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라인서 공포·흉가체험 등 '귀신을 좇는 모임' 인기

[귀신열풍] 공포 즐기는 사회 "우린 귀신이랑 논다"
온·오프라인서 공포·흉가체험 등 '귀신을 좇는 모임' 인기

무더운 여름철 이색공포체험으로 더위를 날리려는 관람객이 과천 서울랜드 '귀신동굴'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철중 기자

다시 귀신의 계절이다. 라디오는 기괴한 이야기들을 흘려 보내고 ‘특집’, ‘스페셜’의 이름을 단 한 밤의 TV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저주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이에 질세라 극장 스크린도 유령, 심령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귀신 일색이다.

이 뿐일까. 소설, 연극, 컴퓨터 게임, 놀이공원에도 귀신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심령사진과 심령동영상, 그에 따른 기괴한 귀신 체험담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마음에 차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흉가를 두 발로 찾아 다니는 ‘흉가 체험단’, 귀신의 사진을 찍는다며 카메라 둘러메고 으슥한 곳만 휘젓고 다니는 ‘고스트셔터(ghost shutter)’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귀신을 공포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 놀잇감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호러홀릭(horrorholic)이다. 혼령, 귀신의 존재를 믿으며, 이들을 경험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몇몇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다른 매체를 통한 간접체험 보다는 직접체험을 추구한다.

관련기사
공포 즐기는 사회 "우린 귀신이랑 논다"
문화가에 부는 공포의 바람
등골 오싹…공포 마케팅
퇴마사가 말하는 귀신·혼령의 세계

귀신이 곡할 노릇의 연속
영화 ‘셔터’의 시사회가 있었던 지난 6월 19일. 영화 홍보사측이 시사회에 이어 마련한 흉가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일단의 사람들도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출발하기 직전에 감상한 영화가 카메라에 찍힌 혼령의 얘기를 다룬 ‘셔터(Shutter)’였던 까닭에 그 일정에는 흉가에서 유령을 카메라에 담는 일도 포함돼 있었다.

체험단을 실은 버스가 향한 곳은 충북 제천 봉양읍의 ‘늘봄가든’이라는 폐 식당. 흉흉한 소문이 무성한 곳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흉가다. 주최측의 공포 분위기 조성 차원의 작업이었을까. 참가자들은 이 곳에 들어가기 전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본인은 본인의 개인행동이나 부주위로 인해 생기는 피해에 대해서는 주최측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만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에게는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다.

흉가 체험 행玲?동행한 한 참가자는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당시 경험을 신기하다는 듯 털어놨다. .

헨리 8세가 거주했던 영국 햄튼궁에서 배회하던 유령이 CCTV에 찍힌 모습.

“분명 빵빵하게 충전된 디지털카메라 배터리가 늘봄가든 건물 안에서는 방전되었다가 밖으로 나오니 다시 충전되어있질 않나, 귀신이 지나가고 있다는 법사(퇴마사)의 말에 방송용 카메라를 들이대니 멀쩡하던 카메라의 전원이 나가지를 않나, 게다가 제멋대로 조작되는 사진 기자의 카메라까지 이상한 현상이 잇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려했던 대로 머리가 무겁거나 팔이 저리는 등 빙의(憑依ㆍ귀신 들림)증상을 보여 법사로부터 제령치료를 받아야 했던 사람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그 안에 들어갔다 온 사람들이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현상을 체험했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많은 참가자들은, 심령학자들이 오브(Orbㆍ구형의 에너지체로 영 현상이 일어날 수 있게 필드를 조성하는 기본 요소로, 영이 많은 곳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함. 렌즈 앞의 먼지가 찍힌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라고 부르는 영체(靈體)촬영에 성공했다고 했다.

빙의 경험한느 짜릿한 순간
이 흉가체험에는 반드시 퇴마사가 동행하게 된다. 구천으로 가지 못하고 배회하던 혼령이 부지불식간에 흉가체험자의 몸으로 들어와 심신을 부리는 경우(빙의)에 대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더러는 이 빙의 경험이 흉가를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 달에 한번 정도 흉가체험을 하고 있다는 조영식(29ㆍ대학원생) 씨가 그 같은 경우다.

흉가체험 도중에 빙의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봤다는 그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지만, 빙의에 걸린 사람을 보는 것이 곧 귀신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만은 스릴 넘친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 강원도와 충청도 경계상의 한 폐교에서 빙의에 걸린 사람을 봤다고 했다. “동행했던 20대 남자가 갑자기 40대 아줌마 목소리로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해서 좀 놀란 적이 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자리에서 남편이 처자식을 죽이고 간 터라는 얘기를 동네 사람들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조 씨는 자신이 빙의를 경험하기 위해 외우고 있는 주문도 하나 있다고 했다. ‘분신사마 분신사마 오이데 구다사이’라는 주문이다. 영화 ‘분신사바’를 통해 알려진 것으로 ‘분신님이여 분신님이여 내 몸에 강림하소서’의 의미다. 그러나 흉가체험 동호회(cafe.daum.net/hyunggabest)의 이동욱(28) 회장은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떠도는 영혼을 불러들일 수는 있지만, 그 영혼을 몸 밖으로 돌려보내는 주문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흉가체험 현장에 퇴마사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는 “아무나 퇴마사가 되는 게 아니다”면서 “다른 혼을 부리려면 우선 모시는 신(몸신)이 없어야 하고, 영을 보는 눈(영안)을 타고 나서 특정 수련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지난 해 한 여행사가 귀신을 촬영해 오면 3억원을 준다고 한 광고 때문일까. 고스트셔터들이 폐가, 흉가를 찾아 다닌다는 점에서는 흉가체험단과 비슷하지만, 뭔가를 ‘건져야’ 한다는 의욕에서 차별화된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이들도 있지만, 한 번 두 번 오브를 경험하면서 이들은 보다 또렷한 혼령 사진을 찍기 위해 부지런히 셔터를 누른다. 흉가체험을 할 때면 반드시 자신의 카메라를 휴대한다는 김재열(32ㆍ회사원) 씨는 “만약 제대로 된 형상을 한 사진을 한 장 찍기라도 한다면 ‘대박’?낼 수 있다는 심산도 작용한다”고 했다.

심령 사진에 관해선 영국 런던 남서부 햄튼궁을 배회하던 유령이 CCTV에 잡힌 얘기가 유명하다. 이 궁은 여섯 명의 아내 중 둘의 목을 쳐 영국 왕 중 가장 극악했다는 헨리 8세가 살았던 곳으로, 그의 3번째 아내인 제인 시무어가 이 곳에서 숨졌고 5번째 아내 캐서린 하워드가 간통으로 참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궁의 한 구역은 아예 ‘유령의 회랑’으로 불릴 만큼 유령의 출현이 잦아 영국에서도 별에 별 희한한 소문이 꼬리를 무는 궁이다. 그런 곳에서 유령의 모습이 폐쇄회로에 잡혔으니 그 테이프에 높은 가격이 매겨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동욱 씨는 그 테이프가 수억원에 거래됐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혼령 사진이 거래된 예는 없으나, 그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모임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인터넷상의 ‘잔혹한 소년의 공포(cafe.daum.net/wksghrgks)’, ‘잔혹한 소녀의 공포체험(cafe.daum.net/nde1)’의 모임은 그 이름이 설명하듯 미성년자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다. 나이 등 조건 미달에다, 여러가지 사정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그들의 열의와 카페의 인기 만큼은 뒤쳐지지 않는다.

키워드 ‘공포’, ‘귀신’으로만 검색된 모임은 100여 개. 이중 상당수가 10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고, 하루 평균 100여명이 신규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무르익고 있는 여름, 귀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정신과 전문의 인터뷰 – 사람들은 왜 공포에 열광하나
묘한 흥분 즐기기…불안한 시대상 반영 의미도

성능 좋은 냉방 장치들이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잘 알려진 대로 공포는 인체의 근육과 뇌를 긴장하게 만들고, 이는 체온을 떨어뜨려 심한 경우에는 한기까지 느끼게 한다. 그래서 과거 납량물들의 출현은 무더운 여름으로 한정됐다. 하지만, 요즘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고 귀신을 좇고 공포물에 탐닉하는 사람의 행동은 어떻게 봐야 할까.

행복찾기신경정신과의원의 이창한 원장은 공포를 통해서 느끼는 묘한 '흥분' 때문이라고 말한다. 번지점프를 하거나 롤러코스터와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 무서움을 느끼면서 짜릿한 스릴을 동시에 맛보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 그는 두려움과 공포는 성취감, 자신감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특히 극장에서 접하는 공포영화는 제 아무리 무섭더라도 스크린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일종의 안전망(흉가체험의 경우, 이 안전망은 동행하는 퇴마사)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이것을 이겨냈을 때는 여느 곳에서 느끼기 힘든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약자들에게 있어서는 인위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그것을 이겨내는 일련의 과정이 훌륭한 놀이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공포 체험이 긍정적인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포와 같은 높은 강도의 자극에 자주 노출되면 계속해서 더 강력하고 색다른 자극을 추구하게 돼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공포 문화가 만연될 수도 있다"고 이 원장은 말했다. 요즘과 같은 공포문화의 확산은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땐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공포를 즐기는 분위기는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즉 심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 등 현실에서의 불안감과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공포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례 없는 청년실업과 개인주의로 치닫는 사회 속에서 느끼는 대중들의 소외감과 이로 인해 증가하고 있는 자살의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은 얘기로 들린다.


정민승 기자
사진=박철중 기자, 자료사진


입력시간 : 2005-07-28 18:10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