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장려금·정착금 지원에 주소이전 캠페인까지, 인구늘리기 안간힘

[지자체 '주민 사수작전']
인구 줄어 세수 감소·기구 축소…존립기반 흔들

출산장려금·정착금 지원에 주소이전 캠페인까지, 인구늘리기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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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원 동해시청 공무원들은 고유 업무가 아닌 ‘가욋일’로 무척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니, 어쩌면 맡은 바 업무보다 휠씬 더 중요한 일이다. 자신들의 존재 기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이기에 그렇다. 시민들이 없다면 시청이 무슨 소용이고 공무원은 또 어디에 필요할 것인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름아닌 ‘인구 지키기’다.

1980년 4월 시로 승격된 동해는 초창기 몇 년 동안 인구 10만 명 시대를 이어가다 1985년 9만 명 대로 떨어진 뒤 1990년에는 8만 명 대로 추락하는 1차 인구 감소 위기를 겪은 바 있다. 그러다 인구가 조금씩 회복돼 2000년에는 시 역사상 정점인 10만4,400여 명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감소세로 반전, 지난 7월말 현재 10만47명까지 줄어들었다.

이러다 보니 동해 주변에선 또 다시 인구 10만 붕괴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시정을 책임진 시청과 시의회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더 이상 인구 감소를 방치할 수 없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인구 사수 작전’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얼마 전 시장을 비롯한 시청 과장급 이상 간부들과 시의원들은 함께 조를 편성해 관내 기업체, 기관, 학교, 군 부대 등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타 지역에서 동해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주소 이전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자치행정계의 한 관계자는 “자녀들을 위해 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인근 도시에 거주하면서 우리 시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은 편인데, 이런 분들에게 당사자들만이라도 주소를 좀 옮겨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해시는 현재 거주 중인 시민들에게도 “인구 1명이 줄면 세수는 200만 원이 감소한다”며 타 지역 전출 자제를 요청하는 ‘읍소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출산 장려 정책도 본격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오는 9월 관련 조례를 제정해 출산 장려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시는 또 중장기적인 인구 증가 여건 확충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령 진해 소재 해군 교육사령부 이전설이 나돌자 재빨리 유치 작업에 나선 것이나 종합휴양 문화시설과 골프 리조트 등을 개발하기로 한 것 등이 그런 예다.

경남은행 본점 직원 50여 명이 자원봉사단을 구성해 이농과 농번기로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경남 창녕군 농촌에서 양파수확을 돕고 있다.

동해만 다급한 것이 아니다. 강원 도내 대부분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슷옇恥裏?앓고 있다. 동해시 관계자는 “그나마 우리 형편은 낫다고 본다. 강릉이나 삼척 등은 더 심각한 것으로 안다. 아마 강원 도내에서 인구 감소로 고민하지 않는 지자체는 기업 도시 호재를 가진 원주 정도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지자체들의 인구 감소 위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1970~80년대 산업화 이후 이농(離農) 현상이 급가속 페달을 밟은 데다, 저출산 구조의 정착, 노령층의 사망으로 인한 인구 자연 감소 등 악재가 줄줄이 겹치면서 농촌 지역 지자체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농촌발 인구 감소가 인근 도시 지역으로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자치부 지역경제팀 최승극 사무관은 “농촌 지역 군 단위 지자체들은 거의 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경북 북부의 안동, 영주나 강원 동해안 쪽의 강릉, 동해, 속초, 태백 등 시 단위 지자체들마저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경북·강원 시 단위까지 위기감
수도권과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이 농촌뿐 아니라 지방 중소 도시에게도 서서히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지표들은 이런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1분기 인구이동 현황에 따르면, 전국 234개 시ㆍ군ㆍ구 중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은 전출초과(순 인구유출) 지역은 모두 172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입초과(순 인구유입) 지역은 62개였는데,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인구가 몰리는 수도권과 광역시의 시ㆍ구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농촌 지역 군이나 지방 중소 도시에서 사람들이 빠져 나와 대도시와 인근 지역으로 집중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지 않는데 노인들이 사망하면서 빚어지는 인구 자연 감소도 심각하다. 지난 5월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출생 인구 수보다 사망 인구 수가 많은 전국 시ㆍ군ㆍ구가 2004년 기준 87개에 달했다. 특히 경북과 전남은 각각 18개와 17개 시ㆍ군에서 사망자가 출생자를 초과하는 등 인구 자연 감소가 광범위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 농촌 들녘에서는 아침부터 수확한 홍화씨를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최근 경북 영양군은 인구 2만 명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공무원과 친지들의 주소 이전 등으로 근근이 최후 방어선을 지키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만큼 위급하다. 올 1월 기준 영양군의 인구는 2만205명에 불과하다. 강원 양구와 화천군도 각각 2만1,000여명과 2만4,000여명으로 영양의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경우다. 시 중에서는 강원 태백시가 5만3,000여명으로 시 승격 기준인 인구 5만에 겨우 턱걸이를 하고 있는 신세다.

지자체들도 넋 놓고 있을 수는 없게 됐다. 더 이상 인구가 줄어들면 충격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세수 감소, 지방 교부세 축소 등 인구 감소로 인한 후폭풍은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 재정을 더욱 곤경으로 몰아 넣을 뿐 아니라 지자체 기구와 직제도 줄여야 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자존심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명색이 시ㆍ군인데 웬만한 대도시의 일개 구나 동보다 못한 인구 수로는 도대체 낯이 서지 않는다는 단체장들의 푸념은 괜한 것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시ㆍ군ㆍ구가 당장 폐지되는 것도 아닌데 인구 사수에 목을 매는 것은 이런 연유들 때문이다.

인구 감소 문제에 일찌감치 직면한 농촌 지역 지자체들은 벌써 수 년 전부터 대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지방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저촉 경고에도 불구하고 실시하는 출산 장려금 제도는 이제 보편적인 인구 유인책이 됐다. 첫째 아이에서 둘째, 셋째로 갈수록 장려금 액수가 더 늘어나는 차등 지급 방식을 도입한 곳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상당량의 육아 용품이나 보육비까지 함께 주는 등 선심 공세를 대폭 강화한 지자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착 지원금을 주거나 임대 주택 건설, 주소 이전 운동을 벌이는 경우도 일반화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공무원과 해당 가족, 친지들의 주소 이전을 강제적으로 밀어붙여 원성을 산다는 씁쓸한 소식도 들려 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인구 증가 효과가 미미할 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지적이다. 출산 장려금 제도의 경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 자체가 부족한 데다 교육 여건마?부실한 상황에서 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주소 이전 운동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다수 지자체 관계자들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인구 유입만이 가장 직접적인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정한 고용 규모를 가진 기업이나 관공서 등이 지역에 입주해야만 중장기적인 인구 증가를 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북 구미나 충남 아산, 경기 파주 등은 대규모 공장 입주가 이어지면서 휘파람을 부르고 있다.

기업·관공서 유치 치열한 경쟁
이 때문일까. 요즘 전국 곳곳에서는 지자체들의 기업ㆍ관공서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결정된 공공기관 대규모 재배치에 이은 혁신도시 건설 정책은 불에 기름을 부은 형세다. 광역시ㆍ도의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유치 명분을 내세우며 다투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지도 10년. 그러나 출범할 때의 거창한 비전은 온데 간데 없고 인구 감소로 존립을 위협 받는 지자체들의 생존 경쟁이 안쓰럽기만 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송귀근 국장
"공공기관 이전·신활력사업 낙후지역 살릴 것"

참여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 중 하나가 국토의 균형발전이다. 이를 위해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충청권 건설을 추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명칭도 다 기억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지역 개발 정책을 쏟아 놓았다. 그??보니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 결정을 받아 수정을 거듭해야 했고, 전 국토는 개발 붐에 따른 부동산 투기판으로 변질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타당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도농 격차, 수도권 집중 현상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송귀근 지역개발국장은 "인구 감소로 인한 농촌 지자체들의 피폐한 현실을 타개하는 가장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은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기업이나 기관, 연구소 등을 한 군데 집중시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혁신 클러스터와, 기업과 공장들이 보다 쉽게 입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크게 완화한 지역특화발전 특구 정책 등도 농촌 지역 지자체들을 살릴 수 있는 매우 유효한 수단이라고 덧붙인다.

지역개발국에서 개발하고 행정자치부가 추진 중인 '신활력 사업'도 눈여겨볼 만한 정책이다. 송 국장은 이에 대해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70개 군을 선정, 중앙 정부가 예산 지원을 하는 이 사업은 소프트웨어적인 자립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신활력 사업은 과거처럼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지어주는 등 하드웨어적인 지원으로는 지방의 침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각 지자체 고유의 역사와 문화, 관광 자원 등을 활용하는 특성화 사업을 강화해야만 자립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친환경 유기농 특화 사업이나 지방 축제 등은 그런 예다.

송 국장은 또 농촌 인구의 감소를 막는 것과 동시에 도시 은퇴 인구의 전원 회귀 유도를 농촌 지자체의 활력을 되찾는 방안으로 꼽았다. 앞으로 정부의 정책은 두 가지를 병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8-24 15:34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