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 장터에 들러 추억과 향수를 마음에 새긴다.

[추석 특집] 여행
고향길 장터에 들러 추억과 향수를 마음에 새긴다.

인천 소래시장

수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어시장

올해는 추석 연휴기간이 사흘밖에 되지 않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한다. 텅 빈 듯한 삭막한 대도시에서 철저히 혼자가 된 듯한 고독감에 빠지는 것보다는 바람이라도 쏘일 겸해서 도시 외곽으로 잠깐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대중교통 편으로도 찾아가기 수월한 인천의 소래 포구는 수도권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어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어시장 좌판엔 힘차게 파닥이는 왕새우와 꽃게 등은 물론, 광어 우럭 망둥어 같은 생선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싱싱한 생선을 회 떠 크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부둣가에서 바닷바람 쐬면서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을 것이다. 모듬 회 2만원 어치 정도면 성인 두어 명이 입맛을 돋울 수 있다.

전통적으로 소래 포구의 명물은 김장철에 나오는 즉석 새우젓이다. 그러나 요즘엔 전어와 대하를 빼놓을 수 없다. 너무나도 고소해 ‘깨가 서말’이라는 가을 전어는 1kg에 1~2만원 정도. 또 누가 뭐라 해도 가을엔 대하다. 1kg(2만원) 정도면 어른 서너 명이 마음껏 탱탱하고 고소한 대하의 육질을 맛볼 수 있다. 지난 주부터 나오기 시작한 꽃게는 수놈이 1kg에 1만원, 암놈은 1만,5000원 정도다. 장이 열리는 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몰을 전후한 시간에 방문객이 많다.

소래 포구 어시장 어귀에 있는 소래 철교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달리던 다리다. 아직 남아있는 협궤철로나 침목을 밟으며 다리를 건너는 맛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철교 위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다워 저녁 노을을 감상하려는 가족과 연인들이 많이 몰린다.

여행정보: 대중교통은 전철 1호선 개봉역→1번 버스→소래 포구, 제물포역ㆍ동인천역→21번 버스→소래. 전철 4호선→오이도역→소래 포구(시내버스 10~20분 소요). 승용차는 제2 경인고속도로→남동 나들목→남동공단→소래 포구. 또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월곶 나들목으로 나오면 바로 소래 어시장이다. 어시장 맞은 편인 월곶에 숙박시설이 많다.
경북 봉화장

향긋한 송이가 일품…맛 좋은 사과도 자랑

북부 경북엔 안동 의성 영양 예천 영주 같은 양반문화의 보고로 불리는 고을이 많다. 봉화 역시 북부 경북의 ‘양반문화권’에 당당히 속하는 고을이지만 일반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경지면적이 전체의 12%에 불과할 정도로 산악지대이기 때문이다.

봉화읍 내의 내성천 변에 자리한 봉화장은 원래는 내성장으로 불렸으나, 장터가 있는 내성면이 1956년에 봉화면으로 개명되면서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내성장은 비록 산골에 있다 해도 ‘들락날락 내성장’이란 말도 있을 정도로 경기가 제법 좋았다. 그래서 영동선 철로가 뚫리기 전에는 경북 북부에서 찾아온 장꾼들이 500명이 넘을 정도였으나 1980년대 100명이 채 안될 정도로 줄었다가 봉화군에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관심을 쏟은 덕에 요즘에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장날에는 산간 오지에서 거둬온 싱싱한 농산물과 임산물이 계절마다 나온다. 가을엔 맛좋은 봉화 사과를 빼놓을 수 없다. 또 9월 초부터 나기 시작한 송이는 1등급 짜리 1kg에 30만~35만원을 호가한다. 송이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9월 말에는 봉화송이축제가 열리는데, 송이가 자생하는 산을 오르며 직접 채취한 다음, 산림조합 공판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송이체험 행사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올해는 9월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펼쳐진다.

봉화장은 5일장(2, 7일)으로 아침 일찍부터 오후 2~3시까지 장이 선다.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5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 봉화 읍내에 여관 등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묵호항 어시장

“싱싱한 동해 오징어 맛 좀 보시래요.”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7번 국도 변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항구 중 여러 면에서 빠지지 않는 어시장이다. 20세기 중반에 도계나 태백 등지의 석탄을 옮겨와 배로 실어낼 때는 석탄가루가 바닷물을 늘 검게 물들였으나, 20세기 후반에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어선이 주로 드나드는 한적한 항구가 되었다.

가을 오징어철이 되면 묵호항 앞바다는 화려한 꽃밭으로 변한다. 이 꽃밭은 밤새도록 스러지지 않는다. 이윽고 밤샘 조업을 마친 오징어잡이 배들이 하나 둘 뱃고동을 울리며 포구로 돌아오면 새벽 항구는 생명력이 철철 넘친다.

태풍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싱싱하고 큼직한 오징어가 10마리에 1만원 정도다. 파도가 높아 오징어잡이 배가 나가지 못했을 땐 1만원에 5마리 정도로 비싸지지만, 이것도 회 떠서 소주 안주에다가 회 덮밥을 해먹고 이튿날 해장국 삼아 오징어국을 끓여도 남을 정도의 양이다. 어판장 부둣가에는 회만 전문적으로 떠주는 아주머니들이 수십 명이 있다. 보통 회 1만원 어치에 1,000원 정도 받는다.

여행정보: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 나들목→동해→묵호항. 망상해수욕장 주변이나 무릉계곡 입구에 숙식할 곳이 많다.
홍천 서석장

순박한 산골 인심을 덤으로 만나는 5일장

홍천 서석장

강원 산골 주민들의 순박한 인심을 만날 수 있는 서석장은 조선시대 영동과 영서를 오가던 보부상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인제 평창 횡성 등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으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많이 약해졌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홍천까지 4차선 도로가 뚫리고 56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 덕에 서석장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으나 평일에 서는 장날은 외지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산한 편이다.

유명한 홍천 옥수수는 8월 말까지가 제철이라 아쉽게도 추석 무렵엔 맛볼 수 없다.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두메식품(033-436-4488)의 옥수수찐빵이 별미다. 20개 들어있는 한 박스에 7,000원. 추석 무렵에 많이 나오는 씨알 굵은 감자 1박스(20kg)에 7,000~1만4,000원, 콩은 한 관(4kg)에 2만원 정도다.

홍천의 서석은 워낙 오지라 장날이 아니면 사람 얼굴 보기도 어려우니 가능하면 장날(4, 9일장)을 잘 맞춰가야 한다. 장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열린다.

교통: 서울→6번 국도→양평→44번 국도→홍천→56번 국도→서석→서석장.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횡성 나들목→19번 국도→서석. 승용차로 50여분 거리의 계방천 주변에 펜션이나 민박 같은 숙박시설이 많다.
무주 반딧불이장

전라 충청 경상 3도 말씨 정겨워

1890년쯤 관아 터인 현재의 우체국 자리에 처음 자리 잡은 무주장은 1919년 3ㆍ1 운동 때는 무주 군민들이 만세를 외쳤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 후 6ㆍ25전쟁 당시 장터가 불타 없어져 버렸고, 무주교 주변에서 이어져 오다가 1953년 휴전 후에 현 위치인 하리마을 일대에서 장이 펼쳐졌다. 그러다 2001년 상가를 정비하고 이름을 반딧불 장터라 지었다. 시장의 각 권역을 애반디동, 늦반디동, 꽃반디동, 파파리동, 달팽이동, 고딩이동 등 반딧불과 관련 있는 이름을 붙인 것이 재미있다.

서로 묻안베오貫玲?장터는 생동감이 넘치고, 물건 사라 외치는 장돌뱅이 아저씨 목소리도 정겹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상도 말씨, 전라도 말씨, 충청도 말씨 등 3도의 말씨가 뒤섞여있는 것이 무주장만의 특성이다. 무주 주민들은 물론 인접한 진안군 동향면 안천면, 장수군 계북면, 충북 영동군 학산면, 충남 금산군 부리면 재원면 주민들이 찾아와 서로 섞인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장의 규모가 제법 커져 웬만한 상품은 다 나와있으나, 추석 무렵엔 사과 복숭아 밤 호도, 그리고 고추 마늘 등이 많이 나온다. 매월 1일, 6일마다 열리는 5일장이다. 보통 오후 3시경까지 판을 벌인다.

여행정보: 대전-平斂?고속도로 무주 나들목→19번 국도→3km→무주 읍내 반딧불이장터. 덕유산 입구인 삼공리에 깨끗한 숙박시설이 많다. 남대천과 금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로 만드는 어죽이 별미다. 군청 뒷골목에 있는 금강식당(063-322-0979)이 유명하다.
하동 화개장터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

하동 화개장터 대장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하동의 화개장은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노래 덕에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터 중 하나로 떠올랐지만, 실제로도 화개장은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5일장(1, 6일)이었다.

화개장터는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하다. 소설엔 그 당시의 장터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또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통영 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섬진강 뱃길을 이용하여 각종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왔으니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장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예전의 화개장터는 은어회를 파는 식당촌으로 바뀐 지 오래다. 대신 최근 그 맞은 편에 장터를 새로 조성했는데, 5일장이 아니라 매일 판이 벌어지는 상설시장이다.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토요일과 일요일엔 제법 장이 크게 선다. 망치소리 요란한 대장간부터 뻥튀기장수, 국밥집 등이 자리잡고 있어 간단하게 요기하며 돌아볼 수 있다. 추석 무렵엔 토실토실한 햇밤이 많이 나온다. 지리산에서 나온 약초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정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올림픽고속도로→남원 나들목→19번 국도→구례→화개장터. 또는 남해고속도로→하동나들목→19번 국도→하동→화개장터. 화개천 쌍계사 주변에 민박집과 여관이 많다.
통영 서호시장

‘동양의 나폴리’를 깨우는 새벽 어시장

통영 어시장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던 조선시대부터 맛으로도 소문났던 미항(美港)이다. 밤이 깊을수록 통영항은 더욱더 찬란한 빛깔로 살아난다. 문예회관이 있는 남망산 공원이 통영항 야경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이렇게 저녁에 통영항 야경을 구경하고 이튿날 새벽에 여객선터미널 앞에 있는 서호시장을 구경하면 좋다.

현지 주민들이 값싸고 싱싱한 어물을 구입할 때 찾아가는 서호시장은 어느 계절에 가든지 먹거리가 넘쳐 나기 때문에 외지인들도 한枰?꼭 들러 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이른 새벽에 바닷가 사람들의 질펀한 사투리를 들으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면 통영 앞바다인 한려수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의 종류가 얼마나 많고 싼 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요즘 통영 앞바다에선 망둥어과에 속하는 꼬시래기라는 생선이 많이 잡힌다. 회 무침으로 먹으면 아주 좋은데, 1만원 정도만 투자하면 어른 다섯 명이 실컷 맛볼 수 있다. 시장은 매일 새벽 3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열리는데, 해뜨기 전인 새벽 4~5시가 절정이다.

여행정보: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진주분기점→남해고속도로→사천 나들목→33번 국도→사천→고성→통영. 통영항 주변에 숙박시설이 아주 많다. 통영의 별미인 복국과 통뎠癰嶽?서호시장 입구에서 맛볼 수 있다.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09-14 19:25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