은 남북 경협 활성화 등에 따라 크게 늘고 있다. 북한 생수의 주요 취수지는 금강산, 신덕산, 묘향산 등 청정 샘물로 이름난 곳들이다. 백두산 천지 샘물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

이처럼 수입 생수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시장 점유율은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국내 생수 시장에서 수입 생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기준으로 고작 1% 선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산 생수에 비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비싼 가격 탓에 대다수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물의 도전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웰빙 열풍과 일부 계층의 고급 물에 대한 수요 증가로 수입 생수는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27%(금액 기준) 정도의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

외국계 거대 생수 업체의 한국 시장에 대한 직접 공략도 거세지는 추세다. 세계 최대 식품 업체 중 하나인 스위스 네슬레의 계열 회사인 네슬레워터스가 국내 상위권 생수 업체인 풀무원샘물과 지분 합작을 통해 진출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네슬레워터스는 ‘퓨어라이프’ 등의 글로벌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생수 시장을 주무르는 강자다.

‘에비앙’ ‘볼빅’ 등 세계적인 생수 브랜드를 가진 프랑스의 다농이 롯데칠성음료와 손을 잡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와 제품 경쟁력을 가진 에비앙 등이 롯데칠성음료의 유통망을 이용한다면 말 그대로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생수 시장이 점차 토종과 외국 브랜드의 경쟁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탄산수·해양심층수 등 고급 물에 주목
생수 시장이 커지면서 새롭고 고급스러운 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빙하수, 탄산수, 해양 심층수 등이 원수(源水)의 특이성과 기능성을 앞세워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청정 지역의 빙하를 녹여 만든 빙하수로는 캐나다 산 ‘아이스 에이지’와 에콰도르 산 ‘빌카구아’가 소비자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케이스다.

갈수록 시장이 커지는 탄산수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탄산 가스를 첨가했기 때문에 식품위생법상 청량음료로 분류되는 탄산수는 생수 시장과는 별개로 현재 연간 300~400억원 정도의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탄산수 시장에서는 일화 등 토종 업체 외에 프랑스 산 ‘페리어’와 영국 산 ‘타이난트’ 등 외국 브랜드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탄산수는 그 안에 녹아 있는 기포가 위ㆍ장 기능을 활성화시켜 소화 기능을 촉진하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는 탄산수가 생수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화 초정탄산수 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유럽에서는 탄산수가 생수보다 더 일상화돼 있다”며 “국내 탄산수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볼 수 있지만 향후 10~15년 정도 지나면 생수 시장을 대체할 정도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양 심층수도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을 끌고 있는 물이다.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수심 200m 이하의 심해에서 길어 올린 해양 심층수는 오염 물질이 탔?없는 데다 인체에 필수적인 미네랄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린파워’라는 브랜드로 해양 심층수를 수입 판매하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해양 심층수는 고혈압, 당뇨, 혈액 순환 장애 등을 개선하는 효능 덕에 일본에서는 전체 물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일상화 돼 있다”고 말했다.

해양 심층수는 2002년 9월 국내에 처음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서울 강남의 부유층을 상대로 먼저 인기를 끌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가격이 일반 생수의 20배에 달하기 때문에 대중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식품위생법상의 제약도 해양 심층수의 보급에는 장애 요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식품위생법은 물의 의학적 효능에 대한 홍보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확대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국내 물 시장은 이처럼 달아오르고 있지만 한편에선 시큰둥한 시각도 없지 않다. 종류와 브랜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먹는 물로서 별다른 차별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환경부 토양수질관리과 임성재 사무관은 “생수 업계에서는 미네랄이 많고 적음을 따지기도 하지만 함유 물질에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본다”며 “수입 생수들도 수질 검사를 해 보면 국산 생수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산 생수의 수질이 오히려 낫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그런 때문인지 국내 생수 업체들의 수출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뿐만 아니라 식수가 부족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현재 국산 생수가 수출되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4-07 17:5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