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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열풍] 문화가에 부는 공포의 바람
여름 밤, 목청껏 비명을 지르게 해!
영화·연극에 엽기 호러물 홍수, 생활주변 소재로 공포 극대화




영화 <가발> 포스터



‘삼순이(김선아)는 실연 때문에 자살한 귀신이며, 현진헌(현빈)도 교통사고로 이미 목숨을 잃었고, 진헌의 조카 미주(서지희)는 귀신을 보는 아이다.’

한 네티즌이 가상으로 엮은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엽기반전 결말이다.(만든이 라떼곱배기, 디시인사이드) 영화 ‘식스센스’를 패러디한 황당한 설정이지만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됐다.

공포물이 제철을 만났다.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잊는 데는 오싹한 납량 호러물이 제격이라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영화, 연극, 인터넷 등 문화계 전반에 피비린내 나는 공포의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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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줄 알지만 소름끼쳐요"
밤 12시께 서울 대학로 두레소극장.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면서 관객들의 비명이 일제히 쏟아진다. 인간 제물(祭物)을 객석에서 고르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제발 불 좀 켜주세요”란 애원이 터져 나왔다. 이 연극을 보고 나온 장수연(21ㆍ여) 씨는 “분명 연극인줄 알고 있는데도 무대에서 진짜 살인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며 몸을 움츠렸다.

‘대한민국 최초 심야 공포 연극’이란 부제를 내건 프로젝트그룹 여름사냥의 ‘엠 에볼’ 공연 현장이다. 공연시간도 아예 매일 밤 11시. 성기능을 상실한 대학교수, 외모 때문에 남자에게 버림받은 미혼 여성, 환경 호르몬에 중독된 남성 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예쁜 선남선녀를 제물로 바쳐 스스로를 구원하고 후대에 자신들도 그렇게 태어나길 기원하는 “광기의 제의식을 올린다”는 것이 줄거리다.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다. 연극 무대에 살인과 엽기를 다룬 공포물들이 연달아 올려지고 있다. 파파 프로덕션의 창작 연극 ‘악녀 신데렐라’(7월 20~9월 4일, 대학로 행복한 극장)는 제목 그대로 마녀로 부활해가는 신데렐라를 둘러싼 괴기스러운 공포를 다루고, 극단 옐로우룸의 ‘하녀들’(8월 20일까지, 대안극장 옐로우룸)은 인간의 욕망과 악마적 본성을 교묘하게 뒤섞어 심리적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자매 하녀가 여주인과 딸을 살해한 뒤 동성애를 벌이다 발각된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 작가 장 주네의 동명소설이 원작.

연극 <악녀 신데렐라>



그간 TV나 영화에 비해 공포물을 다소 등한시하던 연극계에 새삼 섬뜩한 납량 호러물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녀 신데렐라’의 연출가 이해제 씨는 ‘공포물에 대한 계절적 기대 심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 방송이나 영화에 공포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당연히 여름철에는 괴기스러운 작품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심리를 자극하려는 시도입니다.” 대형 공연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극단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에서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겨냥한 공포 연극이 새로운 시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공포 연극은 영상처럼 특수 효과나 반전에서 오는 공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영화나 방송에서보다 연극 무대에서 더 색다른 매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엠 에볼’을 공연하는 ‘여름사냥’ 홍보팀 강민성 씨는 “화면으로 전달되는 영화나 TV 드라마와 달리, 촉감과 소리 등 오감으로 공포의 기운이 전달되면서 긴장과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공포물 바람의 진원지인 영화계 역시 오싹한 여름 작품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6월 30일 올 여름 공포 물로서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분홍신’(감독 김용균, 제작 청년필름) 은 휴가철을 맞아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한 가운데 개봉 3주 만에 130만 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는가 하면, 7월 14일 선보인 ‘여고괴담 4: 목소리’ (감독 최익환, 제작 씨네2000)도 첫 주말 동안 서울 4만4,000명, 전국 7만8,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몰이에 나섰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는 ‘가발’(감독 원신연, 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과 ‘첼로-홍미주일가 살인사건’(감독 이우철, 제작 영화사 태감)이 관객들을 서늘한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 여름 개봉되는 국내 공포 영화들의 소재들이 하나같이 일상의 사물이나 존재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분홍신’이 유혹적인 분홍색의 예쁜 신발을 소재로 삼았고, ‘여고괴담 4: 목소리’는 소리를, ‘가발’과 ‘첼로’ 역시 각각 가발과 첼로란 우리 주변의 사물을 공포의 매개물로 내세웠다.

영화 <분홍신>

현실의 잔혹함 반영
“과거 (공동 묘지의) 원한 맺힌 귀신으로 대표되던 공포의 소재가 점점 우리 곁의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공포영화의 현주소입니다. 예전에는 초자연적인 것에서 공포감을 유발시켰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늘 우리가 사용하던 물건,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와 같이 일상이 공포로 변할 때 두려움과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가 말하는 요즘 국내 공포 영화의 특징이다.

연극 ‘악녀 신데렐라’, ‘엠 에볼’, ‘하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연극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기형적으로 비틀어진 인간 군상이다. 연출가 이해제 씨는 “황당하고 그로테스크한 인간들이 기존의 가치와 세상을 조롱하면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기괴한 공포를 자아낸다”고 설명한다.

영화평론가 심영진 씨의 ‘공포물은 현실의 거울’이라는 지적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심 씨는 KBS ‘문화지대’(7월 19일 방송)에서 “인간의 욕망과 억압, 사회의 보수성과 이데올로기 등을 읽어낼 좋은 텍스트가 공포물”이라면서 “사회가 어지러울 때 그것을 거울처럼 되반사 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인간들과 현실 그 자체가 공포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최근 영화 ‘부기맨’이 한 포털사이트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을 설문 조사한 결과, ‘요새는 사람들이’가 14%의 득표율로 1위 한국의 처녀 귀신(75%)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올랐다. 좀비와 드라큘라, 그리고 강시, 사탄의 인형 등 내노라 하는 전세계 귀신들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존재로 꼽혔다. 네티즌 ‘pretty2465’는 “어디 귀신을 사람한테 비하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험악합니까. 정말 무섭습니다”라고 말했다. 공포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초자연적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 내부에 있다는 현실의 잔혹함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배현정기자 hjbae@hk.co.kr


입력시?: 2005-07-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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