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격식 차리지 말고 즐겨라"

“우리나라 와인 문화의 문제점은 너무 폼을 잡는다는 겁니다.”

국내 와인박사 1호인 대한항공 방진식(54ㆍ기내식 사업부) 차장의 말이다. 1981년부터 대한항공 기내식을 담당해 온 그는 올해 경기대학교에서 ‘와인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와인 대중화의 걸림돌로 ‘폼’을 지목한다.

방 박사는 “되레 와인을 잘 아는 프랑스 친구들이 격식 없이 즐길 줄 안다”고 한다. 집에 초대받아 가도 평범한 와인을 내놓고 그것도 물 컵으로 격의 없이 마시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스스럼없는 분위기를 위해 마시는 와인을 너무 격식을 따지면 음식 맛까지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는 “와인에 대한 벽을 깨야 대중화의 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직업적인 소믈리에(와인 전문 감식가)가 될 것도 아닌 이상 그냥 적당히 즐기는 소비자로 남으라는 충고다.

식사할 때 우리와 달리 국이 없는 서양에서 와인은 물 대신 목도 축이면서 음식의 맛도 살리는 반주 형태의 술이다. 그런데 식탁의 와인이 와인 생산국이 아닌 나라로 건너 가서는 고상한 유럽문화의 상징처럼 행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초창기 고가의 수입 와인 위주의 시장부터 형성된 탓에 ‘와인은 부르조아문화’라는 인식이 널리 펴졌다는 지적이다. 그는 “과거 주당들이 와인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싼 와인부터 마시다 보면 애호가 경지에

방 박사는 와인을 처음 접할 때는 싼 와인부터 마시라고 권한다. 자주 마시다 보면 저절로 와인 맛을 알게 되고 애호가가 된다는 생각이다.

보졸레 누보의 경우도 맛과 향이 가볍다고 해서 싸구려 와인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와인 문화라고 꼬집는다. 햇술은 풋풋한 과실 맛대로, 깊고 진한 와인은 또한 그것대로 다양하게 즐기는 것이 진짜 와인 맛을 아는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초보자에 적당한 와인으로 우선 백포도주 경우 단 맛과 부드러운 맛이 나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독일산 8~9도 정도의 와인을 권한다.

그리고 적포도주 중에는 부드러운 맛을 원하면 ‘메를로(Merlot)’가 좋고, 떫고 강한 맛이 좋으면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선택하라고 한다.

술을 잘 못하는 여성의 경우는 로제 와인도 좋다고 한다. 소비뇽이나 메를로 등은 포도품종을 뜻한다.

프랑스산 와인을 고를 때는 산지를 유념해서 고르는 것이 좋다. 또 미국 칠레 호주 등 신세계 와인의 경우는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정도로 제조회사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을 권한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도 너무 따질 것 없다는 것이 방 박사의 소신이다. 삼결살이나 족발에 소주 대신 포도주를 한번 곁들여 보라는 식이다.

한편 대한항공 기내에서 제공되는 와인은 1등석과 비즈니스석, 일반석 등 클라스(Class) 별로 다르다. 우선 프랑스 와인을 기본으로 하고 취항하는 나라의 와인도 함께 제공한다.

맛은 60% 이상의 고객이 한국인이란 점을 감안해 한국인 입맛에 맞춘다. 가격대는 1등석의 경우엔 시중가격 15만~30만원의 최고급 와인을, 비즈니스석은 7만~8만원대, 일반석은 3만원 안팎의 와인이 제공된다.

항공사의 경우 와인 구매는 국내의 수입상을 통하지 않고 현지 상인들과 직접 거래를 한다. 구입가격도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저렴하다. 대한항공 기내에서 소비되는 와인은 매월 3,000케이스(12병이 1케이스)에 이른다.

방 박사는 자신이 고른 와인이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세계 항공사 기내 와인서비스 품평회에서 1등석과 비즈니스석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한다.

대한항공 1등석에서 제공되는 레드와인인 프랑스 보르드산 샤또 지스꾸르(Chateau Giscours 1999)와 비즈니스석의 샴페인 ‘파이퍼 에이드직(Piper Heidsieck)’이 그 주인공이다.

방 박사는 또한 선호하는 와인을 보면 그 나라 국민성도 엿볼 수 있다며 “일본 고객들의 입맛은 보수적인데 비해, 우리는 굉장히 도전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이제 한국산 와인에도 관심을 돌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987년 와인시장 개방 이전엔 국내 와인 육성정책이 있었지만 우루과이라운드(UR)로 정부 보조금이 없어지자 그나마 있던 포도밭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산 켐벨 포도로 몇 몇 업체가 와인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국내의 대표적 와인 브랜드인 ‘마주앙’도 포도즙을 독일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경상북도 포항의 포도밭 집 셋째 아들이기도 한 그는 포도주 대중화를 위해선 맛 좋고 저렴한 국산 와인 몇 종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요즘 대한항공 동남아 노선에선 국산 와인 ‘마주앙 스페셜’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포도주 왜 몸에 좋은가

와인이 건강에도 좋다는 이야기는 ‘프랜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ㆍ프랑스식 식습관의 역설)’라는 말로 주로 표현된다. 이는 미국인 보다 치즈 등 고지방 식사를 즐기는 프랑스인이 심장병 사망률에서는 미국의 3분의 1 밖에 안 되는 역설을 두고 하는 말인데, 매일 마시는 3잔의 포도주가 비밀의 열쇠라는 것이다.

포두주가 많이 생산되는 프랑스 남부지역 사람들의 심장병 발병률이 특히 낮다. 연구결과 레드와인에 많이 들어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살 빼기를 필생의 업처럼 여기는 요즘 여성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책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의 주제 역시 ‘프랜치 패러독스’다. 프랑스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서 샴페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 미레이유 줄리아노(58)는 1년에 300일 넘게 외식을 하면서도 키 160㎝에 몸무게 50㎏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2~3시간의 저녁 식사와 후식으로 고지방의 치즈까지 즐기는 프랑스 여성들이 피자 한 조각도 칼로리를 계산해 먹는 미국 여성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씬한 몸매를 가진 이유가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기는 것과 와인의 효과라고 설파했다.

이는 비만의 위험에 노이로제가 걸린 정도의 미국 여성들에게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비만이 국가적 문제로까지 거론되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와인의 소비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다이어트을 위한 여성들의 선택에 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이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