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임희정씨의 '아이엄마로 살기'난치성 근육병 투병중 고통과 좌절 딛고 임신·출산에 성공장애인 엄마 때문에 아이 왕따 당할까 걱정, 사회적 지원 희망

저출산 시대임에도 임신을 환영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장애 여성 또는 희귀성 난치 질환 여성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장애 여성들은 자신의 장애가 자녀에게 영향을 줄까 봐, 혹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건강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가 2002년 발표한 ‘여성장애인 임신ㆍ출산ㆍ육아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 여성 2명 중 1명이 유산을 경험한 것(49.6%)으로 나타났다.

이중 자녀가 장애를 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 반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자녀를 포기한 경우가 52.7%나 됐다. 장애 여성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장애 여성들에겐 산부인과 병원의 문턱조차 높다. 일반 산모보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 당하기 일쑤다.

“근육병이 뭐예요? 그런 여자도 애를 낳나요?”

근육병(근이영양증, 근위축증: 염색체 이상으로 발병하며 3,4세 이후 점점 힘이 약해지고 몸이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나는 희귀 난치 질환)으로 지체 장애가 있는 임희정(28)씨가 결혼 6개월 만에 임신 사실을 알고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기막힌 말이다.

의료진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임씨에게 적절한 진료와 정보를 제공해주기는커녕 “그 장애는 왜 생기는냐”고 오히려 되묻곤 했다.

심지어 “나중에 사고 나면 책임질 수 없으니까 다른 데 가라”는 노골적인 권유도 받았다. “임신을 알고 가장 답답했던 건, 근육병 관련 협회나 병원 어디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고요.”

전문병원 부족, 임신 내내 조마조마

두려움 때문에 임씨는 시름에 잠겼다. 겨우 수소문 끝에 영동 세브란스에 근육병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 산부인과의 협진을 받게 되었지만, 임신 4개월에 접어들 무렵 뱃속 아기는 심장 마비로 임씨의 곁을 떠났다.

임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기쁨보다는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애한테 혹시 장애가 유전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며 “아기가 엄마의 그런 걱정을 미리 알았는지 내 곁을 떠난 것 같다”고 당시의 아픔을 떠올렸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 생명이 임씨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임씨의 임신 소식을 접한 친정에서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장애를 천형(天刑)이라며 출산을 극구 반대하셨어요. ‘네가 장애인이고, 아빠와 동생까지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데 네 아이까지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만류하셨죠.”

아버지로부터 장애가 유전된 것인 만큼, 태어날 아기에게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 또한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씨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인이라 불행하냐”는 남편의 물음에 “병을 안고 태어났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남편까지 있어 행복하다”고 답했던 임씨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굳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후 10달의 임신 기간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심정의 나날이었다.

언제 건강이 악화될지 몰라 조바심이 났지만, 의료진으로부터는 “국내 연구가 미진해 잘 모르겠다”며 “개개인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출산 때까지는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도 뒤따랐다. 장애에다 가뜩이나 무거워진 몸으로 집에서 무려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사실 신체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그것도 초기에는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정기 검진을 받는 일반 임신부들과 달리 매주 1회 이상 진료를 받아야 했고, 동네 병원에선 2만~3만원이면 할 수 있는 초음파 검사도 5,6배가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학원 강사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이를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임씨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학원 수업이 끝나면 개인과외를 하러 다녀야 했던 남편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애 여성은 장애로 인한 심적 두려움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과 전문 병원의 부족 등으로 인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임씨는 “대부분의 장애 여성들은 각종 검사와 특별 관리 등으로 진료 비용을 일반 여성보다 몇 배 이상 지불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면 전무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이 양육 위한 복지프로그램 있었으면

천신만고 끝에 얻은 딸 수연이는 이제 생후 19개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수연이를 보는 임씨의 마음은 그러나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외출했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모처럼 바깥 나들이에 즐거워하던 수연이가 갑자기 울음보를 터트렸다. “애기 엄마, 아이 울잖아. 안아줘”하고 말을 건네던 동네 사람들은 임씨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청각장애인인가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라며 수근거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장애 탓에 안아줄 수 없는 임씨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임씨는 걸을 수는 있지만, 허리를 숙이거나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안아주는 동작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머지않은 날, 수연이를 더 이상 안고 보듬어줄 수 없을 만큼 팔과 다리가 완전히 무너질 지도 모른다. 이런 임씨에게 아이 양육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의 도움은 절실하다.

밖에서 또래 아이들과 뛰어 놀지 못하고 늘 집안에서 엄마 옆에만 붙어 있는 수연이를 보며 임씨는 “사회성이 결여되지 않을까” 걱정이란다. 그런 수연이를 위해 임씨는 소박한 바람 하나를 밝혔다.

“아이가 커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갔을 때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왕따’ 당할까 걱정돼요. 때문에 아이가 주눅 들고 소심해지지 않도록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들의 자조모임’이나 리더십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임씨를 비롯하여 여성 장애인의 임신ㆍ출산 체험 수기 30편을 모아 ‘마른나무에 핀 꽃’을 펴낸 성프란치스꼬 장애인종합복지관의 임재은 자립지원과 사회복지사는 “장애 여성들 대부분이 두터운 사회적 편견과 복지 혜택 미흡으로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특히 저소득 장애인들(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아닌) 경우 복지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장애 여성들이 두려움보다는 기쁨 속에서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할 때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