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산물 소비 늘면서 불신도 커져, 생산농가 등 신뢰 구축 노력 필요

[커버 스토리] 유기 농산물 믿어? 말어?
친환경농산물 소비 늘면서 불신도 커져, 생산농가 등 신뢰 구축 노력 필요

주부 박지숙(31ㆍ경기 고양시)씨는 주로 유기농 전문 매장에서 장을 본다. 가격이 제법 비싸지만 한창 자라나는 두 딸의 건강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박씨는 농약과 화학 비료로 키운 일반 농산물을 절대 먹으면 안 되는 ‘불량식품’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날것으로 섭취하는 채소는 싱싱한 것으로, 그것도 가급적이면 무공해 제품으로 사죠. 유기농 매장에서는 낱개로 포장해서 팔기 때문에 신선한 채소를 필요한 만큼 사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박씨는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재배한 유기농산물의 효능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주부라면 반드시 무공해 농산물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현정(35ㆍ부산시 해운대구)씨도 ‘유기농 마니아’로 분류될 만한 주부다. 그는 야채가 급히 필요할 때조차도 유기농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

김씨는 유기농 제품을 주로 배달시켜 먹고 있는데, 필요한 양만큼만 주문하면 아파트 단지 안의 유기농 전문 매장에서 곧바로 갖다 준다.

그가 유기농을 애용하는 이유도 박씨와 거의 같다. “농약이나 비료로 키운 농산물의 잠재적 피해는 드러나지 않아 잘 모르지만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면 유기농 제품을 먹을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대량 생산하는 옥수수나 콩, 콩나물 등은 유전자변형식품(GMOㆍ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논란 때문에 조심스러워요.”

김씨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집과 가까운 곳에 텃밭을 마련해 직접 유기농 재배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다. 주변의 여유로운 중년 이웃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더러 보아 왔기 때문이다.

유기농을 포함한 친환경농산물(친환경농산물 분류는 상자기사 참조)을 소비하는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 웰빙 풍조의 확산과 함께 시중에 유통되는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이 같은 현상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친환경농산물 시장 규모도 매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농림부 추산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의 유통 규모는 2000년 1,500억원, 2001년 2,000억원, 2002년 2,800억원, 2003년 3,900억원, 2004년 5,500억원으로 해마다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 농가와 재배 면적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 제도가 시행된 2001년에는 친환경 품질인증 농가와 재배 면적이 각각 4,678호, 4,554ha에 불과했지만 2005년 6월말 현재에는 각각 3만4,129호, 3만2,129ha로 7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친환경 인증 농산물량도 8만7,278톤에서 25만5,554톤으로 3배 가량 늘었다.

이처럼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외형상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지만, 아쉬움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이 그대로 실제 구매 행위로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농산물보다 비싼 가격과 함께 소비자들의 신뢰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게 주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정미화(48)씨는 “(시중에 유통되는 친환경농산물을) 믿고 싶고 또한 믿기 때문에 사서 먹지만,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물을 주고 키운 채소를 먹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앞선 두 주부도 “여유가 있다면 언제든 직접 유기농 재배를 해서 먹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이롭다는 친환경농산물이 이처럼 적지 않은 소비자로부터 불신을 받는 데는 무엇보다 ‘가짜’의 袖?크뇩?

P사, I사 등 유명 식품 브랜드의 가짜 유기농 원료 논란과 일부 양심불량 업자들의 가짜 유기농 쌀 유통 적발 사건 등이 지난해부터 잇달아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이 친환경농산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 것이다.

유통 단계 종사자들 스스로도 일반농산물이 친환경농산물로 둔갑해 유통될 개Ъ봉?상당 부분 인정한다. 한 유력 생활협동조합의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생산자와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 계약을 하고, 농산물이 출하되는 산지에 가서 직접 점검도 하기 때문에 신뢰성을 자신하는 편이다. 하지만 농가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뒤 인증 내용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일반적으로 허술한것으로안다고말했다. 즉 친환경 인증을 받았더라도 제품이 생산ㆍ출하되는 단계에서 가짜가 섞일 소지가 없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김우남 의원실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부정 친환경농산물 적발 건수는 2003년 165건에서 2004년 291건으로 7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남양주 유기농산물 재배농가. 박철중 기자

이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에서 친환경 인증 취소 처분을 받은 농가 숫자를 근거로 했다. 올해도 적발 건수는 상반기 동안만 122건에 달해 가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인증 농가의 가짜 생산이 크게 늘어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농관원의 한 관계자는 “부정 친환경농산물 적발 건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기간 동안 인증 농가가 크게 늘어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절대적인 적발 건수가 늘어났어도 전체 친환경 인증 농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으로 극히 미미하다”고 밝혔다.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유기농업을 해온 안종근(68)씨도 친환경 인증 농가의 가짜 생산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친다.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면 당장 농사도 못 짓게 되는 등 피해가 돌아오는데 왜 농사 짓는 사람이 농약을 뿌리겠나. 농관원에서도 거의 분기별로 한 번은 불시 방문해 작물을 채집, 조사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은 농약을 뿌리는 일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국내 최대 친환경농산물 직거래단체 중 하나인 한살림의 조완형 이사는 “생산ㆍ유통 단계에서 웬만큼 걸러지기 때문에 시중에서 팔리는 친환경농산물 가운데 가짜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생산 과정의 정보를 충분히 알리는 방식으로 제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자든 소비자든 제품에 붙어 있는 친환경 인증 표시 하나만 믿고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데, 현행 인증 방식은 농산물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생산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불신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결국 소비자들의 완전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산물이 어떤 농가에서, 어떤 조건으로 재배되고 출하ㆍ유통됐는지 정확히 알리는 길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지적 때문인지 정부에서도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농관원 홈페이지에 마련된 친환경농산물 정보시스템은 소비자가 자신이 구입한 농산물의 인증 정보를 입력하면 사실관계를 즉각 조회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또한 농관원은 유통 매장에서 가짜 친환경농산물을 적발하기 위해 운용 중인 개인휴대단말장치(PDA)도 현재 25대에서 올 연말까지는 100대로 늘릴 예정이다.

단속ㆍ계도의 강화와 아울러 농가의 자발성을 유인하는 정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우남 의원실의 김외중 보좌관은 “친환경으로 인증 받은 농산물의 판로 확보를 도와주고 영농 자금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농가들의 노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0년까지 친환경농산물의 비중을 전체 농산물의 10%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국제적인 환경 기준 강화와 더불어 친환경농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유럽 농업 선진국에서는 유기농 분야의 농산물만 따져도 벌써 전체 농산물의 10%에 이를 정도로 친환경농업이 크게 발전했다.

하루 빨리 친환경농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눈이 높아진 국내 주부들의 장바구니를 외국산이 차지할 날이 조만간 도래할 수도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부와 생산 농가, 유통업계의 삼위일체 분발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9 15:24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