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자니 갈등에 휩싸일테고 놓자니 지원금이 날아가고

['뜨거운 감자' 방폐장] 지자체 '방폐장 유치' 딜레마
쥐자니 갈등에 휩싸일테고 놓자니 지원금이 날아가고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 유치 신청 기한이 8월말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적지 않은 풍파가 일어나고 있다. 방폐장이 들어서는 지역에는 ‘3,000억원+α’의 지원금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이전, 양성자 가속기 설치 등의 혜택이 주어짐에 따라 이를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간의 경쟁이 표면화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경쟁과 함께 여러 갈래의 갈등도 표출되고 있다. 방폐장 유치를 추진하는 지자체 내에서는 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대립하고 있고, 주민간의 의견 대립이 덜한 지자체는 시민단체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유치 신청서를 낸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인접한 이웃 지자체 간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이웃’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처음으로 신청서를 낸 경주시와 여기에 반대하는 울산광역시 사이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경주시가 산업자원부에 유치신청서를 냈던 8월 16일. 울산시 의회는 경주시에 항의공문을 보냈다. ‘경주 지역에 방폐장이 들어서면 경주보다 4배나 많은 울산 인구의 90%가 방폐장 유치지역 반경 30㎞이내에 거주하게 돼, 지원금은 경주가 챙기고 불이익은 울산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게 요지다.

‘준저준위 방사선 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을 반경 5㎞ 이내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방폐장 신청지인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가 선정되더라도 5㎞이상 떨어진 울산으로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

모 증권 울산 지점의 정만호(32)씨는 “태화강에 연어가 돌아오고 전국수영대회가 열릴 정도로 공해 도시에서 환경도시로 이미지를 바꿔나가고 있는 지금 인근 경주시에서, 그것도 울산과 인접한 곳에 방폐장을 유치한다는데 좋아할 울산 시민이 어디 있겠느냐”며 “대다수의 울산 시민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울산의 태도에 대해 경주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분위기다. 대구지검 경주지청 근처에서 1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호(54)씨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울산이 성장하면서 내뿜은 공해를 경주가 고스란히 뒤집어 쓰면서도 한마디 말도 안 했는데, 원자력 발전소보다 안전하다는 시설 하나에 이럴 수냐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경주 시청의 한 관계자는 “월성(월성군이던 것이 경주군을 거쳐 1995년에 경주시에 편입됨)원자력 발전소에는 고준위 방사선 물질을 내포한 4기의 원자로가 이미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CT 전신 촬영 때 쬐는 방사선 양의 1만분의 1, 자연에서 접하는 방사선 수치 정도밖에 내뿜지않는 방폐장을 유치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반대를 하는 것은 배가 아파 앙탈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청 관계자는 “방폐장이 들어서더라도 지금의 월성발전소(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보다 더 먼 북쪽(양북면 봉길리)으로 들어서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경주 월성발전소에는 올해 내에 원자로 2기의 공사가 착공된다고 덧붙였다.

방폐장 유치를 추진하는 경주, 군산, 울진, 포항, 영덕, 삼척 등 전국 6개 지역 내 갈등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전 지역에 걸쳐 찬반 양측간 성명전이 난무하는 가운데 일부 지역에선 천막농성, 단식농성 등 극단적 시위양상을 보이고 있어 제 2의 부안 사태를 부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선 찬성하는 측의 활동이 반대파 못지 않게 적극적이다. 23개 대학 총장들로 구성된 ‘대구ㆍ경북 대학총장협의회’는 8월24일 성명서를 냈다. “방폐장 건설은 동해안을 포함한 대구ㆍ경북 발전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다.

국내 최대 원전 집적지이자 국가 전력 생산의 중심인 동해안에 방폐장을 유치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이의근 경북지사와의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여기에 질세라 전북 군산시는 9월1일부터 열흘 동안 ‘원사모(원자력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1,000여명이 참여하는 ‘3대 국책사업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어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강원 삼척도 예외는 아니다. 삼척상공회의소는 “경기 위축, 인구감소 등을 해소하기 위해 방폐장 유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보資?내고 조직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부안의 경우는 한 걸음 더 나가고 있다. 의회 의장과 부의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유치 찬성의원끼리 유치동의안을 가결시켜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방폐방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민주노동당과 환경운동연합 등으로 구성된 민간법률조사단에 의하면 지난 5월 군산시 공무원 669명이 ‘원자력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공무원 모임’을 구성해 시내에서 방폐장 유치 홍보 활동을 벌임으로써 사전 투표운동으로 주민투표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경주시도 방폐장 유치를 목적으로 지난달 시의회에서 민간경상보조금 계정을 신설해 지방재정법 14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2003년의 전북 부안 사태처럼 1991년에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이번 유치전에 뛰어든 포항은 다른 지자체와 달리 지질조사 전 단계서부터 주민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여 적지 않은 호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청 공무원들이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원자력발전소 견학을 시켜줘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논란에 따라 방폐장 부지가 최종 선정되더라도 상당 기간 후유증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기도 한다.

찬성 활동 못지 않게 반대 목소리도 높다. 포항시 농업경영인연합회 등 포항ㆍ경주지역 4개 농업관련단체는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고, 문화연대를 비롯한 문화계 단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주를 방폐장과 맞바꾸려 한다”며 철회를 강력 요구한 데 이어 앞으로 유치 신청 취소서명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경주의 방폐장 유치 신청에 반대 의사를 밝힌 울산시 의회 윤종오 의원은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사탕발림식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역내부의 갈등과 지자체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사업 추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의원은 이어 “방폐장은 그 동안 굴업도, 안면도를 비롯해 최근의 부안군까지 안전성과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로 국민들에게 철저히 거부된 사안이었던 만큼 장기적 안목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찬성과 반대를 둘러 싼 다양한 갈등을 뚫고 방폐장 부지 선정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국민적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08-30 19:58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