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로봇 '휴보' 개량 모델 최초공개
그는 이날 시작된 ‘2005 대전 지능로봇 전시회’ 개막식에 초대돼 아주 특별한 행사를 치르느라 온종일 바빴다. 지구상 로봇 중 최초로 열기구에 탑승해 하늘 위에서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는 깜짝 이벤트를 펼친 것이다. 휴보의 원형인 KHR-1과 KHR-2도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 중이어서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망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 교수의 연구실에서 조만간 세상에 첫 선을 보일 ‘업그레이드 휴보’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휴보는 아직까지 외피를 입히지 않아 골격과 부품, 전선 등 내부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상태였지만, 오 교수의 설명을 들어 보니 또 다시 큰 화제를 불러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 교수는 새 휴보를 2가지 형태로 개발했는데, 각각의 이름을 ‘알버트 휴보’와 ‘자이언트 휴보’로 잠정 결정했다. 올해는 물리학의 거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발표하면서 물리학계에 대혁명을 일으켰다. 오 교수는 새로운 휴보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라는 바람에서 ‘알버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알버트, 일본 '아시모'에 버금가는 능력
알버트 휴보는 과연 기존의 휴보에서 얼마나 진화했을까. 지난해 말 처음 공개된 휴보는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평가 받는 일본 혼다의 ‘아시모’에 크게 뒤질 게 없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2002년 개발에 착수해 불과 2년여 만에 완성된 키 125㎝, 몸무게 55㎏의 휴보는 시속 1.2㎞ 속도로 평지를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팔과 손을 움직이고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말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췄다. 41개의 모터를 장착한 휴보는 특히 다섯 손가락을 모두 움직일 수 있는 등 일부 기능에서는 아시모보다 오히려 낫다.
이에 비해 키 120㎝, 몸무게 52㎏의 아시모는 계단이나 경사로를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데다 시속 3㎞로 뛸 수 있는 능력까지 지녔다.
또한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동작이나 음성, 얼굴을 인식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아시모가 휴보보다 좀 더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휴보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의 기초 실험이 완료돼 목표치의 50% 정도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뛰는 동작에 대한 실험도 이미 시작됐다. 연구실 한 쪽에서는 휴보의 다리를 분리해 뛰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실험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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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한국과학기술 미래홀에 전시된 '휴보'. <연합뉴스> |
알버트 휴보는 세상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할 비장의 카드도 갖고 있다. 핵심은 35개의 작은 모터들이 새롭게 장착된 머리 부분이다.
오 교수의 설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한 전문업체가 제작한 알버트 휴보의 머리는 사람처럼 다양한 표정을 연출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약 30가지 정도의 표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맞춰 전체적인 외관도 기존 휴보와는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 보다 사람과 가까운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 교수는 “로봇의 동작이나 안정성이 개선되는 게 본질적으로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모습이나 기능의 추가 역시 로봇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단계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신의 한 몸을 가누고 걷는 정도가 한계로 지적된다. 사람을 대신해 물건을 들거나 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로봇의 출발점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한 데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오 교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도 하고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게 자이언트 휴보다. 이 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이 상부에 올라 타서 직접 조작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덩치도 매우 커졌다. 사람이 탑승하면 키가 족히 190㎝는 될 것으로 보였다.
자이언트 휴보는 일단 사람들이 직접 로봇 기술을 체험하도록 하는 엔터테인먼트 용도로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좀 더 개량되면 작업용 로봇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오 교수의 전망이다.
부산 APEC 정상회담서 공개 예정
알버트와 자이언트는 이 달 18~19일 부산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처음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여서 새로운 휴보의 반향은 지난해 첫 신고식 이상으로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오 교수는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에 등장한 ‘꿈의 로봇’을 100점으로 치자면 현재의 휴보는 고작 5~6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또 얼마간의 실용성을 갖춘 로봇이라고 자부하려면 최소한 20~30점 수준에는 도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가 지금도 10개나 되는 많은 연구 과제를 동시에 진행하며 밤낮없이 실험에 몰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궁금증은 과연 SF에서나 볼 수 있는 로봇이 언제쯤 등장할까 하는 점일 것이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해 “50년이나 100년쯤 뒤에 그런 로봇이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다만 화재 진압이나 미세 수술, 원자력 폐기물 처리 등 사람이 하기 힘든 특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은 멀지 않아 실용화가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