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부활] 淸溪川 시민 품으로 다시 흐르다


드디어 청계천 귀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2003년 7월1일 착공된 복원 사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많은 시민들은 청계천 복원이 가져 올 환경 개선 등 긍정적인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교통난 악화 등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오는 10월 1일 준공될 공사 현장을 미리 둘러 봤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황학동 청계천변.

1m 너비의 통행로를 덮은 붉은 보도 블록 중간에 10여m 간격으로 새순이 듬성 듬성 난 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머잖아 잎이 앞 다퉈 올라오면 나무다운 모양새는 갖추겠지만, 그래 봤자 좌우로 쭉 늘어선 대형 빌딩 숲의 짙은 그늘만 하랴.

봄에 느끼는 여름 햇살 탓일까, 복구 완공을 앞두고 있는 청계천변은 혼돈스러웠다. 고수부지, 저수부지, 저수로 등으로 나눠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는 계획에 맞게 하천 바닥을 정비하고 중장비와 인부들이 잔디 뗏장을 옮겨 심느라 여념이 없다. 게다가 방금 페인트칠을 마친 덕에 더욱 찬란한 22개의 다리들(인도교 7곳, 차도교 15곳)이 멋진 형상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광교–관철동-다동–장교동 구간을 지나며 받았던 느낌은 광장시장과 평화시장 구간을 통과하면서부터는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도로는 아예 주차장이었다. 정상 속도라면 5분이면 충분할 곳이 가다 서다 30여분을 잡아 먹었다.

트럭과 버스의 소음과 가스 세례에 참다 못 한 사진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그 광경을 스케치하고 돌아 와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쁜 시민들은 늘어선 차 사이로 비집고 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복원 공사 완료 후 교통문제 해결이 최대 과제 중의 하나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만물상 황학동' 명성은 그대로
최악의 정체를 간신히 뚫고 서울시 최초의 서민 아파트인 삼일 아파트와 유명한 황학동 중고품 시장 구간으로 들어 설 수 있었다. 얼룩덜룩한 외벽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난 아파트 공사 현장과 썩 잘 어울렸다. 곧 이은 황학동 풍경은 그야말로 환골탈태. 잡동사니를 들고 나와 난립해 있던 노점상들은 오간 데 없고 성냥갑처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점포들의 천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황학동은 역시 황학동이었다.

없는 게 없다는 명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고만고만한 가게에서 파는 것들은 옛날 그대로다. 아니, 시대에 맞춰 나름의 업 그레이드를 했다고나 할까. 세운상가에서 팔던 성인용품들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필설로 옮기기 민망한 음란 기구들을 잘 정돈된 거리의 햇살 아래에서 본다는 사실은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상식으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혼돈상에 헷갈린 마음은 황학동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공구점 상가를 거의 통과해 갈 무렵 나름의 답을 찾았다.

이 곳은 아직도 서울의 종말처리장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하는 상념이 파고든다. 그 생각에 맞장구라도 쳐 주었던 것일까. 공구점 구역이 끝나고 하천 바닥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곳에는 뜯다 만 청계고가의 교각 하나가 철근을 드러낸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옛 청계천의 모습을 형상화한 거대한 신축 건물 하나가 청계천의 끝임을 알려주었다. 전체 공사 준공에 맞춰 개관 예정인 ‘청계천 문화관’이다.

완전 개통을 다섯 달 앞둔 청계천은 지금 마무리 작업에 눈코 뜰 새가 없다. 게다가 도심 특유의 교통 사정까지 겹쳐, 일부 구간은 통과가 어려울 정도였다. 막 새롭게 단장한 인도교 7개, 차도교 15개가 속살을 드러낸 청계천 곳곳에 걸쳐져 있다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무엇보다 교통 정체 상황을 혁파하지 못 하는 한 시민들은 누구를 위한 대역사였는지 정색하고 물어 올 것이다.

4월 16일 펼쳐진 ‘생각하며 걷는 토요일’ 행사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질문이었다. ‘청계천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문화환경공간연구집단인 사단법인 문화우리(대표 임옥상)가 주최한 첫번째 답사 프로그램이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그 날의 답사를 신청한 문화ㆍ건축 관련 종사자 13명은 주최측과 함께 동묘앞역에서 황학동 중고 시장과 세운상가를 거쳐 광화문까지, 돌아 온 청계천을 발로 느꼈다. 2시간 30분 동안의 답사 후 청계천의 출발 지점인 일민미술관에서 홍성태 교수(상지대 사회학) 주재로 가졌던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진정한 청계천 살리기란 무엇일 지를 두고 토론했다.

세미나에는 4년 동안 청계천 기록 사진 작업을 벌였던 사진 작가 이병용 씨 등이 참석해 서울시의 태도에 대해 성토했다. 서울시측이 제시했던 ‘걷고 싶은 거리’라는 발상은 바로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는 지적이었다. 버스 등 대중 교통 문제와 난립 상가 정리 등 ‘거리(街)의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도외시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청계천 복원추진본부 김경오 담당관은 “청계천 복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경과 인간을 우선시하는 21세기를 향한 도시관리 패러다임의 변화에 있다”며 “시청앞ㆍ광화문 4거리의 횡단보도 설치, 차도를 좁히고 인도를 넓히는 작업 등은 ‘걷고 싶은 거리’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거미 인프라 구축 미흡" 비판 목소리
한편 탄생 2년차의 신생 단체인 문화우리 측은 앞으로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시민 연대(청계천 연대), 참여연대, 문화연대 등 여타 시민 단체들과 연계를 모색해 서울시의 역사 복원과 관련한 문제점을 계속 추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시민과의 조율을 못 다한 청계천은 제2, 제3의 청계천을 낳을 것이란 예측은 그래서 가능하다.

이와 관련 김경오 담당관은 “청계천 복원에 있어 역사유적의 복원은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는 일”이라며 “역사유적 복원은 단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 단체 등의 비판을 딛고 청계천이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의 품안으로 돌아올 지 궁금하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5-04 16:14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