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귀화하는 외국인 급증. 새로운 성씨 많아져

해마다 설날(舊正)이면 민족대이동이 시작된다. 대략 2,000만명이 뿌리를 찾아 귀향길에 오른다. 이러한 행렬에는 내외국인 구별이 없다.

최근에는 국내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1.5%를 넘어서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의 귀향길이 이색적이다. 본국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의 풍습을 따르거나 본국인들과 어울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이 21세기의 신(新)귀화인이라면, 이보다 훨씬 앞서 이 땅에 터전을 잡고 대대손손 이어간 귀화인들이 있다. 멀리는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한반도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정착했다.

2000년 11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286개 성씨(귀화인 제외) 4,179개 본관으로 조사됐다.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외국인의 성(姓)은 토착 한국인 성(285개)보다 1.5배 많은 442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필리핀계 귀화 성이 가장 많아 골라낙콘치타, 귈랑로즈 등 145개였다.

그 다음이 일본계로 고전(古田) 길강(吉岡) 길성(吉省) 등 139개(한자 27개, 한글 112개),중국계는 노(蘆) 무(武) 악(岳) 등 83개(한자 71개, 한글 12개)였다.

그밖에 베트남계(누그엔티수안 등), 태국계(남캉캉마 등), 방글라데시계(루비악달 등)도 각각 10∼30개 호적에 올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명교류사 연구자인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는 신라시대 40여개, 고려시대 60여개, 조선시대 30여개의 성씨가 귀화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절대 다수인 약 130개가 중국계 귀화성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초 외국인 귀화 시작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귀화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초엽으로 그때는 주로 수(隋), 당(唐)의 중국인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송(宋)나라 사람을 비롯해 여진(女眞), 거란(契丹), 안남(安南, 베트남), 몽골, 위구르, 아랍 사람들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명(明)나라와 일본(日本) 등서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귀화했다.

중국계 성씨 중 삼국시대 귀화성에는 진양 강씨(晉陽 姜氏), 영양 남씨(英陽 南氏), 광주노씨(光州 盧氏) 온양 방씨(溫陽 方氏) 영산 신씨(靈山 辛氏), 남양 제갈씨(南陽 諸葛氏) 등이 있으며, 고려시대 귀화성에는 달성 하씨(達城 夏氏), 아산 호씨(牙山 胡氏), 성주 시씨(星州 施氏) 같은 희귀성 외에 거창 장씨(居昌章氏 밀양 당씨(密陽 唐氏)같은 희귀성이 있다.

조선시대 귀화성으로는 양주 낭씨(楊州 浪氏), 성주 시씨(星州 施氏), 보성 선씨(寶城 宣氏), 흥덕 진씨(興德 陳氏), 진양 화씨(晋陽 化氏)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밀양(密陽) 당(唐)씨의 시조 당성은 원 말기에 병란을 피해 고려에 귀화한 뒤 태조 이성계의 창업을 도운 공으로 밀양을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진양(晋陽) 화(化)씨는 시조 화명신이 명나라가 망한 것을 개탄해 경주에 정착하면서 비롯했다.

여진계 귀화성씨로는 청해 이씨(淸海 李氏)가 있다. 시조는 이지란(李之蘭)이며 원래 여진사람으로 고려 공민왕 때 부하 100호를 이끌고 귀화, 북청(北靑)에 살면서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올랐고 벼슬이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다. 한남 북청, 경남 양덕군에 집성촌이 있으며 통계청의 2000년 조사에서 1만 2,002명이 확인됐다.

몽골계 귀화성씨에는 연안 인씨(延安 印氏)가 있다. 시조 인후(印侯)는 몽골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후라타이’이다. 1275년(고려 충렬왕 1년) 충렬왕비인 원나라 황녀 제국공주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하였다.

통계청의 2000년 조사에서 568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구르계 귀화성씨로는 경주 설씨(慶州 卨氏)가 있다. 시조는 위구르인인 설손(卨遜)으로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다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고려로 들어와 1358년(공민왕 7)에 귀화하였다.

주로 서울과 전라도 지역에 거주하며 2000년 조사에서 3,298명이 확인됐다.

아랍계 귀화성씨로는 덕수 장씨(德水 張氏)가 알려졌다. 시조 장순룡(張舜龍)장백창(張伯昌)원(元)나라 세조 때 필도치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덕수 장씨 중앙종친회는 시조가 아랍계로 분류되고 있는 것과 관련, “위구르계가 정확하며 아랍계로 본 것은 착오"라고 주장한다.

장석재 수석부회장(73)은 "족보에 나오는 시조를 지칭한 '회회인'은 당시 중앙아시아 위구르 지역의 무슬림(이슬람교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2만 1, 0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종친회는 모두 5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계 귀화성씨에는 우록 김씨(友鹿金氏:, 뒤에 賜姓하여 김해김씨)가 있다. 시조는 김충선(金忠善)이며, 그는 일본인으로 본명은 사야가(沙也可)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 한국에 내침하였으나 조선의 문물과 인정 풍속을 흠모해 귀화하였다.

많은 무공을 세워 성명을 하사받았으며 후손들은 경북 달성군 가창면에 많이 살고 있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19만 9,544명으로 집계됐다.

또다른 일본계로 함박 김씨((咸博金氏)가 있다. 임진왜란때 귀화한 김성인(誠仁)을 시조로 2000년 조사에서 4,579명이 확인됐다.

망절(網切)씨도 일본성씨로 1971년에 귀화한 망절일랑(網切一郞ㆍ65ㆍ경남 양산시)가 시조로 현재 10명이 거주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늘어나며 귀화 증가

외국인의 귀화 행렬은 시공을 넘어 최근 들어 급증,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1990년대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따라 귀화자도 증가했다.

특히 외국 남성이 한국 여성과 결혼해 귀화하는 신(新)귀화인의 경우 대게 새 이름과 본관이 생겼다.

국적법 개정(1998년 6월) 이후 귀화요건이 완화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모두 2만 6,381명으로 남성은 3,136명이다. 중국 국적이 90% 이상이고 필리핀, 베트남 순으로 뒤를 이었다.

방글라데시인 무하마드 알리(45, 한국명 유현우)씨는 한국 여성과 결혼, 2004년 국적을 취득하면서 부인의 유씨성을 차용하고 본관은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도 시흥의 시화호를 연계해‘시화 유씨’를 창설했다.

외국인 귀화자 대부분이 유현우씨 같은 절차를 밟고 있으며 그만큼 새 성씨가 생겨나게 된다. 바야흐로 신귀화인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