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기쁨도 잠시, 돈 걱정에 한숨만

‘부메랑 키드.’ 최근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에도 따로 독립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취업난에 등록금 대출 빚도 갚을 길이 없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결국 부모를 피난처로 삼은 경우가 부쩍 늘었다는 현지 보도다.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과 실업난이 빚어 낸 현상이다. 미국학생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 기준 대학 재학생의 평균 부채는 1만9,000달러이고 법대와 의대 재학생은 이보다 2배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감당하기 힘든 채무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대학 등록금 괴담’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도 한해 대학등록금 1,000만원 시대로 접어들었다. 집안에 대학생이 둘만 돼도 쉽게 계산이 안 설 판이다.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초등학생을 납치해 2,000만원의 몸값을 요구한 고교생과 대학생 형제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우울한 뉴스도 들린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인상한다고 감정적으로 대학만 탓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제 경쟁력을 갖춰라, 교육의 질을 높이라는 여론에 대학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경제적으로 황금기여야 할 우리나라의 50대 가장들이 자녀 등록금에 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녀들에게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나이인 50대 가장의 소득이 40대 후반보다 못하다.

3분기(7~9월) 중 가구주 연령대별 월 평균 소득(도시 근로자 기준)을 집계한 결과 45~49세가 356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40~44세가 341만8,000원이었다.

그 동안 소득이 가장 높았던 50대 초반(50~54세)은 339만9,000원으로 3위로 밀렸다. 조기 퇴직 등으로 50대 실업자가 늘면서 ‘소득 역전현상’이 벌어진 게 주된 원인이지만 자녀 등록금 마련 부담도 한몫했다.

"이 나이에 애들을 어떻게…"

<서울 종로구 신영동 34평 빌라에 사는 L(52)씨. 얼마 전 딸이 사립 명문대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이며 비싼 책값 등을 마련할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다. 의대 6년을 환산하면 최소 8,000만원 이상의 돈이 든다. 게다가 내년에는 연년생인 남동생도 대학에 들어간다. 손해를 보고 적금을 해약한다 해도 몇 푼 안 되고 어디 손 벌릴 곳도 없는 L씨는 사는 집을 팔고 전세로 들어갈까도 생각했다. 외환위기 이후 회사의 등록금 지원도 없어지고, 연봉도 깎여 4,000만원이 채 안 된다. 또 나이가 나이인지라 언제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머리 속에서 돈 걱정이 떠나지 않으니 얼마 전에는 과음으로 부인과 다투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L씨는 ‘고개 숙인 50대’의 표상이 된 기분이다.>

<경기도 부천 32평형 아파트에 사는 K(51)씨. 아들만 둘 둔 K씨의 막내 아들이 이번에 사립명문 공과대학에 수시 모집 전형으로 합격했다. 현재 형 역시 공과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다. K씨는 3년 전에 회사에서 명예퇴직한 뒤 조그만 식당을 차렸지만 장사는 영 시원찮다. K씨는 지난 연말 일찌감치 ‘큰 놈’을 불러놓고 사정을 이야기 한 뒤 군 입대를 종용했다. ‘알겠다’는 장남의 힘없는 대답은 들었지만 문득 ‘내가 무능해서 그렇거니…’ 하는 생각에 온 몸의 맥이 탁 풀린다.>

시골의 사정은 더 나쁘다. 예전에는 소 팔아서 대학 간다고 해서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이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한 학기 등록금 수준도 안 된다.

그러나 당장 돈이 없다고 대학 등록금을 낼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2학기부터 시행되고 있는 정부 보증의 학자금 대출 제도를 적극 이용하면 숨통이 트인다.

이전에는 부모가 신용불량자일 경우 대출이 안 됐다. 실제로 지난해 은행서 학자금 대출을 심사할 때 신청자의 25%가 부모 신용이 문제돼 대출을 못 받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부 보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제도에 숨통

정부 보증 대출은 학생 명의로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빌려주고 최장 20년에 걸쳐 학생 스스로 갚게 하자는 취지다. 20년 상환일 경우 10년 간은 이자만 내고 나머지 10년 간은 이자ㆍ원금을 함께 상환하는 방식이다.

1월 20일 전국대학 학생회장들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등록금 인상 등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조영호 기자

대출금은 연간 1,000만원까지 가능하다. 대출 자격으로는 우선 재학생일 경우 C학점 이상은 돼야 한다. 친권자 동의가 필요하고, 학생 본인이 금융기관 연체가 있거나 신용불량자인 경우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

학자금 대출이 정부 보증으로 바뀐 이후 부모의 신용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물론 대학원생도 가능하다.

그러나 연간 이율이 7.05%로 정부 보증 대출 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 부담이 적지 않다. 만약 매년 1,000만원씩 4년 간 대출한다면 졸업 후 이자만 매년 280여 만원을 내야 한다.

다만 저소득층 자녀 3만5,000여 명(이공계 2만명, 비이공계 1만5,000명)에게는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또 중도 상환도 자유롭고 별도의 대출 수수료는 없다.

학자금 대출은 1차로 지난해 12월19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정부 학자금대출 사이트(www.studentloan.go.kr)에서 신청을 받았다. 이 기간에 신청 못했다면 2월13일부터 24일까지 2차 신청을 받는다.

구체적인 신청 방법은 학자금 사이트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우선 서류내용을 기입하고 관련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면 된다.

신용평가 결과가 통보되면 해당 대학과 거래하는 등록금 수납은행과 대출 약정을 체결한 뒤 희망하는 날짜에 등록금은 학교 계좌로, 생활비는 학생 개인계좌에 입금된다.

정부는 올해 1조6,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학기 당 25만명의 대학생ㆍ대학원생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출해줄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기준 대학ㆍ대학원 재학생 223만4,000여 명 중 9%만 대출받을 수 있어 혜택이 제한적이다.

올 1학기에 대출 신청자가 3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초과 신청자 5만여 명의 학생들은 대출자격에 하자가 없더라도 등록금 마련이 막막해진다는 얘기다.

교육부에서 학자금 정책 실무를 맡고 있는 박승민 팀장은 “부모의 소득을 따져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취업난으로 청년 신용불량자 양산 가능성도

또 다른 문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 제도가 청년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이어지면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직장을 못 구해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자칫 사회에 첫발도 제대로 내딛기 전에 ‘청년 신불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대개 금융기관에서는 대출 이자가 3개월 연체되면 신용불량자로 처리된다.

정부는 학자금 대출에 관한 한 신용불량 처리 기준을 완화할 계획이지만 은행들과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절충선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