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출신들 입시학원 시장서 성공신화 쓰며 '학원재벌'로 변신

[커버 스토리] 운동권이 사교육시장 접수
386 출신들 입시학원 시장서 성공신화 쓰며 '학원재벌'로 변신

“386 운동권 출신들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했다.”

80년대 대학가를 주름잡던 학생 운동권 출신들이 입시학원 사업에 대거 뛰어들어 경영자로, 스타 강사로 잇단 성공 신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연 매출이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기록하고 있는 대형 입시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이들의 이력에서 과거 굵직한 시국사건에 연루됐던 ‘빵잡이(감옥살이 한 사람)’ 등 화려한 운동권 전력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메가스터디, 조동기국어논술학원, 초암논술학원을 비롯, 서울 강남에 본원을 둔 단과 전문학원들과 강동구 청산학원, 노원구 학림학원, 토피아학원, 외대어학원, 마포구 길잡이학원 등 운동권 출신들이 운영하는 유명 학원은 한두 곳이 아니다.

특히 이들은 서울지역 학원 사업의 주요 포스트 지역인 강남(강남ㆍ서초구)ㆍ강동(강동ㆍ송파구)ㆍ강서(강서ㆍ양천구)ㆍ북부(노원ㆍ도봉구)의 학원가를 장악하다시피 하며 ‘학원재벌’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매출 100억원대의 학원·스타강사 속출

이들 운동권 출신들은 대개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소규모 속셈학원에서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감옥에 갔다 오거나, 수배 중인 처지로 당시 운동권의 학원행은 대부분 호구지책 차원이었다.

그러나 1994년 대학입시가 수능시험으로 바뀌고 또한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원가는 새로운 호황기를 맞았고 이들 운동권 출신의 학원 강사들은 과거 동지들을 규합해 학원을 차리거나, 유명 강사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운동권 출신은 운동권 특유의 조직 장악력과 현실 감각으로 사교육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간 것으로 전해진다.

강동구에서 청산학원을 운영하며 ‘사교육 시장 CEO’ 반열에 오른 박영재(서울대 84학번) 대표이사의 경우 대표적 주사파 지하 조직이었던 ‘자주민주통일(자민통)’의 핵심으로 투옥 경력이 있는 골수 운동권이었다. 박 대표는 1992년 수배를 피해 속셈학원에 강사로 취직한 것이 인연이 돼 10여년 만에 입시학원가의 유명인사가 됐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청산학원(중등부)은 지난해 매출 100억원대를 기록하며 강서ㆍ송파지역의 대표적 학원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박 대표는 몇 년 전 투자자문회사까지 설립, 올해 하이트의 진로 인수 컨설팅을 맡아 성공시키는 등 사업다각화에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강남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능방송에 초빙된 국어논술의 스타강사 조동기(고려대 85학번) 조동기국어논술전문학원 대표도 전대협 2기 출신으로 서울영상집단에서 노동자뉴스를 제작했던 운동권이었다.

역시 강남구청 수능방송의 수리영역 강사인 한석원(서울대 83학번)씨, 외국어 강사 김찬휘(서울대)씨도 학생운동 전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코스닥 등록으로 수백억 원대의 주식부자가 돼 화제가 됐고, 온라인 강의로 유명한 메가스터디의 손주은(서울대 81학번ㆍ일명 손사탐) 대표도 한때 노동운동을 했고, 이곳의 스타강사인 안상종(연대 83학번)씨도 이름있는 ‘권’ 출신이다.

또 초암논술아카데미의 이윤호 논술팀장, 소피스트논술학원의 이선태(서울대 83학번) 대표, 케이스논술학원의 황철연(서울대 80학번) 대표, 다산학원 안성용(서울대 81학번) 원장도 한때 운동권에서 이름을 날렸다. 강남 청솔학원의 이재형 원장 역시 노동운동 전력을 갖고 있다.

또한 서울 북부지역에서 토피아와 함께 학원 강자로 불리는 학림학원의 채광석(성균관대 87학번) 대표는 한때 노동계에 꽤 알려진 활동가 시인이었고 지금도 민족문화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원 사업에 성공한 운동권 출신 중에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 정치인으로 또 한 번 변신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우선 “생업이 튼튼해야 민주화 운동도 할 수 있다”며 90올?마포구에서 길잡이학원을 설립한 열린우리당의 정청래(건국대 85학번ㆍ총학생회장) 의원과 중계동 일대에서 외대어학원을 열어 성업시킨 정봉주(외국어대 80학번ㆍ민통련, 전민련에서 활동) 의원, 대전 대학학원 이사장인 구논회(충남대 80학번) 의원이 이들이다.

또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된 뒤 사교육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스카이애듀의 이현 대표가 대표적인 경우다.

또 학습지 시장의 강자로 알려진 웅진과 플라톤(초등학생 대상)의 경우도 핵심 제작진이 대부분 운동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직원 7명의 영세 출판사로 시작한 웅진출판이 현재 매출 2조원대의 웅진그룹으로 성장하는 데는 운동권 출신 CEO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업계는 평가한다.

윤금석 웅진그룹 회장은 학생운동을 하다 ‘룸펜’으로 지내던 운동권 4명을 1980년 전격 발탁했는데, 김준희(서울대 76학번) 웅진씽크빅 사장과 현무진(서울대 77학번) 웅진미디어 사장, 박인순(서울대 78학번) 웅진교육문화연구소 소장, 최정순(이화여대 75학번) 웅진인재개발원 원장 등이 이들이다. 이들은 386의 선배 운동권이지만 운동권 특유의 감각과 돌파력으로 웅진그룹의 오늘을 만들었다.

공교육의 구조적 혁신 필요한때

청산학원의 박 대표는 운동권 출신들이 학원사업에서 성공을 거두는 이유에 대해 우선 조직 장악력과 기획력이 남다른 점을 꼽는다.

학원사업이 기본적으로 ‘사람 장사’인 점을 비춰볼 때 조직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운동권 특유의 조직 감각은 최고의 사업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며 쌓았던 조직감각과 비판의식은 때론 강의를 위한 배경 지식으로, 사업 기획력으로 활용돼 성공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자평한다.

운동권 출신들이 학원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과거 자신들의 이력을 생각할 때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때 감옥행도 마다 않고 변혁을 외치던 골수 운동권 출신들이 비록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학원 사업이었지만 일부는 ‘학원 재벌’로까지 극적인 변신을 해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원가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운동권 출신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곱지않은 시선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고 있다.

특히 현재 사교육비의 과도한 부담이 한국사회 양극화 현상의 상징처럼 지적되고 있고, 이에 따라 사교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자신들이 이러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는 역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의 학원 관계자들은 상황이 만들어낸 자신들의 성공에 편협한 시선만 보낼 것이 아니라 왜 사교육이 활개치게 된 것인지에 대한 구조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자신들이 성공한 결정적인 요인은 역설적으로 공교육의 실패에 있다는 지적이다. 학교 교육이 지향점을 잃고 헤매는 동안 학원은 철저한 평가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강사진과 학생 수준을 고려한 맞춤교육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켰다는 것이다.

요즘도 일부에서는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강사를 더 따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많은 운동권 출신 학원 관계자들은 한때 동지였던 전교조의 교육정책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평준화에 집착하다 보니 일부 학생들은 수업에서 소외되고,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고 강조한다.

학원 관계자들은 또한 공교육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혁 없이는 효율성 면에서 기업 논리로 무장한 학원을 따라 잡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당장은 사교육 시장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조동기 대표는 “현재 교육현실에서 사교육 자체보다 사교육비가 문제”라며 “학원 수강료를 획기적으로 낮추려면 야간에 과감히 학교를 개방해 달라”고 주장했다. 학원비가 비싼 이유의 상당 부분이 비싼 건물 임대료 탓이라는 설명이다.

강남교육청(서초ㆍ강남구) 학원운영협의회 홍성일 회장(민족인재사관학원)은 “사교육비 부담 측면에서는 실제로 학원보다 개인과외와 학습지의 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시간 당 비용을 계산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사교육 폐해가 거론되면 실제로 ‘사교육 시장 재벌’인 학습지는 쏙 빠지고 학교의 보완적 기능을 하는 학원만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한편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운동권 출신들이 학원성공의 배경을 공교육의 실패로 돌리는 것은 한마디로 자기 합리화 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한 대변인은 “입시학원의 기업식 이익추구와 공교육이 추구하는 보편적 교육관은 명백히 다르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최근 학원 사업으로 성공한 운동권 출신들이 무료 수능 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과거 자신들의 열정을 되살리는 듯한 행보에 대해선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운동권 출신 학원 사업자들은 과거의 동지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정치권에 진출하는 선후배에 지원을 하거나 어려운 처지의 과거 동료들을 돕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일각에서 한국 진보운동의 물질적 토대가 사교육 시장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10-26 15:18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