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집] 부담없이 누워 몸매를 생각하며 녹차와 함께 영화 삼매경에 빠지다


수확의 계절 가을은 예로부터 농부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다. 벼를 일일이 낫으로 베어 볏단으로 묶어 두고, 거둔 곡식은 탯돌이나 개상으로 내려쳐서 알곡을 떨어낸다.

요즘에는 탈곡기로 간단하게 해결해버리지만, 여전히 농사일은 사람의 노동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수확 이후 농부들이 느끼는 여유와 풍족함은 현대 도시인들이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추석이 최고의 명절로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자축하는 축제인 추석은 농부들에게 일종의 자연이 허락한 노동 유예 시간이다. 도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국가와 회사가 허락한 법적 노동 유예 시간이다.

노동의 빈 자리를 영화의 재미로 채워보자.

나의 몸매를 자극하는 영화 ‘허니’

재미는 한껏 채워도 배는 비우자. 자고로 추석은 다이어트와 건강의 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추석음식 대부분이 열량이 높기 때문에 체중이 증가하기 쉽다. 이럴 때 다이어트를 종용하고 나의 몸매를 자극하는 영화를 보면 어떨까. 쭉쭉 빵빵 몸매들의 성찬 영화 ‘허니’가 그것이다.

<플래쉬 댄스> <더티 댄싱>등 댄스영화의 계보를 잇는 <허니>는 힙합의 역동성으로 온몸을 흔들게 만드는 신나는 영화다. 프로 안무가가 되는 것이 꿈인 ‘허니 다니엘스’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브롱크스 청소년 센터에서 힙합을 가르친다.









그러다 우연히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의 눈에 띄어 타고난 솜씨를 발휘, 유명가수 들의 뮤직비디오 안무를 맡으면서 성공적인 안무가로 성장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학생들을 뮤직비디오에 참여시켜 불우한 환경에서 꿈을 잃고 사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몸을 요구하는 감독을 거절하자 감독은 아이들의 출연 약속을 취소해 버리고 허니를 해고해 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자선 댄스공연을 준비한다.

이 영화는 ‘제시카 알바’의 멋진 춤 솜씨만으로도 충분히 돈이 아깝지 않다. 거기다 알바의 군살 없는 몸매를 보는 것은 보너스다.

제시카 알바는 청순미와 섹시미를 고루 겸비해 ‘안젤리나 졸리’의 뒤를 잇는 새로운 할리우드 섹시 스타로, 이국적인 미모와 탄탄한 연기력을 앞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빌리 우드러프’ 감독의 독특한 연출 감각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허니>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 우드러프 감독은 백 스트리트 보이즈, 어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롯해 수많은 톱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시선을 잡아 끄는 세트, 패션에 대한 깊은 통찰력, 자신만의 놀라운 퍼포먼스 등 인상적인 이미지들이 영화 속에 잘 배어있다.

하지만 스크린 데뷔작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주인공 허니역의 ‘제시카 알바’ 섭외일 것이다. 아름다운 미모에 탁월한 춤 솜씨, 거기다 착한 마음씨마저 갖춘 매력적인 주인공 허니 만큼 영화는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진부하고 결론이 뻔한 교훈적인 스토리가 이어지다 후반부에서 급격히 힘이 떨어지고 만다. 힙합의 자유로운 발상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알바’의 재발견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눈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강렬한 힙합댄스와 ‘제시카 알바’의 매력에 푹 빠질 사람들에게는 제격인 영화다.

차라리 부담 없어 좋다. ‘PM 11:14'

다이어트도 뭐고 다 필요 없다. ‘인생 뭐 별거 있어. 그냥 한 번 즐기는거야.’ 이런 단순 무식한 마음가짐의 소유자들에게 적합한 영화다. ‘PM 11:14’는 남는 게 없어서 차라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영화는 조용한 미들톤 마을에서 늦은 밤 11시14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만취한 운전자가 도로가에서 젊은 남성을 차로 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남자가 차로 들이박은 젊은 남자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이 해소되기도 전에 또 다른 주인공들이 도로를 질주한다. 일탈을 즐기는 10대들이 광란의 폭주를 하면서 역시 한 여성을 차로 치고 만다.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시간은 다시 뒤로 흘러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한 소녀가 나온다. 그녀?남자친구와 섹스를 하는 중에 남자친구가 사고로 죽자 사건을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그 순간 영화는 편의점으로 장소를 옮긴다. 임신한 여자친구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강도 짓을 하는 젊은 남성. 하지만 완전범죄도 실패하고 여자친구도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

도무지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이는 사건들의 연속. 하지만 이들은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돼 있다. 영화는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게 만든다. 치밀한 각본의 힘으로 말이다.

영화는 일종의 비선형(Non Linear) 스타일로 사건을 역추적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모든 사건의 전말이 마지막에 드러나는 식이다.

물론 이미 시간의 재해석을 통해 기승전결을 해체 시켜 버렸던 영화 ‘메멘토’나 ‘펄프픽션’을 본 관객들이라면 ‘PM 11:14’가 이들 영화의 아류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7세의 신예감독 그레그 막스의 부조리한 위트도 이 5,500만달러 저 예산 영화에서 나름대로 빛을 발한다. 적어도 관객은 영화 상영시간 동안 지루해 하거나 뻔한 스토리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반전은 기막히고 타이밍은 절묘하다. 하지만 주제의식은 찾기 힘들다. 쿨하게 부담 없이 즐기기에 만족하면 된다.

인생의 참 맛 ‘녹차의 맛’










하지만 단순 명쾌하게 살고 싶어도 인생은 언제나 우리를 고달프게 만든다. 명절이면 왠지 허무와 감상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경우 ‘녹차의 맛’이 제격이다. 씁쓸한 듯 깊은 맛이 나는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다.

부천 영화제 상영작이었던 ‘녹차의 맛’은 일본의 소박한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짝사랑에 빠진 소년 하지메와 종종 거대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는 소녀 사치코, 음악 믹싱일을 하며 옛사랑의 추억을 안고 사는 삼촌 아야노, 만화가로 재기하려는 엄마와 엄마에게 노래와 율동으로 독특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괴짜 할아버지 등 뭔가 하나씩 자기의 세계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 조용히 소통하며 살고 있다.

때로는 관객과 너무 소통을 안 하는 듯해 영화가 자칫 따분할 지도 모르나, 녹차 맛처럼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깊은 맛이 느껴진다.

간간이 등장하는 동화적이고 만화적인 장면이 압권인데, 그 가운데 괴짜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야마야 송(산 노래) 뮤직 비디오’는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노래가 중독성도 강해, 보고 나면 자신도 모르고 빠져들고 만다. 영화 속에서 이 노래를 명쾌하게 한 마디로 표현했다. ‘이상한 느낌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게 미지의 세계의 변태 같은 느낌.’ 이 영화가 조금 이러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강한 캐릭터들에게서 음침하고 음흉한 느낌, 마구 말하자면 변태성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묘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그들의 긍정적인 얼굴’ 때문이다. 영화는 3대에 걸친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끌어 안으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결코 뜨거운 가족애를 열열이 드러내보이지는 않지만, 은근한 강도로 깊숙이 소통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내공을 선보이고 있다.

추석은 가족의 내공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혹시라도 공력이 다한 가족들은 다 함께 ‘녹차의 맛’을 음미하며 담백한 대화를 나눠보자.


정선영


입력시간 : 2005-09-14 17:07


정선영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