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이튼스쿨로 출발, 인성 갖춘 여성 지도자 양성

1906년 건립된 민족 여성사학 숙명여고(교장 안명경)가 5월22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개교 당시의 교명은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

“안으로는 정숙한 품성과 현명한 지혜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고, 밖으로는 민족의 정통성과 자주성에 입각한 구국애족을 지향하겠다”는 창립 이념에 따라, 당시 서양 기독교 자본으로 건립된 대부분의 여학교들과 달리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세워진 여자교육기관의 효시가 되었다.

초창기 숙명여고는 귀족 여학교의 성격이 강했다. 영국의 이튼스쿨처럼 양반 집안의 규수를 가르칠 특수학교로 문을 열었다.

고종황제비 엄순헌황귀비로부터 용동궁터(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소재)와 창립 기금을 받아, 11세에서 25세 사이의 양반 집안의 딸을 모집했다. 초대 교장으로는 정경부인 이정숙 여사가 취임했고, 양반집 규수 5명을 입학시켰다. 당시 학생들은 가마를 타고 등교해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귀가했다고 한다.

1929년 교명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한 숙명여고는 일제 침탈에 맞선 항일 운동의 중심에 섰다. 1919년 3ㆍ1운동 때는 전교생 약 200명이 3ㆍ1운동에 참가하여 많은 학생들이 체포됐고, 1927년에는 일본화 교육을 반대하는 항일 동맹 휴학을 벌이기도 했다.

숙명의 인물

■ 정ㆍ관계

이숙종(9대 국회의원ㆍ10회) 곽경봉(여성최초 경찰서장ㆍ18회) 윤여훈(남북적십자 회담 대표ㆍ45회) 한석란(루마니아 UN 대사ㆍ55회)

■ 재계

김경호(석란 대표ㆍ43회) 김양자(취영루 대표ㆍ49회) 이순희(조흥은행 영업본부장ㆍ59회) 문예란(웰컴 대표ㆍ61회) 손혜원(크로스포인트 대표ㆍ62회) 황재복(황재복웨딩클래식 대표ㆍ68회)

■ 학계

임숙재(초대 숙대총장ㆍ5회) 성의경(전 숙명학원 이사장ㆍ6회) 송금선(전 덕성학원 이사장ㆍ10회) 문남식(전 숙명여고 교장 15회) 손정순(전 동덕여고ㆍ경기여고 교장 17회) 정충량(전 숙명여고 교장ㆍ 26회) 최옥자(세종대 대학원장ㆍ29회) 배경숙(법학자ㆍ38회) 신정옥(영문학자, 셰익스피어희곡전집 번역ㆍ40회) 문수재(전 연세대 가정의학장ㆍ40회) 이귀경(전 숙명여대 대학원장ㆍ41회) 표계학(법학자ㆍ44회) 장상(전 이화여대 총장ㆍ47회) 문영남(재미의료인ㆍ47회) 김수지(전 이화여대 간호대학장ㆍ49회) 문숙재(전 이화여대 가정대학장ㆍ53회) 성민선(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장ㆍ53회) 박부진(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장ㆍ57회) 이임순(순천향대 의과대학 부학장ㆍ60회)

■ 문화계

박화성(소설가ㆍ9회) 이애내(음악인ㆍ15회) 최승희(무용가ㆍ17회) 최정희(소설가ㆍ19회) 김정숙(조각가ㆍ26회) 윤덕주(체육인ㆍ29회) 이병복(극단 ‘자유’ 대표ㆍ34회) 김복희(음악인ㆍ36회) 박완서(소설가ㆍ39회) 김양식(시인ㆍ39회) 한말숙(소설가ㆍ39회) 이경희(수필가ㆍ39회) 이경숙(음악인ㆍ39회) 정연희(소설가ㆍ43회) 안명희(수필가ㆍ43회) 최경림(수필가ㆍ43회) 박영희(조각가ㆍ44회) 황성이(수필가ㆍ45회) 박지혜(음악인ㆍ46회) 조문자(화가ㆍ47회) 장혜원(음악인ㆍ47회) 박신자(전 농구선수ㆍ48회) 임영자(탁구 세계 공인 국제심판ㆍ47회) 오현주(연극인ㆍ48회) 맹난자(수필가ㆍ49회) 이숙자(화가ㆍ50회) 이성순(화가ㆍ50회) 김경옥(조각가ㆍ51회) 이정지(화가ㆍ51회) 강추자(51회ㆍ희곡작가) 송영숙(52회ㆍ화가) 김효숙(52회ㆍ조각가) 홍영자(탤런트ㆍ52회) 이인하(화가ㆍ53회) 김희덕(KBS 방송작가ㆍ55회) 박혜란(음악인ㆍ58회) 김승희(시인ㆍ59회) 염보영(음악인ㆍ61회) 최순희(수필가ㆍ62회) 안희재(KBS 수석 아나운서ㆍ63회) 김혜경(KBS 프로듀서ㆍ63회) 황주리(화가ㆍ65회) 민은경(KBS 프로듀서ㆍ65회) 유애리(KBS 아나운서ㆍ65회) 권지예(소설가ㆍ68회) 김종숙(MBC PDㆍ69회) 신애라(탤런트ㆍ76회) 신혜수(탤런트ㆍ73회) 오유경(KBS 아나운서ㆍ77회) 이상은(뮤지컬 가수ㆍ78회) 나현희(탤런트ㆍ78회) 정선경(탤런트ㆍ78회) 명세빈(탤런트ㆍ83회) 강수정(KBS 아나운서ㆍ85회) 김민정(탤런트ㆍ90회)

■ 기타

이요식(한일여성친선협회 회장ㆍ42회) 이창숙(전 한국일보 기자ㆍ48회) 신혜수(사랑의 전화 대표ㆍ57회) 박성희(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ㆍ60회) 송영숙(변호사ㆍ69회) 임혜진(창원지방법원 판사ㆍ84회)

1980년 3월 현재의 강남구 도곡동으로 교사(校舍)를 이전한 이후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100년 대계를 준비하는 숙명은 “100년을 지켜온 뿌리깊은 나무, 이제 미래를 향해 비상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그간의 전통을 디딤돌로 삼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숙명고의 교훈은 “밝고 다습고 씩씩하게 나라를 사랑하자. 민족을 사랑하자. 자기와 가정과 학교를 사랑하자”.

밝고 따뜻한 사람, 자기와 가정, 학교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앞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 지난 100년과 마찬가지로 새롭게 다가올 100년에도 변치 않을 이 학교의 교육 목표다.

동창회인 ‘숙녀회’ 정정영 회장은 “관념적 교훈이 아니라, 실천적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교훈이어서, 졸업생들은 살다가 힘들 때면 교훈을 외우면서 큰 힘을 얻곤 한다”고 전했다.

숙명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21세기 교육 목표도 역시 인성 도야와 적성 계발을 통해 인성을 갖춘 유능한 여성지도자 양성이다. 전인적 품성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까닭에 숙명여고가 첫 손으로 꼽는 특색사업은 독서 교육이다.

교사 중 가장 눈에 띄는 붉은 색 벽돌로 지은 3층짜리 도서관에는 4만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장서가 첨단화된 전산시설로 관리되어 있으며, 1950년대부터 전문 사서 교사가 운영해온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소질을 계발시켜주는 것이 교육의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삼았기에 숙명에는 유난히 다양한 특별활동과 봉사활동이 많으며 학교 지원도 적극적이다. 신문반, 방송반, 연극반 도서반 등 70여 개 반의 특별 활동반이 운영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농구반. 1926년 발족한 80년 전통의 숙명여고 농구부는 학교의 또 다른 자부심이다. 1956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 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하여 국내외 각종 농구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을 모토로 한 봉사활동도 활발하다. 학교 주위로 타워팰리스, 동부센트레빌 등 국내 최고가 아파트 숲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지만, 계층 간ㆍ지역 간 벽을 허무는 마음가짐을 봉사활동으로부터 익혀가고 있다.

2004년부터 ‘아름다운 가게’와 자매결연을 맺어 불우이웃돕기 바자를 열고 있고 캄보디아 난민돕기, 북한돕기, 수재민돕기 등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삶' 교육 실천

1955년 일찍이 유네스코와 국제 이해 협동학교로 인연을 맺을 정도로 국제 이해 교육에도 탁월하다.

전 교직원이 단계적으로 미국 일본 동남아 지역에 역사ㆍ교육 탐방 연수를 다녀왔고, 개교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5월 26~29일에는 숙녀회 후원으로 전 교직원이 중국 연수를 다녀올 계획이다. 또한 국제 이해반 학생 40명은 매년 일본 자매학교를 방문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 숙명여대 합격자 수가 매년 170명에 이르는 입시 명문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졸업생 7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숙명여고는 특히 문화ㆍ예술계 명사들을 대거 배출했다. 소설가 박화성 최정희 김정숙 박완서 한말숙 권지예, 시인 김양식 김승희, 무용가 최승희, 성악가 이경숙, 피아니스트 한옥수 장혜원 등의 동문을 배출했다.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 박신자 전 농구선수, 윤덕주 전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등도 숙명을 빛낸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6만5,000여 명(숙명여중 포함)의 동문들이 하나의 숙명을 구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해 말 100주년을 기념하는 로고를 새롭게 만들었고, 동문 소설가 박완서가 작사한 ‘숙명 100주년 찬가’ 공연도 가졌다.

특히 5월 22일 페스티벌 형식으로 치러지는 개교 기념식은 숙명여고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핵심 사업. 서울 잠실올림픽 올림픽홀에서 대대적으로 치러지는 이번 기념식에서는 대숙명인상, 유공자 표창과 더불어 교복 변천사 등의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꾸며진다. 이날 숙명 100년사 및 100주년 기념 화보도 발간될 예정이다.

이밖에 숙명여고는 미술계 동문 모임인 ‘숙란회’의 기념 전시인 ‘숙란전’(5월 17일),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하는 바자(5월 20일), 해외동문 모교 방문의 날(5월 20일) 행사 등을 준비 중이며, 동문 출신 조각가들의 작품을 모은 조각 정원 만들기 사업과 교문 개축도 함께 진행해 세계 명문 사학으로 뻗어나가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인터뷰- 안명경 교장
"시대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 키울 것"

“숙명의 새로운 100년은 인성과 지성을 고루 겸비해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여성지도자를 키워나가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숙명여고 51회 수석 졸업생인 안 교장은 1971년 가정과목 교사로 부임해 35년째 숙명의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99년 9월 교장으로 취임한 그에게 재학시절의 숙명과 교장으로서 재임 중인 현재 숙명의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간 격변한 시대상에 발맞춰 변화한 교풍을 꼽는다.

“과거 숙명은 현모양처를 길러내는 산실이었어요.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단 안으로 보듬는 삶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숙명을 빛낸 인물들을 봐도 지금까진 문학계나 미술계 등 예술인 등이 많고, 정계나 재계 인물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요. 자기 소신이 뚜렷하고 발랄하면서도 절제심이 있어 장래 다방면의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해가리라 확신합니다.”

안 교장은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할 교육은 전인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숙명이 현재 강남에서 가장 진학하고 싶은 학교로 꼽히는 것은 입시 성적뿐 아니라 바른 인성을 중시하는 교육관 때문”이라며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자리잡고 있는 데다 나날이 입시 경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숙명은 항상 정도(正道)를 걷는 교육을 지향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성 교육을 강조하는 안 교장이 학생들에게 가장 권장하는 방안은 독서를 통해 풍부한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다. 안 교장은 “정기간행물을 제외하고도 4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은 숙명의 자랑”이라며 “하루 평균 500여 명의 학생들이 책을 대출해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4년에는 ‘청소년 책읽기 운동 2004’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안 교장은 또한 “학생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품성을 길러주는 것도 우리 학교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며 “수재민돕기 같은 불우이웃돕기 행사나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하는 바자 등에 학생들이 정성껏 참여하는 것을 볼 때 숙명의 큰 미덕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학으로는 이례적으로 건강한 신체를 기르기 위한 체육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것도 숙명 교육의 큰 특징이다. 안 교장은 “올 봄 춘계 농구대회에서 숙명여중이 우승했고, 숙명여고는 준우승을 거뒀다”며 “숙명은 건강한 신체 단련을 통해 올바른 교육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체육 프로그램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교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안 교장은 “지나온 100년에 대한 자부심과 동시에 다가올 100년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1950~60년대에 이미 국제 이해와 인성 함양 등 선진 교육을 구현했던 숙명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 속의 명문 사학으로 발돋움하도록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