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지지도 30% 이하로 추락…'경제올인' 등 민심에 귀 기울여야

“국정운영 지지도가 29%인데, 29% 지지를 갖고 국정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내각제가 아니어서 재신임을 물을 수도 없고, 대통령직을 불쑥 내놓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굉장히 고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 임기의 반환점인 8월25일 KBS가 마련한 ‘참여정부 2년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 는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을 ‘29%짜리 대통령’에 비유하며 “한나라당이 대연정(大聯政)을 수용한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치학에서는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지지도 30%를 유지하지 못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있다.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가 10월27~2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0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29%로 나왔다. 지난 8월 같은 기관에서의 여론조사결과와 같은 수치다.

지난 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김헌태)가 발표한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24.8%, ‘잘못하고 있다’는 63.8%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의 5일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33%로 약간 상승했지만 8월 ‘연정론’이 본격화한 이후 최근까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20%대에 머물고 있다. 이 같은 여론조사결과 대로라면 노 대통령은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75.1%에서 29%로 급락

참여정부 출범 한달 뒤인 2003년 3월,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무려 75.1%에 달했다.

그러나 취임 6개월 뒤에 40.9%로 하락하더니 1년 만에 반토막인 37.7%로 떨어졌다. 그리고 탄핵정국에서 복귀한 작년 5월 지지도가 57%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향세를 보였고 올 8월 연정론 정국에서 29% 지지도로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그리고 최근까지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사회여론조사부장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하락의 원인에 대해 “단 몇가지 원인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만 크게 보아 노 대통령의 편가르기가 지지도 하락의 주요원인”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나이 든 사람이나 영남 사람들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이 정부는 모든 정책에서 남과 우리라는 구분이 명확하다는 게 조사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신행정수도 이전을 예로 들면서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으로 여론이 나눠지는 게 정상인데, 정부는 이를 친노냐 반노냐로 나눈다”고 비판했다.

김헌태 KSOI 소장은 “취임 2주년인 지난 8월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25%였는데 당시 대통령과 국민이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노 대통령의 취임 6개월 평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원하는 최우선 과제는 ‘경제회복’인데 노 대통령은 줄곧 ‘정치개혁’을 외쳐왔다”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이 젖 달라는 아이한테 책을 읽어주는 행보로 결국 국민과 멀어졌다는 것이다.

자료 : 미디어 리서치

국민에게 외면당한 노 대통령은 집권 여당으로부터도 공격을 받고 있다. 10ㆍ26 재선거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앙위원 연석회의(10월28일)에서 적지 않은 의원들이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했다.

문학진 의원은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고 외쳤고, 정장선 의원은 “대통령은 정치에 더는 관여하지 말고 민생에 전념하라”고 요구했다. 안영근 의원은 “당을 부속물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범 친노(親盧) 진영에서 노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섰지만 정동영(DY) 통일부 장관, 김근태(GT) 보건복지부 장관계로 분류되는 다수 의원들의 벽에 부딪혀 반향은 미미했다.

게다가 당 지도부 사퇴로 내년 2월 전당대회가 열리게 돼 노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약화될 개연성이 있다.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의 출마가 점쳐지고 있고 이들 중에 당 의장이 나오면 당내 기류는 급격히 대선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의원들 간에 계파 대립과 줄서기가 뚜렷해 질 것이고 노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우리당의 핵심 가치로 평가받고 있는 기간당원제, 상향식 공천제, 중앙위원제를 둘러싸고 친노 진영과 DY계, GT계가 벌이는 계파간 혈투도 관건이다.

만일 친노 진영이 DY계, GT계에 밀릴 경우 당내 우군의 약화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소극성을 띠거나 당정간 불협화음이 노정돼 지지도 하락의 단초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로드맵 실천 내년엔 지지도 오를수도

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기자단과의 북한산 산행에서 내년 초에 3년의 국정운영을 평가하고 미래의 제안, 그리고 자신의 진로를 밝히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참여정부의 로드맵이 실천단계에 들어가는 내년이면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여론분석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부장은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오른 경우는 ‘졍제 올인’등 민심에 귀기울일 때였다”면서 “이제는 누구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노 대통령이 개혁마인드와 정치 아젠다에 대한 집착을 쉽게 유보하거나 버리지 않을 것 같아 지지도 반등 역시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김헌태 KSOI 소장은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 정치 중심적 접근에 대한 거부감, 여권의 무능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이 ‘여론의 3대 포인트’”라고 진단하고 노 대통령 뿐만 아니라 여당의 변신을 촉구했다.

특히 김 소장은 “대통령이 국민을 이끌겠다는 생각으로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할 때가 아니다”며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요즘 여론이 바닥을 칠만큼 악화된데다 여당인 우군조차 등을 돌려 정치적 겨울을 맞고 있다. APEC 정상회담과 내년 초에 노 대통령이 공개할 청사진이 따뜻한 봄기운을 전할지는 미지수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깝다고 하는데 노 대통령에게도 적용될 지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