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로봇 '휴보' 개량 모델 최초공개

한국 최초의 이족(二足ㆍ두 발) 직립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 바로 그 유명세 덕분에 그를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았다. ‘휴보의 아버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를 찾은 11월 3일, 휴보는 마침 출장 중이었다.

그는 이날 시작된 ‘2005 대전 지능로봇 전시회’ 개막식에 초대돼 아주 특별한 행사를 치르느라 온종일 바빴다. 지구상 로봇 중 최초로 열기구에 탑승해 하늘 위에서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는 깜짝 이벤트를 펼친 것이다. 휴보의 원형인 KHR-1과 KHR-2도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 중이어서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망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 교수의 연구실에서 조만간 세상에 첫 선을 보일 ‘업그레이드 휴보’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휴보는 아직까지 외피를 입히지 않아 골격과 부품, 전선 등 내부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상태였지만, 오 교수의 설명을 들어 보니 또 다시 큰 화제를 불러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 교수는 새 휴보를 2가지 형태로 개발했는데, 각각의 이름을 ‘알버트 휴보’와 ‘자이언트 휴보’로 잠정 결정했다. 올해는 물리학의 거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발표하면서 물리학계에 대혁명을 일으켰다. 오 교수는 새로운 휴보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라는 바람에서 ‘알버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알버트, 일본 '아시모'에 버금가는 능력

알버트 휴보는 과연 기존의 휴보에서 얼마나 진화했을까. 지난해 말 처음 공개된 휴보는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평가 받는 일본 혼다의 ‘아시모’에 크게 뒤질 게 없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2002년 개발에 착수해 불과 2년여 만에 완성된 키 125㎝, 몸무게 55㎏의 휴보는 시속 1.2㎞ 속도로 평지를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팔과 손을 움직이고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말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췄다. 41개의 모터를 장착한 휴보는 특히 다섯 손가락을 모두 움직일 수 있는 등 일부 기능에서는 아시모보다 오히려 낫다.

이에 비해 키 120㎝, 몸무게 52㎏의 아시모는 계단이나 경사로를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데다 시속 3㎞로 뛸 수 있는 능력까지 지녔다.

또한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동작이나 음성, 얼굴을 인식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아시모가 휴보보다 좀 더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휴보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의 기초 실험이 완료돼 목표치의 50% 정도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뛰는 동작에 대한 실험도 이미 시작됐다. 연구실 한 쪽에서는 휴보의 다리를 분리해 뛰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실험이 한창이었다.

대전 한국과학기술 미래홀에 전시된 '휴보'. <연합뉴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기계적 안정성이 많이 향상됐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처음보다 더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알버트 휴보는 세상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할 비장의 카드도 갖고 있다. 핵심은 35개의 작은 모터들이 새롭게 장착된 머리 부분이다.

오 교수의 설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한 전문업체가 제작한 알버트 휴보의 머리는 사람처럼 다양한 표정을 연출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약 30가지 정도의 표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맞춰 전체적인 외관도 기존 휴보와는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 보다 사람과 가까운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 교수는 “로봇의 동작이나 안정성이 개선되는 게 본질적으로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모습이나 기능의 추가 역시 로봇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단계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신의 한 몸을 가누고 걷는 정도가 한계로 지적된다. 사람을 대신해 물건을 들거나 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로봇의 출발점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한 데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오 교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도 하고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게 자이언트 휴보다. 이 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이 상부에 올라 타서 직접 조작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덩치도 매우 커졌다. 사람이 탑승하면 키가 족히 190㎝는 될 것으로 보였다.

자이언트 휴보는 일단 사람들이 직접 로봇 기술을 체험하도록 하는 엔터테인먼트 용도로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좀 더 개량되면 작업용 로봇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오 교수의 전망이다.

부산 APEC 정상회담서 공개 예정

알버트와 자이언트는 이 달 18~19일 부산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처음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여서 새로운 휴보의 반향은 지난해 첫 신고식 이상으로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오 교수는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에 등장한 ‘꿈의 로봇’을 100점으로 치자면 현재의 휴보는 고작 5~6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또 얼마간의 실용성을 갖춘 로봇이라고 자부하려면 최소한 20~30점 수준에는 도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가 지금도 10개나 되는 많은 연구 과제를 동시에 진행하며 밤낮없이 실험에 몰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궁금증은 과연 SF에서나 볼 수 있는 로봇이 언제쯤 등장할까 하는 점일 것이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해 “50년이나 100년쯤 뒤에 그런 로봇이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다만 화재 진압이나 미세 수술, 원자력 폐기물 처리 등 사람이 하기 힘든 특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은 멀지 않아 실용화가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