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사고력과 배경지식으로 상한가, 학원가로 운동권 재집결

[커버 스토리] 논술시장, 운동권 출신의 '밥'
풍부한 사고력과 배경지식으로 상한가, 학원가로 운동권 재집결

운동권 출신이 학원강사로 변신해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가 논술 시장이다.

논술은 딱히 전공자가 없고, 기존의 스타강사도 없는 ‘임자 없는 땅’과 같다. 또 다양한 주제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와 토론, 첨삭 지도 등 다면적 강의가 필요한 만큼 강사 혼자서는 벅차고 팀 단위의 강사진이 필요한 과목이다.

풍부한 배경지식과 논리력, 조직력을 갖춘 운동권 출신들의 ‘재능’에 딱 맞는 분야인 셈이다. 이러한 조건에 특유의 연대감까지 가세해 운동권 출신들이 논술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조동기국어논술전문학원의 조동기 대표는 “논술 강사의 90%가 운동권 출신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통합형 논술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의 발표로 논술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앞으로 논술에서 ‘대박’이 터질 것으로 전망하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별도의 논술반을 운영하지 않았던 종합반 위주의 입시학원들도 대부분 올해부터는 논술전문팀을 운영할 계획이다.

문제는 강사 구하기다. 홍보에 필수적인 스타강사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팀을 이룰 강사진 구성도 그에 못지않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최근 학원가에서는 ‘운동권 재결집’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액의 연봉을 조건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명학원이나 논술전문팀으로 자리를 옮기는 386들이 늘고 있다.

또한 논술학원마다 곳곳에 분원을 설치하다 보니 서로 아는 과거 운동권끼리 같은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도 생겨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논술 난이도·중요성 높아지며 몸값 상승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논술학원은 수능과 내신을 목표로 하는 종합 입시학원과 달리 ‘한철 장사’로 통했다.

논술은 수능시험이 끝난 뒤 1~2개월 바짝 준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스타 강사가 포진해 있는 일부 유명학원을 제외하고는 소규모 ‘반짝 학원’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논술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요즘은 입시를 눈앞에 둔 고3뿐 아니라 중학생들까지도 상당수 논술학원을 찾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논술 학습지 시장도 점차 형성 중이다. 과목의 특성상 벼락치기 공부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암논술아카데미, 조동기국어논술전문학원, 소피스트논술학원, 유레카논술학원, 학림학원 등이 운동권 출신이 운영하는 전문 학원들로 조만간 종합반 입시학원들과 시장 확보를 둘러싼 대회전이 불가피한 양상이다. 기존의 유명 논술 학원들은 벌써 경기 분당 등지에 분원을 내 거점확보에 나섰고, 내년에는 전국적인 체인망 구축에 나서는 등 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본원을 두고 있는 조동기논술학원은 강사진만 120여명으로 수도권에 7개의 분원과 학습 참고서 전문출판사, 논술연구소, 동영상 사이트까지 갖추고 있다.

이 학원의 경우 올해 매출만 11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전국 체인망이 완성되는 2007년에는 450억~500억원을 매출 목표로 하고 있다.

조 대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주재원들 자녀의 언어논술 교육을 위해 동남아, LA, 런던, 캐나다에까지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교육 사업의 국제화인 셈이다.

논술 학원은 종합반 입시 학원과 달리 소규모 강사 팀으로 운영이 가능해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고액의 개인 과외 형태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논술 시장이 급성장하자 경쟁 구도가 학원가의 영역을 넘어 전방위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출판기업, 언론사까지도 논술 시장에 대한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판단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일부 신문사의 경우 논술 강사 양성을 위한 전?규모의 프렌차이즈 아카데미를 이미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의 일부 교수들까지 영리를 목적으로 한 논술 학습참고서 제작에 참여한 사실이 보도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실제로 박봉에 시달리는 대학 시간강사는 물론 교수들 상당수가 후배가 운영하는 논술학원 강의나 교재 제작에 직ㆍ간접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다 보니 논술 시장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강사진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논술 시장에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진출하는 현상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도 없지 않다. 알게 모르게 운동권의 시각을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의식화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논술 강의를 하는 강사들은 하나같이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우선 강사가 자기 목소리를 내면 학생들이 금방 알아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논술 교육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 비판적 글쓰기를 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이다.

대학시절부터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기본적 교양을 쌓고 토론을 거친 운동권 출신이 사고의 유연성이 높아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논술 전문학원에서 만든 학습 참고서에서 일방적 세계관을 강요하는 등의 의식화를 걱정할 만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맞춤형 서비스로 학생들에 큰인기

운동권 출신들이 운영하는 논술학원이 성업을 이루는 것은 수준 높은 강사진 뿐만 아니라 잦은 개별 상담 등 학생과 학부모의 밀착 관리도 큰 요인이다. 소위 맞춤형 교육 서비스다.

강남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 논술 강사는 “지금 같은 공교육 시스템이라면 사교육 시장은 승승장구할 것”이라며 “사교육 시장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공교육 스스로가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10-26 14:55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