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의 든든한 빽을 잃었습니다"문화예술 진흥에 헌신, 그룹 글로벌화 토대 마련한 성공한 경영인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폐암 별세 재계 거목 2인] "예술계의 든든한 빽을 잃었습니다"
문화예술 진흥에 헌신, 그룹 글로벌화 토대 마련한 성공한 경영인


박성용 회장은 세계적 거장을 초청, 음악 영재들을 직접 지도하게 하는 등 한국문화예술 발전에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연주회장, 전시회, 가난한 연극 배우들의 공연장엔 늘 당신이 계셨습니다. 서슴없이 기립 박수를 쳐주셨고, 어린애처럼 맑은 웃음으로 저희들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문화계의 모든 뒷일을 언제나 알아서 챙겨주셨고, 자질이 보이는 신인들을 아버지처럼 키워주셨습니다. 당신은 저희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빽이었고, 큰 그늘이었고, 다정한 친구이셨습니다.’ (연극배우 손숙의 추모글)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전해진 5월 23일, 경제계는 물론 문화예술계도 깊은 슬픔에 잠겼다. 고인은 신망 높은 재계의 원로인 동시에 손꼽히는 문화예술의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박 명예회장은 그룹 총수라는 바쁜 자리에 있을 때도 음악회, 전시회, 박물관 등을 거의 습관처럼 찾았을 만큼 남다른 예술 애호가였다. 뿐만 아니라 음악인들을 초대해 식사나 담소를 즐기는 자리를 곧잘 가졌으며, 젊은 인재들의 음악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격려했다.

또 어느 재계 인사보다도 문화예술 후원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마에케나스(시인과 예술가들을 옹호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 또는 ‘한국의 에스테르하지(하이든, 베토벤 등을 후원했던 헝가리의 귀족)’라는 고귀한 별칭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에 아낌없는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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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금호미술관을 열어 무명의 젊은 화가들에게 중앙 화단 진출의 기회를 줬는가 하면, 유망한 음악 영재들에게는 명품 악기 무상 대여나 무료 항공권 제공 같은 실질적 지원책으로 힘을 실어줬다. 로린 마젤, 쥬빈 메타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의 친분을 통해 음악 영재들이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왔다. 그 덕분에 바이올린의 이유라, 피아노의 손열음 등이 차세대 월드 스타로 부상했다.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1996년부터는 문화예술 진흥에 더욱 몰입했다. 1998년 기업인 최초로 예술의 전당 이사장에 취임해 ‘예술 경영’의 토대를 닦은 데 이어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을 맡았고, 2003년부터는 문화예술계를 돕는 기업 모임인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문화예술 진흥에 대한 헌신적 공로를 인정받아 민간인 최고의 명예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1997년)과 ‘메세나 대상’(2002년)을 받기도 했다.

기업 경영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 타계 직후인 1984년 총수에 오른 그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그룹의 재도약 기틀을 마련했다. 취임 당시 6,900억원에 불과했던 그룹 매출은 10여년 만인 1995년에 4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설립과 안착, 금호타이어의 세계적 업체로의 성장 등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명예회장의 재임 기간을 통해 성공적인 체제 개편과 글로벌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미국 예일대 석ㆍ박사, UC버클리대 교수, 대통령 경제비서관, 서강대 교수 등을 거치며 길러진 그의 높은 경제 안목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박 명예회장은 재계의 리더로서 정점을 달릴 때 총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후계자는 바로 아래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이었다. 그는 장자 승계라는 국내 재벌들의 오랜 관습을 깼다. 형제들에 대한 신뢰와 무욕(無慾)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가 남긴 새로운 전통은 현재 3남인 박삼구 회장 체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02 16:41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