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잡은 집권여당 새 선장, 앞길 녹록치 않은 정치적 파고

집권 여당의 정동영號가 닻을 올렸다. 열린우리당은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ㆍ18 전당대회에서 당을 이끌 새 선장으로 정동영(DY) 후보를 선택했다. 2004년 1ㆍ11 전대에서 정동영 카드를 선택한 지 2년 만이다.

당시는 4ㆍ13 총선을 앞둔 상황이었고 현재의 우리당도 5ㆍ31 지방선거라는 험한 준령을 넘어야 하는 처지이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2년 전 정동영 의장이 당의 얼굴이 됐을 때 우리당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앞질러 기대를 부풀렸다. 게다가 최대 위기였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강력한 순풍으로 돌변, 앞날이 불투명했던 신생 미니 정당을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2년이 지나 새롭게 항해에 오른 정동영호에 ‘동남풍’이 불 지는 미지수다. 당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1년 가까이 바닥권을 헤메는 데다 5ㆍ31 지방선거와 7월, 10월 재보궐선거라는 암초가 곳곳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 의장은 관리형 고용 대표가 아닌 실세 대표이자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온전히 항해에만 몰두할 수 없다. 가장 견제를 받는 위치에서 대권 행보를 병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난마 같은 암초를 헤쳐나가느냐 여부에 따라 확실한 잠룡으로 비상하거나 정반대로 낙마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친정체제 구축, 정면돌파 의지

정 의장은 여러 난관을 앞두고 일단 정면돌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당 체제를 확고하게 다진 뒤 실사구시적 개혁과 현장정치를 두 축으로 ‘강한 여당’을 만들고 외연을 넓혀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명실상부한 대권 주자로 자리잡는다는 수순이다.

즉 친정체제 강화 →외연확대→지방선거 승리→대선기반 조성의 단계를 밟아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의장은 우선 당을 실질적인 정동영호 체제로 전환하는데 손을 댔다.

전대 과정서 김근태ㆍ김두관 최고위원 등 다른 계파의 거센 도전을 받았던 터라 당내 갈등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향후 대선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계산도 포함된 조처다.

정 의장은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비난을 무릎쓰고 DY계 싱크탱크로 알려진 ‘나라비전연구소’ 이사장인 박명광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고 호남의 대표적 친노(親盧) 인사이자 조직의 귀재로 알려진 염동연 의원을 사무총장에 앉혔다.

또 386 친노그룹을 대표하는 이광재 의원을 전략기획위원장에, 386 운동권 출신인 우상호 의원을 대변인에 임명하는 등 당내 다양한 세력을 포용해 정동영체제의 위용을 갖췄다.

나아가 당을 무력하고 불안하게 해왔던 당ㆍ정ㆍ청 소통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 의장은 20일 첫 최고위원회의와 23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당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당ㆍ정ㆍ청 관계는 지난해 10월 재선거 패배 직후와 연초 개각 파동을 거치며 크게 부각됐고 지방선거를 전후해 재연될 가능성이 많다.

만일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 대통령의 탈당 등 후폭풍의 진앙지가 될 여지가 있고 정치권 전반의 정계개편으로 이어져 정 의장이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정 의장이 “당이 주도하는 당ㆍ정ㆍ청 관계를 확립하겠다"고 공언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그러한 상황에 대한 심모원려가 작용한 것이다.

정 의장은 신(新)몽골기병론을 현장정치에 접목,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개인 지지율도 고려한 전략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정 의장은 현장정치의 첫번째 주제로 `교육양극화 해소‘를 '꼽고 20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을 만나 교육 양극화 해소에 대해 논의한데 이어 실업고(22일),·영유아 보육시설(23일) 을 잇따라 찾아 우리당이 서민ㆍ중산층의 정당임을 은연중에 과시했다.

전대 다음날엔 당의 불모지인 대구를 전격 방문, 인혁당 희생자 묘소를 찾아 유가족들에게 “묵념하면서 이 희생자들에게 대한민국은 뭐고, 박정희는 누구였나를 생각했다”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 강한 당 대표와 유력한 대권 주자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대구 지하철 참사현장에서는 “그동안 지방정권의 총체적 부실이 있었고,잦은 참사와 재난이 있었다”며 ‘지방정권 비리 척결’의 포문을 열어 지방선거의 전초전을 방불케 했다.

정가에서는 정 의장이 공격적인 행보로 현장정치에 나서는 것을 두고 ‘정동영식’ (지방)선거가 시작?璣?대권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의장의 측근들도 그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DY계인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정 의장이 지방정부의 문제를 거론하고 한나라당 및 박 대표와 각을 세우는 것과 관련, “당 지지율을 보면 우리당은 여당이지만 약자다.

정당한 싸움은 약자가 해야 의미가 있고 그래야 당도 살고 DY도 산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대림각 세워 양강구도 구축

그는 “정 의장이 당에 복귀하면서 사찰에 머무르는 등 고상한 행보를 해 무게감이 전달되기보다는 오히려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려 지지그룹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이 여당답게 우위에 설 때까지 ‘강한 정동영’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혀 당분간 야당과의 상생(相生)정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정동영호의 첫 관문은 5ㆍ31 지방선거. 정 의장의 리더십과 대권 후보로서 향후 행로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다.

5ㆍ31 선거에서 우리당이 선전할 경우 ‘정동영 대세론’이 요지부동의 입지를 구축하겠지만 참패한다면 ‘정동영 회의론’이 급속히 확산돼 구심력을 상실, 도중에 낙마하거나 정계개편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정 의장이 지방선거에 올인(all in)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 의장의 한 핵심 참모는 “당내 경쟁 주자가 여럿이다. 청와대가 (DY에)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방선거 결과가 DY의 대권 가능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참모들이 5ㆍ31 승리를 위한 전략을 마련하느라 전대 때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 의장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각료 차출을 요구한데 이어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영입하는데 발벗고 나서고 있다.

DY계의 한 재선 의원은 “지지율을 단숨에 올릴 호재가 없는 이상 인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며 “지방과 달리 수도권에서는 해볼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 등 인지도가 높은 후보들을 전면 배치하고, 정 의장이 전국 유세로 바람몰이를 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강금실-진대제’ 카드의 실효성을 놓고 해석이 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상당한 파괴력이 있다고 전망하나 한계론을 제기하는 이견도 적지 않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김헌태 소장은 “지방선거는 대선과 다른 구조를 띠는데다 여당의 낮은 지지도와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 강금실ㆍ진대제 후보에 대한 기대와 실체 사이에 갭이 생길 경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전문 컨설팅 회사인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도 “지방선거는 당 지지도가 중요한데, 강금실 전 장관과 진대제 장관이 우리당 후보로 나올 경우 상당한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큰 정치로 비전 제시해야" 지적도

김헌태 소장은 “지방선거가 정 의장은 물론 여당에게 중요하지만 정 의장이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상 지방선거에 너무 연연해 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정체성을 갖추고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2월 19일 경북 칠곡 현대공원묘지에서 인혁당사건관련 희생자 묘소를 참배한뒤 유가족들과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정 의장의 지지율이 이명박 시장이나 박근혜 대표에 비해 아주 낮게 나오는 것은 여당의 낮은 지지율도 영향을 미치지만 ‘정동영다운’ 그 무엇이 없는 게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후보 개인의 정체성 내지 특색이 없을 경우 평균을 조금 넘는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대권에 접근하는 지지율은 얻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대권 주자인 정 의장의 향후 정치적 좌표가 지방선거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겠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달린 셈이다. 설령 지방선거에서 선전해도 ‘정동영다움’이 없을 경우 대세론은 언제든 거품론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출항을 한 정동영호가 당 안팎의 기회와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그 항로가 주목된다.

대선후보 지지도 이명박 1위 지속

열린우리당 정동영號가 출범했지만 여론은 아직 미온적이다. 문화일보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2월 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우리당의 지지율이 2ㆍ18 전당 대회 이후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월 7일의 20.3%보다 1.9%포인트 하락한 18.4%의 지지율을 보인 것.

중앙일보의 2월 21일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34%, 열린우리당 21%, 민주노동당 6%, 민주당 4% 순이었으며, '지지 정당 없음'은 34%였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는 물론 정당 지지도에서도 우리당의 전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국민일보가 전대 직후인 2월 20~23일 실시한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에서는 우리당 25.1%, 한나라당 36.1%로 지난해 중반 한때 20%포인트까지 벌어졌으나 2ㆍ18 전당대회 효과로 우리당 지지도가 조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1위가 굳어지는 추세에 고건 전 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여권에서는 정동영(DY) 의장이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야권 후보들에 크게 뒤지는 가운데 전대를 계기로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선 이 시장(23.3%)-고 전 총리(22.8%)-박 대표(19.9%)-정 의장(6.4%)-이해찬 총리(4.6%)-김근태(GT) 최고(2.0%) 순이었다.

문화일보 1월 10일 조사에서는 여권 후보 중 정 의장(22.9%)-김근태 최고(13.7%)-이 총리(9.7%)-유시민 복지부장관(6.7%)-천정배 법무장관(2.3%)-김혁규 최고(1.8%)-정세균 산자부장관(1.6%)-김두관 최고(1.0%) 순으로 나타나 DYㆍGT의 당복귀에 대한 기대 효과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

국민일보의 대선 후보에 대한 2월 20~23일 여론조사에서는 이 시장이 30.7%의 지지도로 1위를 유지한 가운데 고 전 총리(25.7%), 박 대표(18.1%), 정 의장(11.0%)이 뒤를 이었다. 여야별로 ‘누가 대선후보가 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우리당에서는 고 전 총리 44.2%, 정 의장 35.1%, 한나라당에서는 이 시장 52.7%, 박 대표 32.7%로 나타났다.

정 의장의 지지율이 10%를 넘은 것이나 우리당 대선 후보 가능성에서 지난해 12월 조사때보다 12.5%포인트나 급상승한 것은 당의장 선출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