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청결과의 전쟁터

국산 포장 김치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를까. 중국산 김치 파동이 온 국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그 불신이 김치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김치 생산 현장을 찾아 두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국내 포장김치 시장의 60%를 점하고 있는 ㈜두산식품BG 횡성공장을 10월25일 방문했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 경북 안동 고춧가루, 충남 서산 마늘, 전북 완주 생강, 횡성 묵계리 천연 암반수와 안면도 염전의 천일염 등 국내서 내로라 하는 원ㆍ부재료를 공급 받아 ‘명품 김치’를 생산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날 취재에는 횡성공장 반규섭(40) 생산지원팀장이 동행했다.

공장은 일반구역과, 준청결구역, 청결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산지에서 직송된 원ㆍ부재료를 보관하는 저장고와 아직 세척되지 않은 재료들을 다루는 곳이 일반구역에 해당하고 한번 이상의 세척을 거쳤거나 절단 등의 다듬기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 준청결구역. 마지막으로 가공된 재료들이 최종적으로 제품화되는 작업장이 청결구역이다.

각 구역 작업자들의 복장은 위생두건과 마스크, 앞치마 등으로 대동소이 했지만, 색깔에서 차이가 났다.

작업자들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반 팀장의 설명. 청결구역 작업자가 준청결구역이나 일반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클리닝 단계를 거치면 일반구역이나, 준청결구역 작업자도 청결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업이 워낙 세분화 돼 있어서 작업자들이 그럴 일은 드뭅니다.” 횡성에서만 6년째 김치 생산업무를 보고 있는 반 팀장의 설명이다.

트렌치 코트를 닮은 흰 가운과 2중 위생두건, 마스크, 흰색 고무 장화를 착용한 일행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에어샤워룸(air shower room). 반 팀장이 언급한 ‘클리닝 단계’의 시설이다.

“에어 샤워룸에 들기 전에 손을 먼저 씻고, 알코올로 다시 소독을 해야 됩니다.” 작업장 안으로의 세균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외부 세균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는 이뿐이 아니었다. 첨단 공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공장은 강원도의 청정 공기도 여러 개의 필터를 통과한 것만 작업장 안으로 불어넣고 있다고 했다.

코를 쏘던 알코올은 금세 말랐다. 샤워룸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에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람에 두들겨 맞기를 30여 초. 바람이 멈추자 작업장으로 난 문이 열렸다. “에어 샤워기가 자동으로 꺼지기 전에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바닥에 놓인 장화 소독 매트를 서너 차례 밟고 작업장으로 들어섰다.

고랭지 등지서 계약재배한 배추

일행이 선 곳은 공장으로 들어온 배추를 정선하는 곳으로 준청결구역이었다. 로봇이 대여섯 개의 배추가 담긴 플라스틱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에 쏟아내자 외엽(겉잎) 등 먹을 수 없는 부분이 수작업으로 제거됐다.

플라스틱 박스는 기존의 신문지 개별 포장으로 야기됐던 위생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게 반 팀장의 설명 “신문이 젖기라도 하면 잉크 묻은 신문들이 따라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듬어진 배추는 절단기를 통과하면서 깔끔하게 둘로 쪼개졌고, 작업자들은 이를 다시 칼집을 내서 고염수(염도 24%)에 담궜다. 절임공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고염수조에서 짠 맛을 본 배추는 이어 안면도에서 올라왔다는 천일염의 세례를 받고 절임탱크에 차곡차곡 쌓여 염도 10% 내외의 저염수로 충진되었다. 본격적인 절임에 들어가는 것이다.

반 팀장은 배추가 계절별로 품위가 달라 균일한 절임이 되도록 수시로 체크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절임에 소요되는 시간이 18~20시간으로 유동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곳에서 사용하는 배추는 대관령 원예협동조합, 정선농협 등을 통해 계약 재배한 배추. 하지만, 연중 김치 생산을 하는 데 비해 고랭지 배추가 출하되는 기간은 2개월에 불과해 포천, 서산 등 전국 여러 곳에서 계약 재배로 공급 받고 있다.

그러나 하우스에서 재배돼 3~4월에 출하되는 배추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우스 배추는 조직이 무르고 비린내가 나서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월에 난 배추(월동배추)를 저장해뒀다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숨이 죽어 야들야들해진 배추는 진정한 ‘김치’로 거듭나기 위해서 세척공정으로 옮겨졌다.

세척용수로 사용되는 물은 횡성 묵계서 퍼올린 천연 암반수. 중국산 김치가 ‘납김치’로 불리던 것이 납에 오염된 물로 배추를 세척한 것에서 기인한 문제임을 감안하면 여기서 세척된 김치는 납과 무관하다.

반 팀장은 배추 1㎏을 세척하는 데 10㎏의 물이 소요된다고 했다. “하루 최대 500~600톤의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횡성공장의 하루 최대 김치 생산량은 80톤이지만, 깍두기 총각 김치 등의 김치는 훨씬 적은 물이 소요됩니다.”

그는 또 사정이 여의치 않은 때에는 상수도 물을 끌어다 쓸 수도 있고, 50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탱크까지 갖추고 있는 까닭에 원ㆍ부자재 세척용수 부족은 없다고 했다.

절임통에서 나온 배추는 1차적으로 흐르는 수조내에서 수작업으로 세척됐다. 이어 벨트에 실린 배추가 도착하는 곳은 와류(渦流) 세척조.

부글부글 끓는 듯한 수조에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물 흐름 반대 방향으로 배추를 통과시켜 포기 내부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자동기기다.

와류 세척도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척조를 2번씩 옮겨가며 세척됐다. 맛김치(썰은 김치)는 2번의 샤워세척까지 포함 모두 6번의 세척이 이루어졌다. “그냥 마셔도 되는 물입니다.” 마지막 세척조에 담긴 물을 가리키며 반 팀장이 말했다.

모든 세척을 마친 배추는 탈수 과정을 거친다. 세척조에서 막 건져 올린 배추를 2시간 정도 구멍이 숭숭 뚫린 상자에 재워 물기를 제거하는 공정이다. 이 과정을 마친 배추는 ‘예술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속넣기 작업장으로 옮겨진다.

“원재료 배추못지 않게 중요한 게 양념에 들어가는 고춧가루, 무, 마늘, 생강, 대파, 미나리, 새우젓 등 부재료들입니다.” 강원도 고랭지와 해남(배추), 경북 안동과 전북 임실(고추), 경북 의성과 전남 고흥(마늘) 등 재료 100%를 국내서 공급 받는다고 했다. 그것도 재료 구매팀이 구매 전후 잔류 농약, 병원성 미생물 검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잔류농약 미생물 검사 등으로 안정성 확보

속넣기 작업장. 배추를 들추고 그 속으로 날렵하게 양념을 발라 넣는 아주머니들의 손이 분주하다. 한 포기 배추가 최종 제품으로 변신하는 곳으로 그 어느 곳보다 청결이 강조됐다.

반도체 공장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라고 반 팀장이 말했다. 또 배추와 양념 등 컨베이어 벨트에 식재가 닿은 부품들은 모두 미 FDA의 승인을 받은 재질로 제작됐다고 했다.

심지어 “작업자들이 착용한 고무장갑도 인공색소가 들어가지 않고, 천연 라텍스를 사용한 미색 장갑을 사용합니다. 칼도 미생물 서식을 방지하기 위해 손잡이가 나무로 된 건 사용하지 않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실제로 그랬다.

“물이 1시간 이상 고이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아까부터 바닥의 물을 쉬지 않고 훔쳐내는 작업자들이 일행이 선 곳까지 다가오자 반 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벌건 옷을 입은 뒤 김치로 거듭난 배추들이 벨트에 올려져 끝에 다다르자 검속 검출기를 통과했다.

“예전에 한번은 작업 칼 하나가 없어져 그날 포장된 김치를 전부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가 X레이 검사를 받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 후론 그 같은 일은 없었지만, 여기서 통과한 김치만이 계량작업을 거쳐 비로소 포장됐다.

잠시 후 포장되기가 무섭게 한 작업자가 김치 2봉지를 가로채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목격됐다.

“검시관입니다. 수시로 성분 검사를 해서 이상이 발견될 시 작업 라인을 올 스톱 시킬 수 있는 막강한 분이죠.” 검시용 샘플로 소비되는 김치만도 하루 50만원(시중가)어치에 달한다고 했다.

분주히 포장돼 실려 나가는 김치들은 이제 식탁으로 오를 수도 있을 법했지만, 한 단계가 더 남아 있다고 했다.

“저온 창고에서 7일 정도의 숙성을 거쳐야 공장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배추와 양념이 어우러지는 시간이죠.” 백 리를 갈 양이면 구십 리가 반이라고 한 말이 맞았다.


횡성=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