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자율화가 아파트값 폭등 원인, 공공보유주택 비율 높여야 거품 빠져"지금과 같은 분양구조론 투기 못잡아…누진세·종부세 등 강화 필요

[인터뷰]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
[부동산 투기 공화국]
"분양가 자율화가 아파트값 폭등 원인, 공공보유주택 비율 높여야 거품 빠져"
지금과 같은 분양구조론 투기 못잡아…누진세·종부세 등 강화 필요


부동산 가격 폭등과 투기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관련 토론회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날카로운 눈빛, 카랑카랑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 다소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말투, 그러면서도 의외로 작고 아담한 체격.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 우리나라에서 몇 째 안에 들 정도의 긴 직함을 가진 그는 부동산 거품과 투기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다. 엄청난 부동산 가격 폭등의 여파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고 이에 대부분 국민은 박탈감에 넋 놓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속에서 김 본부장은 당차게 일어나 매서운 돌팔매질로 거품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2002년 말부터 2003년 초까지 전국의 아파트 건설 현장 50여 곳을 일일이 돌아다녔다. 현장 구석구석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관계자들도 하나하나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목적은 국내 아파트 분양 시장의 폭리 실태 파악이었다. 조사 결과는 경실련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운동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반향은 상당히 컸다. 정치권에서도 원가 공개 논란이 불 붙어 지금껏 실시 여부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를 만나 ‘부동산 망국병’의 원인과 진단, 해법 등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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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확대해도 아파트값 못잡아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잡는 방법으로 공급 확대론과 수요 억제론이 맞서고 있는데.

▲공급확대로 아파트 값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아무리 아파트 공급을 늘리더라도 지금과 같은 분양 구조에서는 실수요자보다는 투기꾼 몫으로만 돌아갈 뿐이다. 중대형 평수 아파트가 모자란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투기 세력의 주장일 뿐이다. 중대형 아파트를 사놓은 뒤 큰 차익을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지금처럼 값 비싼) 중대형 아파트에 살 만큼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난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최근 수 년 동안 이어진 아파트 가격의 폭등 원인은 무엇인지.

▲1989년에도 한 차례 폭등이 있었다. 당시와 비교해 보자. 그 때는 아파트 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 값도 함께 거의 근사치로 올랐다. 이는 주택 공급량이 부족했었음을 뜻한다. 실제 당시 주택 보급률은 70~75%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대량 공급 정책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그것도 기존 아파트의 60~70% 가격에 새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기존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등 일정 부분 주택 가격 안정 효과가 나타났다.

그런데 1999년부터 지금까지 5년 간의 폭등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전세 값이 동반 상승하지 않고 있다.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국내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 물량인 250만호의 아파트가 쏟아져 나왔다. 주상복합을 합치면 300만호에 달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왜 이렇게 됐나. 분양가 자율화가 큰 원인이다. 기존 아파트의 120% 가격에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놔뒀는데, 이것이 기존 아파트 값도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지난 5년 동안 새 아파트 값은 2.5배, 기존 아파트는 2배나 올랐다.

-공급이 크게 늘었는데도 가격이 폭등했다. 분양가 자율화 외에 다른 구조적인 이유는.

▲판교 신도시 사업을 예로 들자. 정부는 판교의 논밭과 임야를 평당 80만원에 수용해 100만원 정도의 공사비를 들여 택지를 조성한 뒤 민간 건설업체에 판다. 여기에 대략 평당 건축비 350만원 정도를 보태면 아파트 값은 평당 550만원 수준이 된다. 그런데 판교 신도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1,500만원 이상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000만원의 거간엔였募?것이뇩?게다가 프리미엄까지 보태면 2,000만원도 넘게 된다. 건설업체와 최초 분양자만 엄청난 이익을 얻는 구조인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판교 개발에 덩달아 분당, 강남 등 인근 지역 집 값이 전체 34조원이나 뛰면서 그만큼의 거품이 더 생겨났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가 공공택지 내 주택용지를 민간 업체에 팔아 넘기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정책 기대
-최근 급부상한 공영 개발론과 같은 맥락인 것인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공공보유 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 1,350만 호 가운데 30만호로 2.1%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의 경우에는 20~40%에 이른다. 어느 사회나 집을 소유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계층이 30% 선은 된다. 때문에 공영개발을 통해 공공보유 주택의 비율을 늘리면 많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임대 주택 물량을 확보하는 한편 민간에 맡겼을 때 일어나는 투기적 거품 발생도 막을 수 있다. 정부도 할 일 하고 국민도 좋은 이런 제도가 왜 지금까지 도입되지 못했겠나. 그것은 바로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연합(재벌-관료-정치인-언론-학자 등 이른바 ‘건설 5적’)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세제가 투기 수요를 잠재우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세제는 대폭 강화돼야 한다. 보유세(재산세)의 경우 미국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시가 대비 0.5~3%에 이르는 반면 우리는 0.05%에 불과하다. 이를 2년 안에 1%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10억 원짜리 아파트라면 1년에 1,000만원 정도 내게 되는 셈이다. 양도소득세도 시세 차익의 절반 이상 과세해야 한다고 본다. 다주택 보유자들을 누진ㆍ중과하는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역시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집이든 땅이든 불필요하게 많이 가져도 좋지만,그 경우 고통 받고 손해 본다는 인식을 투기꾼들에게 확실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

-부동산 문제로 수 차례 홍역을 치른 정부가 8월 중 내놓을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에 시중의 관심이 높은데.

▲정확한 원인 진단이 있어야 효과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여권 정치인들을 만나 보니까 최근에는 문제의 원인을 어느 정도 깨우친 것 같더라. 대통령도 ‘답은 안다. 선택만 남았다’고 말했지 않았나. 그래서 조금 기대하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8월 중 나올 부동산 정책에는 경제 민주화를 이룬다는 정부의 굳은 각오가 분명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못 사는 그릇된 풍토를 바로잡아야 한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7-21 20:19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