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차이가 기적을 만들었죠"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면 흔히 인력 구조조정을 쉽게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가 부임해서 임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한 약속이 고용 보장이었습니다.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제일 중요한 자산이라는 평소 생각 때문이었죠.”

조헌제 대한송유관공사 사장은 2001년 민영화된 회사에 초대 최고경영자로 부임해 단기간에 놀랄 만한 혁신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송유관공사는 안정적인 석유 수급망 구축을 위해 1990년 출범했지만 이후 11년 내리 적자 행진을 하면서 민영화 당시 1,580억원의 자본잠식과 6,589억원의 부채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 때 민영화 대상 1호로 찍혔을 만큼 부실 공기업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러나 SK㈜에서 30여년 동안 근무하면서 석유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조 사장은 대표이사 제의가 왔을 때 별 주저 없이 수락했다.

“살아오면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즐겨 해온 데다, 무슨 일이든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과 맞서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최악의 회사라고 하지만 저도 그런 정신으로 뛰어든 거죠.”

조 사장은 부임 다음해인 2002년 창사 이래 처음 흑자 전환을 이룬 데 이어 올해까지 4년 연속으로 흑자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또 2,500억원의 부채를 갚아 340%대에 달하던 부채 비율을 150%대로 대폭 줄였다. 과연 원동력은 무엇일까.

“민영화 이전과 똑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지금의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기적이라고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봅니다. 임직원들의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조 사장이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선택한 카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혁신 활동이었다. 이를 위해 공기업 특유의 무사안일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젖어 있던 직원들의 의식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임직원들에게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악’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여를 하는 데서 존재 의의를 갖자고 설득도 많이 했죠. 처음엔 저항과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원칙을 중시하는 노력을 계속하니까 조직 전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월드베스트 종합물류기업 목표

임직원들의 의식이 바뀌자 조 사장의 경영 방침도 탄력을 받았다. 5명이 하던 일을 2명이 맡고 남는 3명은 다른 업무에 투입하는 식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큰 돈을 들여 외부 용역을 주던 송유관 시설 유지보수 업무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민영화 이후 5년 동안 비용은 20% 이상 줄이고 수익은 50% 이상 늘렸다.

‘2010년 월드 베스트 종합물류기업’이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완전 연봉제와 차등 성과급제를 도입하면서 조직 전체에 일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어떤 부실 기업이라도 임직원이 3년만 똘똘 뭉쳐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반드시 회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 노조도 투쟁하는 것보다 일을 많이 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동참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노동부에 의해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경사도 있었죠.”

조 사장 스스로는 송유관공사의 재탄생을 생산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한 ‘화합의 혁신 모델’로 평가한다. 이는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인적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또 송유관 사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가 운전자의 개인비서 역할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ACS(Automobile Care System) 사업과 식품 사업이 올해 시작한 신규 사업들이다.

“앞으로 회사에 들어올 직원들을 포함해 후배들이 먹고 살 기반을 확고하게 마련해 놓겠다”는 게 그의 굳은 다짐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