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파워 폭발적 성장세, 남성중심사회의 메인스트림 바꿔

[커버 스토리] 女子가 세상을 바꾼다
여성파워 폭발적 성장세, 남성중심사회의 메인스트림 바꿔

세상의 반쪽은 여자다. 2005년 여성 인구는 2,396만명, 남성은 2,433만명으로 성별 구성비를 보면 여성이 49.6% 남성은 50.4%다.

그러나 이 엄연한 세상의 반쪽이 사회적으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7년 군사정권의 종식은 민주화 열풍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엄청난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시민사회의 형성과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성장은 무엇보다 각 분야에 거세게 불어 닥친 ‘여풍(女風)’으로 특징지어 진다. 또한 여풍은 구시대의 질서와 분명하게 결별하는 사회적 징표였던 셈이다.

가히 ‘여성 혁명’이라고도 일컫는 지난 10여 년 동안 여성의 위상 변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과거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던 정치권, 재계, 법조계 등의 두터운 벽은 여성 엘리트들의 파워 앞에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에는 남성들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단기간에 이뤄진 법적ㆍ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여성의 지위 개선은 남성 중심 사회에 익숙한 이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성균관대 정현백 교수(사학)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동원된 공단지역의 여성노동자, 소위 ‘공순이’들로부터다.

또한 이들 ‘공순이’의 목소리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힘겨운 저항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시작으로도 평가된다.

이 같은 여성들의 목소리는 군부정권의 종식과 함께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1970, 80년대 생존권 투쟁을 외치며 노동운동 차원에 머물렀던 여성 운동은 1990년대 들어 양성평등 등 여권(女權)의 광범위한 이슈로 확대되어 갔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으로 시작된 여성의 인권과 권익 향상에 대한 제도적 정비는 91년 영유아보육법, 94년 성폭력특별법, 95년 여성발전기본법, 97년 가정폭력방지법, 99년 남녀차별금지법, 2004년 성매매방지법, 2005년 호주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압축적인 진전을 보였다.

공직사회 진출 크게 늘어나

특히 공직 사회의 여성 파워는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다. 공무원 채용시험에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의 뚜렷한 확대가 이를 입증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의하면, 행정고시의 경우 여성합격자의 비율이 1984년 1.3%에서 95년 10.4%, 2000년 25.1%, 2004년엔 38.4%까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또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는 1983년 5%에서 2004년에는 35%로, 사법고시는 1983년 3.7%이던 것이 2004년엔 24%나 됐다. 더욱이 올해엔 판ㆍ검사 지원자의 44%가 여성이었다.

또 중하위직 공직에도 여성의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7급 행정ㆍ공안직 채용시험의 여성 비율은 1983년 3.7%에서 2004년에는 28.1%로, 9급 행정ㆍ공안직에서는 1983년 10.1%이던 것이 2004년엔 47.9%까지 확대됐다.

4급 이상 고위직 여성공무원의 비율도 1987년 0.2%에서 2003년에는 2.9%로 늘었다.

취업 여성 중 전문ㆍ관리직 종사자도 1975년 전체 여성 취업자 중 2%에서 1990년 7.7%, 2000년 14.1%, 2004년엔 16.9%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올해 전문직 종사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고, 성장세 역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의 눈부신 향상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이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졌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

그 중엔 법적ㆍ제도적 변화와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여성의 삶을 어둡게 하고 있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근엔 지금도 매 맞는 아내가 전체의 12%나 된다는 충격적인 가정 내 폭력에 관한 통계가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특히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양성 평등에 대한 여러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49.8%에 불과했다. 이는 2001년 미국의 60.1%와 일본의 49.2%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은 1995년 이후 정체 상태로 있으며 출산과 육아기 여성의 경력 단절현상도 여전해 실질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

더욱이 여성의 고용 상태도 매우 불안정하다. 2004년 기준으로 여성취업자의 임금근로자 비율은 66.6%이며 이 중 상용은 24.4%, 임시는 30.6%, 일용은 11.5%로 여성 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의 62.3%에 불과하다. 여성의 정치권 진출도 점차 개선되는 양상이지만 아직도 미흡하다.

17대 국회 들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여성의원 비율은 13%로, 전 세계 163개국의 평균인 15%에도 못 미치고 있다.

지난달 한국여성단체연합도 광복 60주년을 맞아 낸 ‘여성선언문’에서 “지난 60년간 여성의 지위에 큰 변화가 있었으나 실질적 개선이 이뤄졌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이제 여성정책은 주류 사회의 남성 중심성을 전환하는 정책으로 진전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여성의 의회 진출과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 비율, 소득격차 등을 근거로 정치, 경제 분야에서 여성이 얼마만큼 권한을 행사하는가를 보여주는 척도인 ‘국가별 여성 권한’ 조사에서 올해 한국의 여성은 세계 59위의 후진국 수준이다.

또 남녀 각각의 교육수준과 평균 수명, 소득을 근거로 조사한 ‘국가별 남녀 평등지수’에서도 2002년 기준 세계 29위에 머물고 있다.

여권향상 불구 보육정책은 걸음마 수준

특히 육아ㆍ보육에 대한 제도적 미비는 후진국 수준으로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데 가장 심각한 장애로 작용한다.

2004년 자녀가 있는 여성 중 결혼 후 취업 중단 경험이 있는 사람은 38.4%였다. 취업중단 이유로는 자녀양육이 64.9%, 출산에 따른 직장에서의 불이익 12.6%, 가사일 전념이 8.4%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취업모 중에서 33.9%가 취업중단 경험이 있으며, 이 중 66.4%는 자녀 양육때문이라고 응답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에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자녀가 있는 여성의 미취업 사유 중 23%가 ‘일을 하고 싶으나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취업 모의 23.1% 역시 자녀를 믿고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사노동 또한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20세 이상 기혼여성 97.3%의 1일 가사노동이 하루 평균 근로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3시간 23분이나 됐다. 이 중 약 2시간 정도를 음식준비 및 정리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한국의 여성들은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가정 내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러한 점은 이제 여성 운동이 법적ㆍ제도적 권익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성의식의 민주화에도 점차 눈을 돌려야 할 때임을 말해준다.

최근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한국의 여성들을 뜨겁게 열광시켰다. 남성들에게 칭찬 받던 착하고 예쁘기만 한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엎은 ‘김삼순’에 일종의 대리만족의 박수를 보낸 것이다.

기존의 여성미(美)와는 사뭇 다른 ‘김삼순’의 도발적이지만 꾸밈없는 새로운 여성상은 결혼 연령의 상승과 직업 여성,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 비율의 급속한 증가에 따른 여성의 지위변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김삼순’의 인기는 ‘무릇 여자는 결혼해서 얌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무언의 남성주류사회의 압박을 벗어 던지려는 한국 여성들의 당찬 목소리인 셈이다.

정현백 교수는 지금까지 여성운동이나 정책은 여성을 피해자 집단으로 보고 성차별 해소에 주력했지만 여성이 한국사회의 주류에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가 최근 광복 60주년을 맞아 낸 ‘여성선언문’과 일치하는 분석이다. 여성에만 초점을 맞춘 여성 관련 정책들이 한계에 부딪친 지금,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물리적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성과 남성성이 함께 변화해 ‘윈-윈’ 하는 새로운 ‘성의식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10-06 13:4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