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인한 사망률 1위, 새계 원로들의 잇단 타계로 관심 증폭가족력 보다는 직·간접 흡연 등 환경적 요인이 발병 주요 원인

[폐암] 당신은 안전한가…
암으로 인한 사망률 1위, 새계 원로들의 잇단 타계로 관심 증폭
가족력 보다는 직·간접 흡연 등 환경적 요인이 발병 주요 원인


5월 21일과 23일, 불과 이틀 사이에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등 국내 재계의 두 원로가 유명을 달리했다. 워낙 창졸 간에 닥친 일인 데다 두 사람 모두 크게 신망을 받아온 기업인이었던 터라 재계 안팎의 안타까움은 무척 컸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정 명예회장과 박 명예회장 둘 다 폐암을 앓아온 병력의 소유자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난데없는 폐암 주의보가 재계를 엄습하는 게 아니냐며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기도 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과거에도 폐암에 쓰러진 재계 총수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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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재벌가 중에서도 폐암의 피해가 유독 큰 편이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1973년)과 2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1998년)에 이어 최 선대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컬 회장(2000년)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도 폐암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1960년대에 폐암 진단을 받은 바 있고, 이건희 회장도 폐암은 아니지만 1999년 폐 부근에 발생한 림프절암으로 한 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 완쾌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번에 작고한 박 명예회장에 앞서 동생인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이 2002년 폐암으로 사망한 바 있다.

금호는 형제 간에, 삼성은 부자 사이에 병력을 이어받았고, SK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됐다는 특징을 지녔다. 암 발생은 가족력과 상관성이 높다는 일반 통념에 비춰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관련 학계에서는 폐암 가족력을 가진 사람의 발병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2~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폐암의 발생 원인 가운데 유전적 요인은 아주 적으며, 이보다는 환경적 요인이 훨씬 크다는 게 전문의들의 견해다.

그렇다면 재계 총수들이 폐암에 잘 걸리는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는 것일까. 일단 의학적으로는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환경적으로 ‘폐암 유발 가능성이 높은 여건’에 자주 놓이는 게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재 폐암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흡연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담배를 피우거나 간접 흡연을 통한 폐암 발생 가능성은 전체 원인의 90%에 육박한다.

폐암에 걸린 총수들은 대부분 흡연자이거나 이전에 담배를 피웠던 사람들이다. 비흡연자의 경우에도 간접 흡연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돼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거 우리 사회는 흡연에 대해 아주 관대한 분위기였던 데다,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각종 회의나 모임 참석이 빈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재계 총수들과 폐암의 상관성은 대부분 담배로 인해 설명될 수 있는 셈이다.

여성·청소년 흡연율 증가로 발병률 증가
우리나라는 흡연 인구 비율이 매우 높다. 요즘 웰빙 바람과 금연 열풍이 불면서 성인 남성들의 흡연율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여성과 청소년 흡연율은 오히려 최근 10여 년 동안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폐암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성 폐암 환자는 1980년대 초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폐암이 비단 재계 총수들의 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의 경계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암은 위암이다. 한국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위암은 1만9,970건이 발생해 전체의 20.2%를 차지했다. 폐암은 그 다음으로 1만1,741건에 11.9%의 비율을 기록했다. 1만1,174건이 발생한 간암은 11.3%로 뒤를 이었다. 위암ㆍ폐암ㆍ간암은 ‘한국인의 3대 암’으로 꼽히는 질병이다.

주목할 것은 폐암이 발생률에서는 위암에 뒤지지만 사망률에서는 1위라는 사실이다. 이는 폐암이 흔한 병으로 떠오른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질환으로 우리에게 다가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가을 발표한 ‘2003년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같은 해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24만6,000명)의 25.9%인 6만4,000명이 암으로 사망, 암이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 당 암에 의한 사망률은 1993년 110.6명에서 2003년 131.8명으로 불과 10년 만에 21.2명이나 늘었다.

특히 폐암은 같은 기간 사망률이 가장 많이 증가한 암으로 드러났다. 반면 위암은 사망률이 가장 많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폐암은 지난 2000년 한국인의 대표 암으로 꼽혔던 위암을 제치고 사망률 1위에 오른 후 지금껏 요지부동의 암 사망률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폐암이 급증하고 또한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에게 폐암은 아주 드문 질환이었다. 그러다 산업 문명의 고도화에 따라 발암 물질이 다양해지고 흡연 문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폐암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폐암에 걸릴 확률은 피우지 않는 사람들보다 평균 13배나 높다. 하루에 두 갑씩 20년 동안 피웠다면 그 확률이 70배 이상으로 치솟는다. 간접 흡연자의 폐암 발병률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1.5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암이 쉽게 발생하는 노령 인구의 증가와 함께 암을 발견하는 진단 기술의 발전도 역설적으로 폐암 발생률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폐암은 상당 정도 진행될 때까지 환자가 증세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암에 비해 조기 발견이 무척 까다로운 암이다. ‘조용한 암’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나왔다. 이 같은 조기 발견의 어려움은 곧바로 높은 사망률과 직결된다. 80% 가량의 환자들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폐암 1기의 경우 수술을 통해 5년간 더 살 수 있는 확률(5년 생존률)이 75%에 이르지만, 2기나 3a기는 평균 30%선으로 떨어지고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는 15% 미만에 그친다.

조기 진단법·항암제 개발 등에 박차
현재 의료계에서는 폐암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조기 진단 방법을 개선하는 한편 항암 화학치료나 방사선 치료 등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흉부 X-선 촬영이 폐암 조기 발견에 한계를 드러내자 요즘엔 방사선 피폭량을 크게 줄인 저선량 컴퓨터 단층촬영(CT) 기법이 괜찮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또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들의 치료에 효과적인 새로운 항암제의 연구 개발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의료계의 큰 관심사로 대두된 표적 항암제 ‘이레사(Iressa)’는 대표적인 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사에서 만든 이 항암제는 말기 비(非)소세포 폐암의 종양 크기를 줄이고 투약에 따른 부작용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에 대한 효능이 한 연구 결과에서 입증돼, 환자와 가족들에게 한 줄기 새 희망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폐암은 무엇보다도 예방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충고다. 그 중에서도 금연은 가장 요긴한 방법이다. 담배만 안 피워도 폐암 발병 가능성의 80% 이상은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면 아예 입에 물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이를수록 좋다. 금연하더라도 폐암 발병 가능성이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은 사람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는 10~1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40대 이상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74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1991년 그룹 사옥을 금연 빌딩으로 선포하는 등 금연 운동의 선구자였으나 과거 흡연의 사슬을 완전히 자를 수는 없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02 17:4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