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서 납·기생충알 검출 여파

한국의 대표 음식, 김치에도 ‘명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을 진원지로 하는 ‘납 김치’ ‘기생충 김치’파동의 여파로 국내 포장김치 업체들이 발 빠르게 프리미엄 김치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값싼 중국 김치 때문에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소비자들이 먼저 찾고 있는 형국이다.

까르푸 상암 월드컵경기장점의 식품 코너에서 만난 박경미(38ㆍ주부)씨는 “김치를 직접 담그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경험이 없어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면서 “대신 값을 더 치르더라도 ‘100% 국산원료’, ‘100% 국산’ 등의 문구가 적힌 김치를 구입한다”고 말했다.

‘족보’가 확실한 명품김치를 찾는다는 얘기다. 이 매장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김숙현(48ㆍ주부)씨는 “납 김치, 기생충 김치 파동 이후에 손님들은 국산 김치라고 해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며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의 김치 부재료의 국적까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100% 국내산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것은 따지지 않고 비싼 브랜드의 김치를 더 선호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건당국이 중국산 납 김치에 대해 얼마 전 ‘안전하다’는 판정을 내린 지 열흘도 안돼 이번에는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붉은 색만 봐도 식욕이 떨어진다는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를 낳을 정도로 중국산 식품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고 때문이다.

이후 중국산 김치를 판매했던 홈플러스는 아예 “문제가 된 김치(중국산), 향어 및 송어(말라카이트 그린)… 등은 절대 취급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부착했고, 인터넷 쇼핑몰 G마켓과 옥션은 10월21일 중국에서 생산된 김치의 판매자 등록 자체를 모두 취소하는 등 유래 없던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다양한 가능성 김치생산으로 차별화

이번 김치 파동으로 고급 김치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것은 소비자들만이 아니다. 중국 김치가 청결하기만 하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경쟁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김치업계에 확산되면서 그 대안으로 고급김치, 명품김치에 관심을 쏟고 있다.

또 이들은 김치 파동을 국내 김치 시장에서의 재도약, 혹은 역전의 기회로 보고 차별화된 생산 계획을 세우거나 다양한 기능의 신제품을 내놓는 등 상품 기획을 고급김치, 명품 김치에 맞추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CJ다. 회사는 김장독의 원리를 과학화해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시켜 겨울 김장 김치 맛을 구현한 김치를 2002년부터 ‘햇김치’라는 브랜드로 생산, 판매 하고 있다.

하지만 낮은 시장 점유율(회사측 발표 4%)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10월20일 구로구에 위치한 식품연구소내에 김치팀을 만들어 김치의 생리기능성 연구에 돌입했다.

이 연구는 김치가 인체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밝혀내기 위한 것으로, CJ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까지 뚫을 수 있는 ‘명품김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이보다 앞서 포장김치 업계 1위(60%)를 점하고 있는 두산(종가집)의 경우는 업계 1위 기업답게 발빠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산 김치 문제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을 뿐, 말들이 많았다는 것을 감지한 두산 측은, 2004년 가장 맛있는 상태의 김치에서 추출한 유산균을 대량 증식시켜 포장김치에 주입했다.

종가집에서 생산되는 모든 포장김치의 맛을 김장 김치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은 것이다. 매운 김치를 싫어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출시한 ‘어린이 김치’의 판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김치 파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10월20일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특미보쌈김치’, ‘호박영양백김치’ 등 별미 김치 2종을 할인 마트와 백화점에 내놓기도 했다.

특히 고급 김치, 믿을 수 있는 김치에 대한 종가집의 자부심은 강원도 횡성과 경남 거창의 김치공장 견학 프로그램으로 이어져 지금과 같은 시기에 ‘안심 마케팅’ 효과를 내고 있다.

이 밖에 포장김치 시장의 10%을 점하고 있는 ㈜풀무원은 5가지 천연해산물과 4종의 야채로 된 천연양념으로 맛을 낸 ‘천연양념김치’를 지난 6월부터 선보이고 있다.

캐치프레이즈는 ‘프리미엄 김치.’ ‘명품’이라는 단어에서 우러나는 식상함도 피하고 신선함을 더하자는 취지에서 붙여진 별명답게 김치 파동과 맞물려 최근 판매가 평상시 대비 20%이상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풀무원은 내용물뿐만 아니라, 포장을 고급화 한 것도 판매 신장에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쟁 업체의 김치 포장과 달리 고급스런 알루미늄 포장 김치는 같은 중량의 김치보다 몇 백원씩 가격을 더 받고 있다.

중국산 김치 파동이후 포장김치 판매 향상

이번 파동이 중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비화될 조짐도 관찰되고 있지만 명품김치의 출현을 가속화해 국내 김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리고,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보다 굳건하게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