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해체에 얽힌 X파일에 국민 눈과 귀 쏠려1.3평 독방에 갇힌 세계경영, '동정·엄벌' 기류 혼재

[김우중 귀국 후폭풍] 판도라 상자 열리나
대우해체에 얽힌 X파일에 국민 눈과 귀 쏠려
1.3평 독방에 갇힌 세계경영, '동정·엄벌' 기류 혼재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인가.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검찰 수사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김우중 리스트’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되고, 국민들 사이에는 동정론과 엄벌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대우 측 인사들 중심으로 ‘김우중 재평가’ 움직임이 강하게 이는가 하면, 대우 패망의 진상을 두고 타살-자살 논란도 다시 거세게 불거지고 있다.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김우중 후폭풍에 요동치는 양상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사건의 매듭이 제대로 지어지지 못했음을 그대로 반증한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핵심 당사자인 김 전 회장이 장기간 해외에 머무르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를 주저해온 까닭이 크다. 그의 귀국으로 일대 상황 변화가 점쳐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난마처럼 얽힌 대우 패망의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김우중 후폭풍이 어디로 향할지, 5대 쟁점을 통해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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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리스트’ 과연 있나
“김 전 회장이 들어오게 되면 아마 잠 못 이루는 사람 많을 것이다.”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이후 여의도 일각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급격히 퍼졌다. 그가 누구를 지칭해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라고 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자연스레 ‘김우중 리스트’와 결부시키고 있다.

‘김우중 리스트’는 김 전 회장이 대우 퇴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당시 정ㆍ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김 전 회장의 해외 유랑 기간 내내 그의 귀국을 달가워하지 않는 일부 세력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사람들 입에 단골 메뉴로 곧잘 등장했다.

정치권 등에서는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정권 교체 이전의 구 여권 인사들이 다수 연루됐다, 김대중 정권의 실세들일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재선 이상의 의원들은 걸면 다 걸린다는 식이다. 대우 사태라는 단일 사건에 국한하자면 일단 DJ 정권과의 연관성이 높다.

그렇다면 과연 ‘김우중 리스트’는 존재할까. 만약 있다면 김 전 회장은 그 명단을 공개할까. 핵심 측근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대우 패망 직전에 로비를 벌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망해 가는 기업인으로부터 누가 돈을 받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김 전 회장은 또 그런 걸 가지고 누구 옆구리를 찌를 위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어쨌든 ‘김우중 리스트’는 김 전 회장의 입과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그 실재 여부가 확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우는 병사했나, 타살됐나
대우그룹 해체에는 외환위기 때 닥친 유동성 위기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무리한 차입 경영으로 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난 반면 자금 융통은 막혀 스스로 숨통이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자금 위기가 현실화한 1998년 하반기부터 워크아웃 결정이 내려진 1999년 8월까지 신규 여신을 받기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도 여러 차례 만나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장은 점점 대우의 파국을 예고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국 재계 2위의 대마(大馬)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대우 측 인사들은 김 전 회장이 당시 정책 당국자들과 잦은 갈등을 빚은 끝에 그룹 해체의 비운을 맞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1999년 시행된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이 대우의 목을 노골적으로 뗌?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여타 재벌들도 부채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유독 대우만 타깃이 됐다는 불만도 여전하다. 특히 유동성 위기를 함께 겪던 현대그룹에 대한 지원과 비교하더라도 대우그룹은 불공평한 처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우는 구조조정 등 자구 노력에 힘을 쏟지 않고 부실을 키운 나머지 자멸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헌재-강봉균-이기호 등 DJ 정권 핵심 경제 관료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대우 패망을 둘러싼 병사-타살 논란은 외환위기와 기업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반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결론이 주목된다.

구속된 김우중 전회장이 서울 구치소로 가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김우중 출국 미스터리
김 전 회장의 귀국은 역설적으로 그의 출국 배경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 동안 김 전 회장이 DJ 정부 고위층의 권유를 받고 비행기를 탔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특히 2003년 1월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잠시 떠나 있으라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귀국 후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수사 관계자의 질문에 “채권단과 임직원들이 대우그룹 정리 과정에 잠깐 나가 있어 달라고 권유해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류시열 전 제일은행장 등 당시 채권단 고위 관계자들은 김 전 회장의 진술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즉각 반박했다. 측근 인사들도 의아한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DJ 정부 고위층으로부터 출국 권유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검찰에서도 출국 배경에 대해 규명할 계획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 말을 바꿨을까. 자진 귀국해 사법 처리를 받기로 한 마당에 자신에게서 비롯된 파문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까. 이런 가운데 김 전 회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1999년 10월 17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자동차 부품공장 참석 후 곧바로 잠적한 것이 아니라 10월 20일 일시 귀국했다가 이튿날 다시 출국한 사실이 새로 밝혀져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우 사태 정확한 규모는
4월말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된 ‘대우 경영비리 사건’의 혐의 내용은 ▲41조원의 분식 회계 ▲9조2,000억원의 사기 대출 ▲25조원의 외화 도피 등 크게 3가지다. 건국 이래 단일 경제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데다, 이후 30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이 쏟아 부어졌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은 무척 컸다.

하지만 김 전 회장 측근 그룹은 여론의 질타를 의식하면서도 이 같은 대우의 혐의는 상당 부분 부풀려진 것이라고 줄곧 해명해 왔다. 이는 2001년 기소 이후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4년 넘게 소송을 끌어온 배경이기도 하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주로 분식 회계 규모와 외화 도피 부분이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외환위기 이후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외화 부채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장부상의 분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검찰은 이처럼 환율로 인한 상승분을 무시한 데다 몇 년치를 그대로 합산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참여연대가 16일 발표한 ‘대우 보고서’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오류가 지적돼 있다. 검찰이 발표한 41조원은 1996~1998년의 분식 금액을 단순히 합친 것으로 기업회계 기준에 따른 분식 금액으로는 볼 수 없으며,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가 발표한 22조9,000억원이 정확한 분식 규모라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대우의 영국 내 금융조직으로 알려진 BFC(British Finance Center)를 통한 외화 도피 혐의는 검찰과 변호인 간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 측은 지금껏 BFC를 통해 흘러나간 돈이 해외 채무 변제에 쓰였을 뿐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착복한 일이 절대 없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검찰은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절차를 어겼기 때문에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또 BFC가 김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을 수도 있다는 시각이어서 양측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재평가 및 사면 논란
김 전 회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발부 직후 사법 당국의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는 어쩌면 그가 귀국 의사를 밝혔을 때 이미 결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 전 회장과 측근 그룹은 ‘사법 처리 이후’를 내다보고 귀국을 추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공과(功過)에 대한 재평가와 사면이다. 사실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평가 주장과 사면설은 지난해 중반 이후 산발적으로 제기돼 온 것이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공개 석상에서 김 전 회장 문제의 조속한 매듭을 촉구했고, 지난 부처님 오신 날에는 경제인들이 대거 풀려나 사면설에 힘이 더욱 실리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현 정부 핵심과 김 전 회장 사이에 모종의 下瓚?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16일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사견을 전제로 “(김 전 회장은)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분”이라며 “이를 참작해 선처를 바란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재계가 한 목소리로 김 전 회장 구명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들의 반 재벌 정서를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을 원칙대로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민단체와 대우 사태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전 회장 측에서 구상한 재평가 및 사면 시나리오가 과연 예상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23 14:51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