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협상 비준안 국회통과로 내년 3월부터 외국쌀 국내시판

내년 3월이면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외국 쌀을 볼 수 있다. 소비자에게 낯설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산 칼로스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산 칠하원, 일본의 고시히카리 등 수입쌀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어느 쌀을 고를까” 고민을 할 것이다. 외국쌀과 국산쌀과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쌀의 전쟁’은 지난달 23일 쌀 협상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막이 올랐다. 비록 2014년까지 관세화 유예정책을 고수하게 돼 전면전은 피했지만 국지전은 불가피하게 됐다.

이달부터 시작되는 입찰공고와 낙찰, 해외 가공 및 운송ㆍ통관 등의 절차를 거쳐 빠르면 내년 3월부터 외국 쌀이 국내 시장에 시판된다.

그 동안 국산쌀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라 2004년까지 10년 간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로 무풍지대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국회비준 동의안이 통과되면서 견고한 보호막은 사라졌다.

게다가 그동안 쌀과자 등 가공용으로만 수입되던 외국쌀이 내년부터 밥짓는 쌀용으로 팔리게 됨에 따라 쌀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쌀협상 비준안에 따라 우리 정부는 올해 쌀 22만5,575톤을 수입하고 이 중에 10%인 2만2,557톤을 식탁용으로 국내 시장에 판매해야 한다.

그 양을 20㎏ 짜리로 환산하면 113만 부대다. 2004년 1인당 쌀 소비량이 81.8㎏인 것을 감안하면 27만5,000여명이 1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식탁용 외국쌀은 매년 4%씩 늘려 2010년에 30%까지 도달한 후 2014년까지 이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이럴 경우 의무수입량은 2010년 32만7,000여톤, 2014년 40만8,700톤으로 증가한다. 40만톤은 우리나라 쌀 소비량의 7.9%에 해당한다.

외국쌀이 시중에 유통되면 국내 쌀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 동안 한국에 쌀을 수출한 미국, 중국, 태국, 호주 등이 주요 대상국이다.

쿼터 배정량에 따라 10년 동안 중국은 연 11만6,000톤(56.5%)을, 미국은 연 5만톤(24.4%)을 한국에 수출하도록 돼 있다. 태국은 연간 3만톤씩, 호주쌀은 약 9,000톤이 수입될 예정이다.

나머지 물량인 2만여톤은 원산지 구분없이 구매하게 되는데 일본은 쿼터가 없지만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에 수출할 수 있다.

외국쌀 시판이 실제로 이뤄지면 전체 수입쌀의 81%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ㆍ미국산 쌀과 국내산과의 한판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의 쌀이 국내에서 주로 소비되는 중단립종인 자포니카 품종이고 가격면에서 갱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태국쌀은 찰기가 없어 바람에 날리는 장립종(안남미)이라 소비자에게 낯설지만 최근 동남아 요리전문점 등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쌀은 품질이 좋으나 고가여서 국제 입찰시 최저가 낙찰 원칙에 따라 당분간 수입이 어려울 전망이다.

품질 경쟁력도 국내산 위협

쌀 전쟁에서 주요 관건은 ‘품질’과 ‘가격’이다. 품질에서 국내쌀은 상위권에 있으나 미국, 일본, 중국산 쌀과 비교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농업진흥청 작물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 쌀 품종 브랜드의 품질지수를 나타내는 ‘완전미율’은 2004년 기준 86.8%로 일본산 93.2%, 미국산 87.4%에 뒤지고 중국산 83.8%보다는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지난해 11~12월 국내 주부 310명을 대상으로 국산 및 외국산 쌀의 밥맛에 대해 시식평가를 한 결과 둘 사이에 품질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부들은 캘리포니아산 ‘그린’에 20㎏당 평균 4만4,688원의 ‘지불의향 가격’을 제시, 당시 소비자가격 5만5,000원으로 국내 최고수준인 경기도 이천 ‘임금님표’쌀과 같은 등급을 매겼다.

그린이 캘리포니아산 중에서도 저가(현지 소비자가 2만3,000원) 브랜드임을 감안할 때 미국산 고급쌀은 국산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생산된 ‘칠하원’에 대해서는 20㎏당 4만1,200원을 지불의향 가격으로 제시해 현지 소비자가(1만3,500원)를 감안하면 후한 점수를 준 셈이다.

특히 칠하원과 국산 쌀을 섞어 지은 밥의 지불 의향가는 국산과 비슷한 4만4,446원에 달해 내년 식탁용으로 시판될 경우 국산 쌀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가격은 국산쌀이 외국산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현재 수입 쌀 시세는 우리 쌀값의 4분의 1 가량에 불과하다. 지난해 가공용으로 수입된 쌀의 원가는 태국의 안남미가 1톤당 298달러로 가장 싸고, 미국의 칼로스는 1톤당 405달러, 중국의 단립종은 1톤당 408달러였다.

그래서 정부는 소비자시판용 외국쌀에 수입이익금(mark-up)을 부과해 국내산 쌀과의 가격 차이를 줄일 계획이다. 수입이익금 제도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하는 제도이므로 시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에 따르면 국내에 시판되는 물량은 정부의 수입이익금 부과 제도를 거치기 때문에 국내 쌀값을 약간 밑도는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농경연이 외국쌀에 수입이익금을 붙여 가격(20㎏ 기준)을 산정한 결과 수입 첫해에 미국산은 4만3,400원, 중국산은 4만1,100원으로 분석됐다. 국산은 4만1,800~5만3,700원 수준이다.

농경연 김명환 선임연구원은 “미국산은 품질 측면에서 국산 고급쌀과 비교돼 일반가정의 구입 비중이 크고, 국산보다 값이 싼 중국ㆍ호주산은 주로 식당 등에서 찾으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쌀의 전쟁에서 국산쌀의 경쟁력은 어느정도인가. 정부는 수입쌀 시판과 관련, “수입쌀 물량이 국내 소비량의 0.4%에 불과해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나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가격 하락이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농경연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쌀 1만톤이 풀릴 때마다 국내쌀 1㎏ 당 10원씩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초 예정대로 2만2,000여톤의 수입쌀이 시판될 경우 80㎏ (쌀 1가마)짜리 쌀값이 올해 평균보다 2,000원 가량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정부는 국내산과 외국산의 가격차는 수입이익금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정부가 정한 목표 가격과 산지 쌀 가격이 차이는 85%까지 보전해주는 ‘쌀 소득보전직불제’가 있어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쌀값 하락 불가피 예상

그러나 농민들은 국내쌀 소비량이 줄어들어 재고가 많이 쌓인데다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외국산 고품질 쌀 수요가 상당히 형성돼 있어 수입쌀로 인한 쌀값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농경연이 수입쌀 시판과 관련, 지난해말 전국 606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수요처별 수입쌀 구매의향 전망’보고서는 국산 쌀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수입쌀이 시판되면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가구가 54.0%나 됐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면 살 것’이라는 가구가 43.5%, ‘품질이 좋다면 가격과 상관없이 살 것’이라고 답한 가구가 9.3%였다.

지난 1일 강남 부유층을 상징하는 타워팰리스 내 ‘스타 수퍼’에서 만난 한 주부는 “품질과 건강을 기준으로 쌀을 선택한다”면서 미국산 칼로스와 일본산에 관심을 나타냈다.

같은날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얘기를 나눈 권은주 주부(서울 송파구)는 “이것 저것 먹어보고 맛이 있고 값이 싸면 선택할 생각이다.

수입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고객 중에는 “그래도 국내산”이라며 국산쌀에 충성도를 보인 이들이 많았지만 밥맛과 가격이 괜찮다면 수입쌀도 고려해보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농업 전문가들은 수입쌀 시대에 국산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의 농업정책과 양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산 쌀의 차별화 내지 고급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쌀 시장 문제는 단순히 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전반에 관련된 문제”라며 “농가부채 탕감, 쌀 재고 해소 등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쌀 시장 개방에 맞서 농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농경연의 서진교 연구위원은 “2014년부터 예상되는 관세화 개방에 대비해 쌀산업을 연착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쌀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쌀의 국내외 가격차를 줄여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품질 고급화로 수입쌀에 맞서야

전문가들은 근본적이고 항구적으로 국산쌀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쌀의 고급화’가 필수적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산쌀이 국내외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데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품질’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2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신김포농협의 한종희 RPC(미곡종합처리장) 소장은 “이제 소비자들은 평범한 쌀 대신 고품질의 특색있는 쌀을 찾는다”면서 “수입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쌀 품질을 높이는 게 요즘 농민들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신세계 백화점 강남지점의 임대환 식품팀 부장은 “요즘 핵가족에다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쌀 하나라도 ‘최고’를 찾는 경향이 있다”면서 “노인들은 밥맛과 건강을, 젊은층은 웰빙에 관심을 갖고 쌀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임 부장에 따르면 최근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은 유기농쌀인 ‘특별재배미’(전남 보성)로 10㎏에 7만원이 넘는 고가미다. 임 부장은 “수입쌀이 시판되도 품질이나 기능성면에서 국산쌀이 경쟁력을 갖추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양곡을 담당하는 성창권씨는 “외식업체에서는 값이 싼 쌀을 대량으로 구입하지만 일반인들은 밥맛이 좋기로 소문난 경기 이천쌀이나 김포쌀, 그 중에서도 ‘임금님표 골드’ ‘금쌀’등 프리미엄급을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면서 “수입쌀이 들어올 경우 대량 구매를 하는 곳은 중국산에 관심을 갖겠지만 고급쌀 선호층은 신토불이 국산쌀을 택할 것같다”고 말했다.

성씨는 “각 지자체가 개발한 브랜드쌀은 2,000종 가까이 되는데 요즘은 유기농쌀이나 무농약 쌀 등 웰빙쌀이 많이 팔린다”고 덧붙였다.

매장에서 충북 산인 ‘생거진천쌀’을 고른 송재성(서울 개포동)씨는 “밥맛이 좋아 계속 이용한다”며 “국산쌀도 좋은데 굳이 수입쌀을 선택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했다.

정부 역시 수입쌀 시판에 대비해 쌀의 고급화에 나서 지난 11월 농촌진흥청은 2005년 ‘쌀 혁명 프로젝트’의 결실인 ‘탑 라이스’를 선보였다.

내년 3월에 즈음해 시작될 쌀의 전쟁은 10년의 국지전을 거쳐 2014년 이후 전면전으로 확전된다. 쌀만의 전쟁이 아니라 쌀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과 국민, 농정을 다루는 정부 등이 격돌하는 국가적 경쟁이다. 그래서 치밀한 전략이 더 요구되고 있다.

[인터뷰] 신김포농협 한종희 하성RPC 소장

"고급쌀 개발로 경쟁력 높여야"

한종희(51)씨는 김포에서 20년 넘게 1,000여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현재 신김포농협 하성RPC(미곡종합처리장) 소장으로 고품질의 ‘김포금쌀’브랜드를 개발, 홍보하는데 전력하고 있다. 지난 1일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만난 한씨는 내년 3월 경으로 예정된 수입쌀 시판에 대해 여러 생각을 쏟아냈다.

농업인 입장에서 수입쌀 시판을 어떻게 보나.

▲쌀 시장 개방이 대세여서 받아들여야겠지만 수입쌀이 들어올 경우 국내 쌀값 하락으로 이어져 그 피해가 농업인에게 전가될까 우려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산은 국내 고급쌀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만 쌀 재고가 넘치는 상황에서 저가의 중국산이 수입되면 국산은 가격 경쟁에 밀려 쌀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10년 뒤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되는데 정부나 농업인이 충분히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지 걱정된다.

바람직한 대책이 있다면.

▲농업인 입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쌀을 재배하는 게 최선이지만 국민과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 일본에 갔을 때 어린 학생들을 위해 학교 급식만큼은 최고의 쌀을 사용하고, 음식점도 장인정신과 손님에 대한 봉사로 고품질의 쌀을 쓰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농업인에게 농사는 생계수단이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식량안보시대에 말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농업을 경제논리로만 재단하는 것은 문제다. 농업과 쌀에 대한 국민 의식이 변하고 정부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고품질쌀을 생산하게된 계기와 애로점은.

▲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일반쌀로는 경쟁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고급쌀 개발에 나섰다. 다행히 김포는 지형상 재해가 없고 기후나 일조량 등 농사짓기에 최적이어서 예로부터 밥맛 좋은 쌀로 유명했다. 여기에 친환경적 요소를 가미해 고급쌀인 김포금쌀을 생산했다. 그결과 2003년, 2004년 한국소비자단체에서 실시한 쌀 소비자 만족도 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 브랜드로 선정됐다. 애로점은 좋은 쌀이 제대로 홍보가 안돼 판로가 좁다는 점이다.

한국 쌀농업의 희망 '탑 라이스'

내년 3월 경부터 수입쌀이 시판되는 등 국내 쌀 농업이 시련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반 고품질 쌀보다 2배 가량 비싸고 정부가 최고 등급을 보장하는 쌀이 처음 출시됐다. 농촌진흥청이 2005년도 수입 쌀 시판에 대비하여 추진한 ‘쌀의 혁명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탑 라이스(Top Rice)’다.

농업진흥청은 올해 초 고품질 쌀 생산에 나서 단백질 함량 기준을 6.5% 이하로 정하고, 덜 익거나 깨진 낟알이 섞이지 못하도록 완전미 비율을 95% 이상으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정한 후 충남 당진과 경기 여주, 전북 익산 등 전국 19곳 1,600ha를 탑 라이스 생산단지로 지정, 본격적인 최고급 쌀 생산에 나섰다.

공동못자리설치와 모내기로 품종이 섞이는 것을 최소화하였으며, 농업용수와 토양검정으로 질소비료를 10a당 7㎏이하로 사용하고 농약사용을 줄이는 등 친환경적으로 재배하였다. 또한 수확 전 포장검사와 수확 후 쌀의 품위검사를 실시하여 통과된 쌀만을 별도 저장하여 품질이 떨어지는 쌀이 섞이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탑 라이스 상표를 달게 된 쌀은 전국에서 5,000톤. 전국 쌀 생산량의 0.2%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소비자 가격은 10㎏ 한 포대 4만3,000원으로 일반 브랜드 쌀의 2배에 달한다.

농촌진흥청 이충현 농촌지원국장은 “수입쌀이 시장에 판매될 경우 소비자들이 품질이 우수한 우리쌀(탑 라이스)을 선택하면 수입쌀의 판매가 확대되지 못할 것”이라면서 “탑 라이스의 등장은 위기에 처한 한국 쌀 농업에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