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뚝심의 자동차 인생 지다최초의 국산차 개발·해외시장 개척으로 한국자동차산업 도약 초석 다져

의지와 뚝심의 자동차 인생 지다
[폐암 별세 재계 거목 2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최초의 국산차 개발·해외시장 개척으로 한국자동차산업 도약 초석 다져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참석한 정세영 명예회장. 세계 언론으로부터 포니개발에 대한 찬사를 들었다.

5월 25일 오전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잔디광장. 고인의 생전 모습과 육성 한 자락이 대형 화면을 통해 잠깐 흘러 나왔다. “미국(으로 가는 배)에 포니를 처음 선적했을 때 모두 얼싸안고 울었다.”

정 명예회장과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이춘림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이어진 추모사에서 “1970년 어느날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을 보고 이 차들을 국산차로 바꿀 수 없을까 하고 안타까워 했을 때 고인이 ‘내가, 현대가 꼭 이루고 말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포니 정’(고 정 명예회장의 애칭)이 77세를 일기로 영원히 잠들었다. 그가 별세한 21일은 공교롭게도 현대차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현지 공장 준공식을 가진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국내 자동차 산업 발전의 토대를 놓았던 주역은 정작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 이승을 등진 그는 태평양을 훌쩍 건너, 한 세대 전 뜨거운 가슴으로 뿌린 씨앗이 큰 결실을 맺는 장면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정 명예회장을 따로 떼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초의 국산차 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이 모두 그의 의지와 뚝심에서 비롯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그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은 1967년. 미국 유학을 마친 뒤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에서 활약 중이던 그에게 ‘현대자동차를 맡으라’는 왕 회장(정주영 회장의 별칭)의 특명이 떨어졌다. 그 해 12월 회사 설립과 함께 사장에 취임한 그는 이후 32년 동안 오로지 자동차 산업의 외길만을 걸었다.

독자모델 포니 생산, 마이카 시대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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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예회장이 자신의 존재를 나라 안팎에 확실하게 알린 계기는 1974년 최초의 국산 승용차 고유 모델인 ‘포니’를 만들어내면서부터. 그 동안 이어져온 미국 포드사와의 합작이 난관에 부딪치자 국내 실정에 맞는 소형차 개발로 활로를 뚫자는 발상의 전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같은 해 12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에서 세계인들은 포니에 호평을 쏟아냈다. 개발도상국에 불과한 한국이 자동차 독자 모델을 생산한 데 대한 놀라움도 컸다. 포니는 2년 뒤인 1976년 에콰도르에 수출되면서 국산차 첫 수출 모델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국내에서는 마이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정 명예회장에게 ‘포니 정’이라는 애칭이 붙게 된 것은 이 즈음이었다.

그는 이후로도 한국 자동차 산업의 큰 획을 하나씩 그어 나갔다. 1984년 국내 최초의 자동차 종합주행 시험장을 준공했고, 1991년에는 역시 국내 최초로 독자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개발했다. 또 엑셀, 쏘나타, 그랜저 등 그의 ‘자식’들은 지구촌 곳곳에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의 긍지를 심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차와 작별을 고하게 된다.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처럼 왕 회장의 명령이 계기였다. 장자 승계의 전통이 강한 현대가의 속성상, 그룹의 주력 기업인 현대차는 애초 그의 몫이 아니었다.

아쉬움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형의 지시에 순응했다. 32년 자동차 인생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와 헤어진 다음해 회고록을 출간했다. 이 책의 한 대목에는 그의 영원한 자동차 사랑이 진하게 남아 있다. “이제 포니에서 내렸지만 기사가 바뀌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오류와 잘못을 고친다면 현대차는 더욱 훌륭한 준마로 커나갈 것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02 16:4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