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독립기념관의 어제와 오늘잊혀져가는 민족정기의 전당···관람객 급격 감소, 재미와 감동주는 운영시스템 도입 절실

[광복 60년] 광복 60년 '잔치'에서 비켜난 '독립의 상징'
[르포] 독립기념관의 어제와 오늘
잊혀져가는 민족정기의 전당···관람객 급격 감소, 재미와 감동주는 운영시스템 도입 절실


올해는 광복 60년, 을사늑약(乙巳勒約) 100년이 되는 해다. 또한 한ㆍ일 우정의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망언 등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의 반일 여론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60년, 100년이란 긴 세월에도 광복과 을사늑약의 의미가 약해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올 광복절엔 서울에서 남북이 함께 ‘자주ㆍ평화ㆍ통일을 위한 8ㆍ15 민족대축전’을 연다. 14일부터 17일까지 광화문 등지에서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북한 대표단 100여 명이 참석해 60년 전 광복의 기쁨을 남북이 한 마음으로 되새기게 된다.

그러나 정작 일제로부터 쟁취한 독립과 민족정기의 상징인 독립기념관은 광복절이 다가와도 썰렁하기만 하다. 주요 기념 행사가 열리지 않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광복 50주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 민족의 독립과 광복의 역사를 증거하는 독립기념관이 이런 굵직한 행사에서 비켜서 있을까. 8ㆍ15를 앞둔 2일 충남 천안시 목천면 흑성산록(黑城山麓)에 위치한 총 면적 120만 평 규모의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을 찾았다. 독립기념관은 올해로 개관 18년을 맞는다.

독립기념관은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파문으로 고조된 반일 감정과 민족의 정기를 후세에 알릴 기념비적 전당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업고 국민 성금으로 1987년 개관했다. 성금액은 모두 700억 원(이자수익 포함)이었다. 뜨거운 국민적 관심에 힘입어 개관 첫 해 관람객 600만 명, 다음 해 400만 명이라는 기록을 낳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내 열기가 식어 갔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연 관람객이 100만 명 이하를 기록, ‘썰렁한’ 독립기념관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됐다.

이처럼 국민들의 발길이 멀어져 간 것은 우선 천안이라는 위치 탓에 쉽게 오가기 힘들다는 근본적 이유와 함께 그 동안 ‘엄숙주의’에 집착한 재미없는 기념관 운영, 홍보 부족 등의 요인이 지적된다.

불편한 교통편, 정부차원의 지원책 필요

먼저 접근성의 불편함은 올해 서울서 천안까지 1호선 전철이 연결돼 다소 해소됐지만 천안 역에서 기념관까지 연설 교통망이 제대로 안돼 여전히 승용차 없이 가기엔 번거롭다. 또 승용차를 타고 가도 휴일이나 휴가철엔 교통체증 등을 감안하면 이동에만 최소 5시간 가량은 잡아야 한다.

이번 8ㆍ15 60주년 행사 개최 장소로 정부조차 독립기념관을 외면한 것은 이런 교통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당초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들어선 것은 전국 어디서나 접근하기 쉽고, 유관순 열사 생가 등 주변 지역에서 애국지사가 많이 배출됐다는 상징성과 싼 땅값에 따른 경제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결정됐었다. 그러나 현재론 ‘큰 마음 먹지 않고선 가보기 힘든 기념관’이 된 셈이다.

김삼웅 독립기념관 관장은 “기념관 건립 이후 국제화, 세계화 바람에 국민 정서의 원심력은 커지고 민족과 국가라는 구심력은 갈수록 약해지는 상황에서 독립기념관으로 국민의 발길을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관장은 그 동안 접근성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지자체와 협의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다며 아쉬워 한다. 그는 천안 전철역서 기념관까지 하루 4차례 운영하는 셔틀버스 운행 횟수를 대폭 늘리고 나아가 천안 전철역과 기념관을 잇는 경전철이나 모노레일 전철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나 지자체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실정이다. 기념관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 행정도시가 옮겨올 때쯤 되면 교통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을 뿐이다.

다음은 예산 부족 문제다. 독립기념관 한해 예산은 130억 원으로 시설 관리,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빼면 기획 전시 등 의욕적인 사업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빠듯한 예산 탓에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게 디지털을 이용한 전시, 영상물 제작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소로 여겨 마음먹고 오게 됐다는 한 관람객은 “전시물들이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너무 설명적이고 단편적”이라고 평한다. 평면적이고 나열식 전시에 젊은 세대들이 이내 식상해 한다는 얘기다.

예산 절대 부족, 의욕적 사업 엄두 못내

독립기념관은 개관 당시 4만 3,000여 점의 전시 자료에서 17년이 지난 현재 2만 여 점이 늘어난 7만 6,000여 점의 관련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자료 대부분이 사진자료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소장 자료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보물 952호인 ‘이광악(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을 도와 전승한 무신) 공신교서’ 1점 뿐 역사를 현장감 있게 보여줄 독립운동가의 유품이나 무기 등은 단지 수백 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요즘은 TV 쇼 프로그램 등에서 역사적 자료에 대한 상업적 관심을 높인 탓인지 전시할 자료의 무상 기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상당한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형편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음은 국민의 성금으로 지은 독립기념관에 대한 입장료 징수에 대한 논란이다. 현재 독립기념관 입장료는 어른은 1인 기준 2,000원이다. 청소년, 학생들은 1,100원, 미취학 어린이까지 7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개관 초기에 관람객들이 많았던 이유는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점도 있지만 단체 무료 입장이 많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독립기념관에 보다 많은 국민의 발길이 이어지게 하려면 적어도 청소년, 학생에 한해서는 무료 입장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한해 100만 명 규모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했을 경우 단체 할인 등을 제외한 실제 입장료 전체수입은 10억 내지 11억 원 정도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의 입장은 독립기념관도 ‘경영혁신 평가 대상 기관’으로 지정돼 예산이 나오는 만큼 수익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독립기념관 측은 수익을 내기 위해 기념관 광장을 공연장으로 개방하는 등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이곳은 경영 성과보다 역사교육의 기능을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편다.

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의 보다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 5급 이상의 국가공무원과 지휘관급 군인,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1일 역사교육 연수를 의무화하는 제안을 각 부처에 요청하고 있으나 호응이 없다고 한다. 사실 기념관 측은 이들이 온다 해도 숙식을 제공할 연수원 시설이 없어 당일 교육으로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현재 독립기념관 측은 기념관 서곡(西谷)지역의 유휴지 12만평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놓고 궁리 중이다. 연수원, 미래 한국관 등 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개발의 핵심은 국민이 즐겨 찾아 역사를 느끼고 배우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 독립운동사 용어 제대로 쓰고 있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광복 60년을 맞아 '독립운동사 용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독립기념관에서 4월 29, 30일 이틀간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그 동안 국정 역사교과서에서조차 일본 제국주의 시대 '식민사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용어를 사용해 온 사실을 지적하고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 용어'를 소개했다.

특히 김삼웅 독립기념관 관장은 '일제침략과 통치용어 실태'라는 발표문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일제 관련 용어가 식민사관 내지 자학사관에 근거한 잘못된 용어임을 나름의 근거를 들어 주장하고 있다. 물론 김 관장이 주장하는 용어는 학계의 보다 면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 관장에 따르면 우선 우리가 흔히 쓰는 '정한론(征韓論)'은 일본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도발하는 외적을 응징한다는 뜻으로 우리의 주체적 입장에서는 마땅히 '일제침략론'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병토벌'은 '의병학살'로, 고종과 순종은 '광무황제'와 '융희황제'로 써야 옳다고 밝혔다.

특히 '한일합방'은 '경술국치' 내지 '강제병합'으로 사용해야 하고, '헤이그밀사'라는 용어는 일제가 대한제국과 광무황제의 정당한 특사외교를 밀사로 폄하한 것으로 '헤이그특사'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만주사변'은 '만주침략'으로 사건의 성격과 내용의 모호함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헌법에 명기된 '한반도'라는 용어조차 식민사관인 지정학적 운명론(반도적 성격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제가 만든 신조어라 규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내지(內地) 즉 '온 섬(全島)'라 명명하고 한국은 섬도 못 되는 반 섬, 섬의 하위 개념인 변방으로 바하시키고자 하여 '반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이탈리아 반도' 또 스칸디나비아를 '스칸지나비아 반도'라 부르지 않듯이 우리도 한반도란 용어 대신 '한국전역' 또는 '대한민국'이라 표기해야 옳다는 주장을 폈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8-11 15:18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