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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한국 속 외국인 마을] "봉주르" "스미마센"…어색하지 않네요
르포/ 반포 서래마을 프랑스촌과 동부이촌동 일본인촌

지하철 3ㆍ7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5번 출구를 나와 이수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육교.

그 아래 왼쪽으로 걸린 이정표 ‘서래로.’ 굳이 프랑스 파리로 가지 않더라도 프랑스를 경험할 수 있는 ‘프랑스 마을’의 초입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 서초구 반포4동, 흔히 서래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진 몽마르뜨 언덕의 이름을 딴 몽마르뜨길, 프랑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과 카페, 프랑스인 파티쉐가 프랑스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빵을 만들어 낸다는 제과점, 프랑스인이 설계했다는 빨간 지붕의 다세대 주택 단지.

그리고 그 곳을 뛰어 다니며 노는 벽안의 아이들. 서래로를 따라 걸으면 얼마 지 나지 않아 보게 되는 풍경들이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이내 범상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한국의 몽마르뜨 언덕

서래풀 공원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이라 불리는 이곳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색다른 보도블럭과 가로등이 눈에 띈다.



서래마을의 프랑스인들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선 보도블럭은 프랑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까페와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에서도 프랑스어를 볼 수 있다.

웬만한 상점 안의 메뉴는 불어와 영어로 정리돼 있다. 심지어 공인중개사 사무실의 출입문까지. 물론 불어를 구사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이다.

프랑스어로 된 수많은 간판의 레스토랑과 카페들 안으로 들어서면 프랑스인이 손님을 맞을 것 같지만, 파리크라상의 파티쉐를 제외하면 실제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한 군데도 없다.

이곳 프랑스 마을은 용산구 한남동에 있던 서울프랑스학교가 1985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프랑스인 집단 거주지.

주한프랑스대사관 직원, 상사 주재원 등 600명 정도의 프랑스인들이 한국인과 어울려 살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프랑스인 1,500여 명 중 40%에 해당하는 수다.

떼제베(TGV), 까르푸, 르노삼성 등 프랑스 기업이 한국에 속속 들어서면서 더욱 활기를 띠는 곳이다.

프랑스학교 맞은편 골목에 들어앉아 있는 청룡어린이 놀이터. 이 놀이터는 여느 동네 놀이터와 다를 바 없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가족 공원이기도 하다.

추운 날씨 탓에 나와 있는 이는 없었지만, 따뜻한 날에는 간편한 복장으로 휴식을 취하는 프랑스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이곳은 프랑스인들에게 동네 회관 같은 곳으로 자선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곳이다. 얼마 전에는 ‘불우이웃 돕기 성금 마련을 위한 크리스마스 전통장터’가 서기도 했다.

서래마을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곳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프랑스에 유학생을 보낸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류한다는 점.



동부이촌동 가게안에 진열된 일본상품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한불정보센터다. 서초구청 5층에 마련된 한불정보센터는 한국인과 프랑스인들이 서로 편한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 아이와 함께 남편을 따라와 1년 반을 한국에서 보낸 마그다 가르시아(43)씨의 얘기는 좀 다르다. “모임에 가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이 웃는 얼굴만 하고 있다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나긴 하지만 그 관계의 깊이나 깊거나 길이도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르시아 씨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좀 더 한국을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그는 또 “그곳 프랑스인 대부분이 길어야 3~4년 뒤면 이곳을 떠날 상사 주재원, 외교관 가족들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손을 댔다가도 대부분이 중도에 포기한다”면서 소통의 문제로 결국에는 한국과 담을 쌓는 경우도 많이 본다고 했다.

또 세계무대에서 약진하고 있는 한국영화 소식을 듣고 몇몇 부인들이 일주일에 한번 모여 영어자막이 들어간 한국영화 보는 클럽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인식은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지사로 발령난 남편을 따라 한국을 간다고 하면 ‘너 정말 용감하다’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어요.” 국내 언론들이 전하는 ‘유럽의 한류 바람’은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정갈한 풍경, 일본에 온듯

서울 중심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외국인 마을. 동부이촌동의 일본인 마을이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맞은 편으로 보이는 한가람 아파트와 그 너머에 있는 한강맨션, 코오롱 아파트, 강촌 아파트 등지에 5,000여 명의 일본인들이 살고 있다.



마그다 가르시아씨 가족



















이촌동에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하나둘씩 모여들던 것이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일본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인 마을은 프랑스 마을과 달리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탓에 썰렁한 겨울의 거리에서 왜색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본식 전통 주점인 이자카야가 두어 군데, 일본 식품점, 모노마트 한 군데, 일본어와 한자로 된 간판의 공인중개사 사무실 등 몇 군데를 빼면 일본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봄ㆍ가을 등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게 이 곳 주민들의 이야기다.

한 우동전문점의 직원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내는 물론이고 인근 거리는 일본인으로 북적댄다.

여의도 공원에서나 볼 법한 일단의 자전거 행렬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풍경, 자전거 앞뒤에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일본인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츠자키 코아치씨 가족

그는 또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 도쿄의 한 외곽에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추운 날씨 탓에 썰렁한 거리지만, 어디든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곧 이곳이 ‘일본 마을’임을 실감하게 된다. 많은 음식점들의 메뉴가 일본어로 되어 있는 탓이다.

또 한 은행에는 ‘일본인 전용창구’도 보인다. 편도 2차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아파트 단지들이 늘어선 간결한 도시 풍경도 그러고 보면 한국의 여느 도시에서도 구경하기 힘든다.

처음에 이곳을 일본과 연결 짓기 어려웠던 것도 건성으로 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던 것이 단아하고 정갈한 일본의 이미지를 닮은 탓이었다.

일본에 대해 여간해선 우호적이지 않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곳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떨까. 일본산 식료품 가게, 모노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이마무라(여ㆍ38)씨는 최근 불고 있는 한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다.

“13년 전에 한국으로 시집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단순히 ‘한국으로 시집가나 보다’했던 친구들이 요즘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한국에서, 그것도 한국 남자랑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했다. 또 그는 요즘 한국-일본 커플의 수는 1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상점에서 만난 츠자키 코이치(50) 씨 가족. “양국간에 민감한 일이 터지면 약간의 긴장감이 도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 부인(최은주ㆍ38)과 함께 일본을 드나들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의 일본 사람도, 일본의 한국 사람도 어딜 가든 자기 고향처럼 편안하다는 겁니다.”

한일 갈등은 몇몇 정치인들에 의한 문제일 뿐, 확대해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국정취 물신 '독일마을'

파독광부·간호사 귀향촌, 빼어난 풍광 자랑



‘따뜻한 남쪽’ 남해도의 끝자락 삼동면 물건리 언덕배기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유럽풍 건축미가 물씬 풍기는 뾰족한 지붕과 주황색 기와를 얹은 주택 20~30여채가 아담한 촌락을 이루고 있다. 독일마을이다.

‘독일마을’이라는 간판을 따라 마을에 들어서면 태극기와 독일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파란색 눈을 가진 독일 노인들이 한국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며 집 앞 정원을 가꾸고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느 외국인 마을처럼 자연스럽게 생긴 것과 달리, 독일 문화와 남해 전통문화 예술촌을 연계한 특색 있는 관광지를 개발하고, 전국 최고의 노인 인구비율(24.7%) 등을 타개하기 위해 경남 남해군이 독일교포들의 집단 귀향촌으로 꾸민 마을이다.

2001년부터 남해 삼동면 물건리 일원의 3만여 평의 부지에 남해군이 60여 억원을 들여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조성했다.

여기서 말하는 독일교포들은 경제난을 겪던 1960년대 조국근대화와 경제발전에 헌신한 독일거주 교포들을 일컫는다.

1961년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경제 개발과 산업화를 위한 많은 자금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독일이 간절히 요청하던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3,500만 달러의 외화 벌이에 나섰다.

당시 한국은 가난에 찌들어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시절. 한국의 수많은 남자들은 광부란 이름으로, 여자는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이역만리 타국땅으로 건너갔다.

당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송금해 오는 금액은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30%에 해당하는 거대한 액수였다. 그들은 당시 국무 총리 월급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교포들은 40도가 넘는 지하 1,000~3,000m에서의 작업은 ‘팬티를 다섯 번을 짜서 입고, 장화 속에 고인 물을 열 번은 쏟아야’ 비로소 끝나는 하루 일과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3년 뒤 한국으로 돌아 오겠다던 그들의 바람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조국에서 못 이룬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가족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와 쉬고 싶은 이들의 염원을 담아 만든 것이 독일마을이다.

주택건축은 독일교포들이 직접 독일에서 자재를 공수하여 전통 독일식 주택을 신축했다.

교포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들어와 쉴 수 있고, 그들이 독일에 가 있는 동안에는 남해를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민박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독일마을은 남해군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삼동면 동천마을 문화예술촌 안에 조성돼 남해에서도 산과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바로 앞으로 펼쳐진 방조어부림의 시원한 바다 풍경과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 코스인 물미 해안도로를 비롯, 2006년 독일 월드컵과 연계돼 남해의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독일어 전공 학생과 독일인 관광객에게는 ‘필수방문코스’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사진=김지곤 기자


입력시간 : 2006-01-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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