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량 경쟁에 한계, 항만 체질개선 통한 물류공간으로 개발해야

[바다의 날 특집] 동북아 물류허브 전략 항만 부가가치를 높여라
물동량 경쟁에 한계, 항만 체질개선 통한 물류공간으로 개발해야

부산 감만부두. 이성덕 기자

5월 31일은 ‘바다의 날’. 21세기 국가 미래는 바다 경영에 달려있다는 인식이 갈수록 커가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해양 개발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다. 해양 경쟁에서 핵심 분야 중의 하나는 항만이다. 동북아 물류 허브항 건설을 지향하는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물동량 중심의 항만 시대는 지났다.”

동북아 물류 중심국을 국가 전략으로 선언한 국내 해운항만 정책의 고민이자 대안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항만들과 물동량 순위 경쟁을 벌이는 것은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China Crackers (중국 폭죽)’로 표현되는 중국 항만들의 양적 성장은 놀랍다. 상하이, 센젠, 칭다오 등은 연 평균 30%대를 넘나드는 물동량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하이 남쪽 150㎞에 위치한 닝보항의 경우 지난해 44.5%나 물동량이 폭증했다. 물량면에서 중국 항만들은 이제 동북아 물류 중심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동북아 물류 중심국 전략도 발 빠른 터닝 포인트를 가져야 할 때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항만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제조업 중심의 국내 경제체질이 서비스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화물발생 요인이 점차 감소하는 현실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동북아 허브국가를 추구해 온 주변국들이 대규모 항만 건설에 나선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홍콩은 향후 15년 간 항만 개발전략을 담은 ‘마스터플랜 2020’을 마련했고, 대만도 동북아 물동량 선점과 비즈니스 거점화를 위해 ‘아태지역운영센터화’ 전략을 발표했다. 일본 역시 ‘슈퍼 중추항만 육성계획’을 만들어 동북아 허브항 경쟁에 뛰어 들었다. 러시아까지 오일달러를 무기로 극동지역에 초대형 항만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한몫 챙기려 나섰다. 동북아 항만들 간의 물동량 확보를 위한 ‘출혈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로테르담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라
이런 상황 속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의 성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로테르담항의 지난해 물동량은 830만 TEU로 세계 7위에 그쳤으나 245억 달러의 놀라운 부가가치를 달성했다. 부산항은 1,143만 TEU의 세계 5위의 물동량을 자랑해도 부가가치 창출에선 34억 달러에 불과했다.

매력적인 모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의 항만 경쟁력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같이 고부가가치가 높은 항만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항만 산업은 대형 컨테이너 선박 1척이 하루 동안 항만에 머문다고 할 때 급유, 선박 수리, 선박용품 구입, 금융 등 약 9억~10억 원대 직접 수입이 발생한다. 또 다른 산업의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해양수산부 정만화 항만국장은 부산ㆍ광양항을 한국의 핵심 선진 항만으로 집중 육성하고, 다국적 물류기업 유치 등 배후 부지를 부가가치가 높은 물류공간으로 개발하는 것이 우리 항만의 미래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부가가치의 항만 건설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항만의 적절한 규모, 배후 부지의 효율성, 선진화된 항만자동화 시스템 등 3박자, 4박자의 종합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로테르담 같이 부가가치가 큰 항만을 건설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된다는 얘기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동북아 항만의 ‘물류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으로 세계의 자본과 물자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속도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컨테이너 총 물동량 중 동북아시아의 비중이 30%선까지 육박하고 있다. 세계의 물류 중심이 동북아로 이동하고 있는 지표다.

동북아 주변국들은 중국 항만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초비상이다.

한국도 노무현 정부 들어 동북아 물류중심국을 국가 전략으로 선언했다.

우리 경제에서 해운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자동차ㆍ반도체 등에 이어 4번째의 외화 획득원이다. 지난해 실적만 18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물동량 즉 컨테이너 처리량도 지난 한해 1,444만 TEU(1TEU는 20피트 짜리 컨테이너 1개)로 세계 5위?기록했다. <표 참조>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안정적 성장을 해 왔던 국내 항만들의 물동량 성장세가 갈수록 둔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주요 컨테이너 항만들의 물동량 전망이 예상 밖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물류중심국가로의 발돋음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지난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주요 9개 항만의 예상물동량 전망에서 평택항을 제외한 나머지 항만의 물동량 전망을 2001년 조사 때보다 하향 조정했다.

우선 중국과의 물량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 주원인이다. 중국의 상하이항이나 센젠항 등 중국항만의 물동량 처리가 30%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은 제1항인 부산항조차 10%를 밑도는 성장에 그치고 있다. 또한 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양상이다.

물론 절대 물동량만 볼 것이 아니라 내용을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이정욱 원장은 중국 항만들이 처리한 물동량은 거의 대부분 자국 수출ㆍ입 화물이지만 물동량의 45%가 환적화물인 부산항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투 포트 정책 논란, 항만건설 속도조절론도
해양수산부 정 국장도 물동량 중심의 경쟁 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물동량 처리 경쟁에서 시급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몇 TEU를 처리했는냐는 관점을 벗어나 어떻게 하면 항만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른 것 같다. 우선 항만 건설과 규모 결정에 정치논리의 개입이다.

근래 들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가 컨테이너 항만을 지역 경제의 ‘황금알 낳는 거위’로 인식해 너도 나도 건설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겪었던 폐해를 걱정한다. 일본이 70년대 경제논리를 벗어나 지역균형발전의 명분으로 지자체별 항만 건설 정책을 도입했다가 출혈경쟁과 배후 연결망로 부실 등으로 결국 실패하고 경쟁적으로 건설한 항만들을 현재 놀리고 있는 사태가 우리에게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출신 지역에 규모 있는 항만을 확보하려는 중앙 정치의 공방은 더욱 치열하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ㆍ광양항 동시 육성이라는 ‘투 포트 정책’에 대한 10년이 넘은 논란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부산ㆍ경남 출신 야당 의원들은 부산항과 광양항을 함께 개발한다는 투 포트 정책 탓에 부산항의 경쟁력마저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투 포트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광양항의 물동량을 과대 추정한 결과, 2003년 부산항의 시설 확보율은 57.4%로 절대 부족한 반면, 광양항의 시설 확보율은 163.1%로 과잉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양항에 쓸 시설확충 예산을 부산항으로 돌리라는 주장이다.

특히 올들어 광양항의 물동량이 감소 추세를 보여 야당의 ‘투 포트’ 재검토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해양수산부 항만운영정보망(포트미스)에 따르면, 1월 한달간 물동량이 전년동기대비 15.4%가 줄고, 환적 물량은 54%나 급감했다.

지난해 10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도 2011년 광양항의 예상물동량을 2001년 조사 때 931만 TEU보다 25% 줄어든 690만 TEU로 수정 전망했다. 국책연구기관의 2001년 물동량 예측치가 IMF 직후 항만물동량이 급증했던 상황 때문에 다소 과대 예측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정책 입안자 비즈니스 마인드 갖춰야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경제현실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항만국장은 현재 부산항과 내부 경쟁관계에 있는 광양항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2008년 쯤에는 적절한 물동량(300만 TEU)을 확보해 자생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300만 TEU 물동량 확보를 위해 하역료에 대한 과감한 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제를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배후 물류부지 69만평에 대한 투자도 지속해 항만물류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결국 일각에서 제기하는 ‘투 포트 정책’에 대한 기본 노선 수정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 항만국장은 국가의 위기관리 측면에서도 광양항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부산항이 봉쇄되는 비상 상황도 고려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당도 부산항 하나만으로는 장기적 물류 선진화에 문제가 있다며 광양항의 물동량이 일시적으로 줄었다는 이유로 국가 정책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역균형발전과 동북아 물류 중심국 건설이라는 국가 전략의 축인 ‘투 포트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도로, 철도 건설 등 배후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광양항뿐 아니라 신항만 개발사업은 계획대로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 예산 부족이 암초다. 해양수산부의 ‘전국 신항만 개발 투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87~95년에 착공해 2011년까지 모두 완공하기로 한 테ㆍ광양항ㆍ울산푀영?전국 9대 신항만의 개발 사업비는 민자ㆍ재정 건설분과 배후단지ㆍ도로 건설비용까지 포함해 총 26조7,584억원에 달한다. 여기서 2004년까지 투입된 사업비는 총 6조7,805억원으로 전체의 25.3%에 그치고 있다. 한꺼번에 신항 개발을 추진하는 바람에 예산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일각에서 일부 항만 건설에 대해 속도조절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같은 고부가가치 항만을 건설하는 것은 동북아 물류 중심국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4월 주한 유럽상의 기자회견장은 우리의 동북아 허브 정책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원 스톱 서비스는 말뿐이고, 당국자가 자주 교체돼 그 때마다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한다”, “7~8년간 똑같은 내용의 300쪽짜리 무역장벽 보고서를 내 놔야 할 정도” 등 혹평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동북아 허브를 위한 거창한 프로젝트보다 공무원들이 네덜란드 상인(和商)처럼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5-26 17:39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