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맛 '마지노선 20도' 허물기는 시간문제 인식

“20도가 소주 맛의 경계선이다.” “아니다. 20도 이하 소주도 충분히 가능하다.”

슬금슬금 내리기만 하는 소주의 알코올 도수.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바야흐로 ‘소주의 20도시대’가 열리면서 소주 도수의 한계에 대해 관심이 높다.

20도 소주가 출시된 지 아직 얼마되지 않아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10도대 소주’의 출현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은 ‘20도 아래 소주는 소주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10도대 소주도 선보일 만하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우선 20.1도 소주 ‘참이슬’을 내놓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소주업계의 절대 강자 진로측은 “아직은 이르다”는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전영태 ㈜진로 기업문화실 차장은 “20.1도는 수많은 소주 도수로 실험을 한 결과 가장 소주다우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는 수치였다”고 말했다.

“소주는 소주다움의 한계치가 있는데 부드러움과 소주다움의 한계치를 절충할 수 있는 균형점이 20.1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신중론에 상관없이 올해 안에 한국인들은 알코올 도수 10도대의 소주를 새로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소주업계에서는 상반기중 20도 아래로 내려선 ‘10도대 소주’가 출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의 진원지는 지방 소주업체들이다. 경남 지역의 ‘화이트’는 조만간 19.5~20도 사이의 소주를 내놓을 예정이며 한발짝 더 나아가 부산의 ‘시원’소주는 올 상반기에 19도까지 떨어뜨린 소주를 출시할 예정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업계, 20도 이하 출시에 신중한 입장

그러나 20도 소주인 ‘처음처럼’으로 진로의 독주에 도전장을 던진 두산도 진로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입장이다.

배형식 두산 홍보팀 차장은 “20도 아래 도수의 소주가 지금 시점에서 시장에서 자리잡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미 두산도 10도대 소주를 개발해 놓고 있지만 아직 시장이 성숙 안 돼 출시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소주 맛의 마지노선은 아무래도 20도”라는 설명이다.

알코올 도수 20도 미만 소주의 불가론에는 과학적 근거도 등장한다.

20도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백세주나 청주(정종)의 14도에 근접하게 되는데 이들 주종과 소주와의 간격이 없어지게 되면 ‘소주가 소주가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 오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정구하 진로 마케팅팀장은 “물론 10도대 소주가 조만간 시장에 선보일 가능성은 있다”며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20도대가 소비자들이 최고의 소주맛을 느낄 수 있는 한계치”라고 주장한다.

소주 도수 35도에서 20도까지

'부드러움'으로 입맛을 길들인다

35도→30도→25도→23도→…그리고 마침내 20도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대중주’인 소주의 알코올 도수 변천사다.

1924년 35도로 출범한 출범한 소주 도수는 8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줄곧 하향세를 보여왔다. 이 기간에 소주 알코올 도수는 올라간 적은 한 번도 없이 오로지 내리기만 했다.

소주가 우리 국민과 처음으로 만난 계기는 24년 ㈜진로의 전신인 진천양조상회가 설립되면서부터다.

이 때 진천양조상회가 출시한 소주는 알코올 도수 35도의 증류식 소주였다. 이즈음부터 소주는 ‘서민의 술’로 자리를 잡으면서 국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이후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처음으로 낮아진 것은 무려 41년의 시간이 흐른 65년. 이때 종전보다 5도를 낮춘 30도의 희석식 소주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8년 후인 73년에는 진로가 일거에 알코올 도수를 5도 더 내리는 상품 전략을 택하면서 25도 소주 이미지가 정착됐다. 소주가 탁주를 밀어내고 한국인들의 ‘국민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때부터다.

96년부터는 소주 알코올 도수의 내리막 추세에 가속도가 붙는다. ‘시원’과 ‘화이트’ 소주를 비롯, 진로도 ‘참이슬’을 내놓으며 소주의 ‘23도 시대’가 개막된 것. 하지만 23도 시대도 그리 길게 가지는 못했다.

2000년 들어서는 1도 더 낮춘 22도 소주가 선보였다. 그러고도 1도를 더 낮춘 21도 소주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불과 2년 후인 올해 20도 소주가 처음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저도화 추세, 변화주기도 빨라져

이 같은 국내 소주 도수의 역사를 살펴 보면 최근 10년간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횟수가 부쩍 잦아진 것이 드러난다. 24년부터 95년까지 72년간 단 두 차례 도수 조정이 있었던 반면 96년 이후에는 무려 5번이나 변화가 있었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간격도 부쩍 짧아졌다. 65년과 73년 각각 5도씩 낮추는데 41년과 18년이 걸렸다면 96년 이후에는 2~4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주기가 빨라졌다.

이규철 ㈜진로 기업문화실 부장은 “소주가 출시된 이래 초반에는 수십 년 만에 한 번씩 알코올 도수를 낮출 정도로 국민의 입맛에 큰 변화가 없었다”며 “하지만 소비자의 욕구가 빨리 변화하기 시작한 최근 10년 전부터는 소주가 급속도로 저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했다.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