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은 대우정신으로 끈끈한 관계 유지, 세계경영 가지 재인식에 주력

대우맨, '김우중 구출작전' 팔 걷어붙이다
[김우중 귀국 후폭풍] 식지 않은 대우정신으로 끈끈한 관계 유지,
세계경영 가지 재인식에 주력


6월 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정문 앞에 대우맨들이 대거 몰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 <연합>

지난해 10월말 경기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에서는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대우자판) 사장, 김충훈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 등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최고 경영진(CEO) 20여 명이 대거 참석한 골프 회동이 열렸다. 대우자판과 GM대우가 침체된 자동차 내수 판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동으로 마련한 행사였다. 한 마디로 ‘어려운 때일수록 옛 식구끼리 서로 돕자’는 취지의 회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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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룹 해체 이후 옛 계열사 CEO들이 이처럼 한 장소에 공개적으로 모인 것은 처음이어서 이날 행사는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일부에서는 대우맨들이 다시 뭉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이날 회동에서 참석자들은 옛 대우 계열사들끼리 끈끈한 유대 관계를 다시 살려 나가자는 데 뜻을 모으기도 했다.

전·현직 임원 1,500여명의 모임 '대우인회'
주목할 것은 대우그룹은 망했지만 과거 한솥밥을 먹던 임직원들이 지금도 대우 정신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계 경영으로 대표되는 김우중 전 회장의 경영 철학과 기업가 정신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골수 대우맨들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재단 빌딩 15층의 한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대우인회’(大宇人會). 이 모임은 전ㆍ현직 대우 임원 1,500여명으로 이뤄진 대규모 친목 단체다. 현재 정주호 전 구조조정본부장이 4기 회장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4월 1일자로 홈페이지에 올린 회장 인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평생을 바쳐 일궈온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지난날의 화려했던 영광도 다 사라져 버린 지금이지만, 그래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겪었던 생생한 체험들을 후배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글로벌 시대에 세계 경영의 가치를 재확인시켜줄 사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6월 13일 옛 대우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사무실에서 관계자들이 김우중 전 회장 입국과 관련, 문을 굳게 잠근 채 회의를 진행하자 취재진들이 몰려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연합>

그는 또 김 전 회장의 귀국이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던 6월 3일 공지 사항에서는 “대우인회는 회장님이 귀국하신다면 이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이에 필요한 어느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된다”며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대우인들의 생각을 알리고 대우에 대한 공과가 바르게 평가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회원들에게 당부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보면 대우인회가 김우중 전 회장 구명을 위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일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은 관망할 단계라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박태웅 전 대우인회 회장은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김 전 회장)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며 “여러 차례 의논한 끝에 일단 변호인단에 모든 것을 맡겨두고 지켜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해명 자료를 배포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을 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14일 이른 아침의 풍경은 김 전 회장과 대우인회가 질긴 ‘동지애’로 연결돼 있음을 잘 확인시켜 줬다. 이날 약 150명의 대우인회 회원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인천공항과 대검찰청 앞에 도열, 김 전 회장의 귀국을 따뜻하게 맞았다. 현직 임원 또는 해외 체류 중인 500명 남짓을 제외하면 전체 회원의 15~20% 정도가 영접하러 나왔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김 전 회장을 보좌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대표적 경우다. 그는 최근 회사(유진그룹)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아예 사무실까지 냈다. 김 전 회장과 대우 사태 재평가 등에 대한 각종 공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하이 대우’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끊임없이 대우 해체의 부당성을 지적해온 그는 “회장님 귀국 이후 대우 사태가 잘 마무리되도록 하는 게 마지막 임무인 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공과, 균형잡힌 시선으로 바라봐야"
386세대 운동권 출신 대우맨들의 움직임도 관심을 끈다. 김 전 회장의 전향적 인재 등용 방침에 따라 1995년 무렵 대우의 품에 안긴 이들 중 일부는 5월초 ‘세계경영포럼’이라는 단체를 결성, 김우중과 대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인천공항으로 김우중 전 회장을 마중나온 백기승(가운데)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류효진 기자

세계경영포럼의 입장은 김 전 회장의 공(功)과 과(過)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우 사태를 불러온 과실 부분에 대해서는 적법한 사법 처리를 하되, 세계 경영의 비전과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포럼은 14일 성명에서 “김 전 회장의 진취적 기업가 정신과 세계 경영 전략은 제대로 재평가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계승할 것은 계승해야 할 시점”이라며 “김 전 회장의 귀국이 한국 경제의 진로와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는 기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김 전 회장을 재조명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언론을 통해 김 전 회장을 적극 두둔하고 나선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눈에 띈다. 야당의 대표적 경제 브레인인 이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김 전 회장 옆을 오랫동안 지켰던 정통 대우맨이다. 그 역시 김 전 회장의 공과를 냉정하게 따지자는 입장이지만, 더 나아가 대우 해체 과정의 외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당시 정권과 관료 집단 등을 향해 화살을 날려 주목 받고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을 보필하며 세계 경영의 노를 함께 저었던 최고 경영자 그룹의 명암은 현재 크게 엇갈린 상황이다. 채권단이 새 주인으로 들어 앉은 옛 대우 계열사에서 CEO로 발탁돼 활약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우 패망의 사법적 책임에 휘말려 고초를 겪은 이들도 적지 않다.

이동호 대우자판 사장과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등은 여전히 잘 나가는 대표적 CEO들로 꼽힌다. 반면 강병호ㆍ장병주 전 ㈜대우 사장과 김태구 전 대우차 사장 등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거오봉括憫峠構?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23 14:4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