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케팅, 첨단화할수록 감성의 가치도 높아져

아파트에 브랜드 이름을 붙이는 것은 2000년대 이후 국내 건설업계에 열풍처럼 번진 현상 중 하나다. 래미안, 자이, 캐슬, 푸르지오 등 독특한 아파트 이름들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개성적이다.

이제 사람들은 “나, 래미안에 살아요” 혹은 “제 집은 캐슬이랍니다”와 같은 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한다. 무슨 동에 무슨 회사가 지은 몇 평짜리 아파트라는 설명은 구닥다리가 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 같은 아파트의 브랜드화가 소비자의 높아진 감성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아파트와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마케팅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자들도 천편일률적이었던 아파트가 이름을 얻고 개성을 갖게 된 것을 반긴다. 자신만의 기호와 취향을 채워주는 듯한 만족감 때문이다.

도요타 렉서스

요즘 자동차 광고를 보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능이나 성능보다는 스타일과 품격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을 감탄합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인상적이었던 기아자동차의 대형 세단 ‘오피러스’를 예로 들어보자.

문법상 어색한 표현이 되레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았던 이 광고는 ‘오피러스’의 고급스러움과 함께 이 차를 구입한 운전자의 품격과 심미안에 대한 경탄을 핵심 메시지로 전달했다.

최근 출시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SUV차량 ‘싼타페’의 TV 광고는 화면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주택가에 세워진 ‘싼타페’의 유려한 외관에 시샘을 하는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으로 물을 튀기는 바로 그 장면이다. “앞서간다는 것은 부러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는 것이다”라는 친절한 설명이 따라붙지 않아도 될 만큼 광고는 소비자에게 확실하게 ‘필(feel)’을 준다.

‘오피러스’와 ‘싼타페’의 광고 메시지는 자동차 성능이나 품질에 대한 구구한 사족이 없이도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건드리면 톡 터지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도처에 감성(感性)바람이 거세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감성은 시대의 화두로 대두했지만 그 강도는 줄어들 줄 모른다. 오히려 갈수록 더 세지고 있다. 신문에서, TV 광고에서, 책 제목에서, 여론 주도층의 입에서, 감성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고 회자되는 개념이 됐다.

철학의 영역에서 보자면 감성은 이성(理性)과 대별되는 인간의 양대 인식 능력으로 규정되지만, 그런 거창한 정의 대신 그저 느낌을 받아들이는 성질을 의미하는 감수성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감성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늘 함께 하는 감성이 유독 오늘날 화두가 된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풍요로운 사회의 도래라는 경제적 변곡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롤프 옌센은 자신의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에서 “이제 정보화 사회는 지났고 앞으로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해주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 시대가 온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세계은행이 부유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은 1인당 국민총생산(GNP) 1만1,000달러를 넘는 국가들을 살펴본 결과, 꿈과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논거로 이들 국가를 드림 소사이어티로 명명했다.

삼성전자 애니콜 체험 팬 사인회

GNP 1만1,000달러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2만달러 시대로 달려가는 한국은 분명 드림 소사이어티로 접어들었다. 소비의 주요 잣대도 과거에는 기능과 양에 치중했던 반면 지금은 감성과 질에 보다 더 쏠려 있다.

소비자들의 달라진 의식과 구매 패턴 등은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한다. 신세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감성 코드로 통하는 ‘쿨(cool)’을 예로 들어보자. LG경제연구원이 발행하는 LG주간경제에 따르면 ‘쿨한 소비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졌다.

첫째, 기존의 진부하고 뻔한 틀을 거부한다. 때문에 새롭지 않은 상품과 서비스는 더 이상 이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없다.

둘째, 쿨한 소비자는 세련되고 심플함에 쉽게 매료되며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유행에 민감하다. 신세대들에게 쿨은 말보다 느낌으로 더 잘 알 수 있는 개념이다.

셋째, 자신과 어울리는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쿨한 소비자는 새로운 제품 정보에 민감하며 자신의 색깔에 부합하는 제품 소비에 마니아적 행태를 보인다.

애플 MP3 아이팟 나노

최근 출간된 ‘감성트렌드’(해냄출판사ㆍ김영한 지음)에도 감성을 중시하는 2000년대 이후 신(新)소비자들의 특징적 행태가 잘 나타나 있다.

책에 따르면 감성 소비자들은 높은 소득 수준에 따른 강력한 구매력을 가졌지만, 매우 선별적인 구매 행태를 보이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상품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사들이는 속성을 지닌다.

감성 소비자들의 등장은 사회 전반에 감성을 가득 불어 넣고 있다. 사람들의 구매 행위를 유도하는 첨병인 광고 업계는 일찌감치 코드를 감성에 맞춰온 대표적인 분야다. 대부분의 광고가 고객들의 감성을 건드려 어필하면서 감성 컨셉으로 제작된 광고의 비중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제일기획 광고2팀 김태해 국장은 광고업계 현황과 관련해 “요즘에는 고객에 대한 통찰(consumer insight)이 광고 제작의 대전제가 되고 있다.

광고물이 과연 고객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느냐 여부가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과거 광고가 회사 입장과 제품 특징을 주로 반영한 데 비하면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밝혔다.

감성을 핵심 경영 전략으로 삼아 대박을 터뜨리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감성 마케팅, 감성 경영도 대부분 경영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스타벅스

자그마한 원두 판매점으로 시작해 30여년 만에 세계 36개국에 8,000여개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 커피 전문체인으로 성장한 스타벅스는 전문가들이 첫손가락에 꼽는 감성 마케팅의 성공 신화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문화와 경험(Starbucks Experience)을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유례없는 성과를 거뒀다. 그 밑바탕에는 바로 고객과 직원을 존중하는 감성 경영이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세계 최고의 ‘럭셔리 세단’을 목표로 과감한 투자를 한 끝에 탄생시킨 렉서스도 걸작 감성 상품으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 고객들의 편견을 단숨에 씻어낸 렉서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광고 카피는 ‘영혼을 울릴 뿐 다른 진동은 없다’였다. 그만큼 렉서스의 디자인과 설계가 고객의 감성과 느낌을 중시했음을 말해준다.

국내에도 감성 경영의 벤치마킹 모델이 적지 않다.

채소와 과일을 사러 온 고객들에게 젊고 활달한 총각 사원들이 즐거움과 웃음을 함께 선사하는 ‘총각네 야채가게’, 기존의 카페 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은 감성문화 카페로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한 ‘민들레영토’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총각네 야채가게’의 감성 리더십은 굴지의 대기업들조차 배우겠다고 나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왕의 남자’의 대박 신화도 그 이면을 보면 ‘감성적 스토리’로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이 고도로 발달될수록 감성 가치의 접목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차가운 디지털 문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람 냄새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최첨단 IT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국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감성 경영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그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제 소비자의 감성을 등한시하고선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감성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큰 흐름으로 벌써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