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통해 몸집 불리며 케이블TV 업계 새 강자로 등극디지털 방송 시대 T-커머스 시장 주도권 확보 디딤돌 인식

“좋은 채널을 배정받으려면 로비를 세게(?) 해야 한다”
“채널 결정권을 가진 담당자를 만나려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 한 번 만나기도 힘들다고 하던데”
“방송국 하나 인수하려면 몇 천억원도 모자라 이제는 조 단위의 돈이 있어야 된다.”

케이블TV(CATV)의 ‘SO’를 둘러싸고 시중에 떠돌고 있는 얘기들이다.

공식용어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가리키는 SO(System Operater)는 쉽게 말해 케이블TV방송국.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급하는 PP(Program Provider)가 케이블TV의 채널 사용자라면 SO는 방송 전반을 운용하는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SO가 케이블TV업계의 막강한 새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1995년 처음 출범한 국내 케이블TV가 1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바야흐로 SO 파워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케이블TV 시장의 강자로 등장한 SO는 여러 SO들을 거느리는 거대SO, 즉 MSO(Multi SO)로까지 발전하면서 더더욱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몇 년새 시장에서 SO의 인수 합병 때 거래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SO의 힘이 날로 커져가고, 거대 SO들이 생겨나면서 더불어 1,200만 케이블TV 시청자들과의 여러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케이블TV 시청료가 오른다’ ‘갑자기 채널이 바뀌어 찾는데 한참 걸렸다’ ‘즐겨 보던 채널이 사라져 당황했다’는 등의 민원들이 그런 사례들. 일반인들에게 SO의 급부상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굳이 성경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SO에게 딱 들어맞는 구절이다.

다채널 방송을 모토로 케이블TV가 처음 선보인 것은 11년 전인 1995년. 케이블TV의 초고속 성장이 예견된 이 때만 해도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분야는 PP였다. 주요 대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며 대부분 PP사업에 도전장을 던진 것.

반면 SO는 이와 정반대였다. 조그만 방송권역으로 나눠 개인사업자들에게 주어진 SO사업은 심하게 말해 영세사업 정도로 비쳐진 것이 사실.

‘그까짓 가입자가 몇 명이나 된다고…’ ‘채널이나 조정하면서 가입자 관리와 지역 뉴스나 내보내면 되지’등이 당시 SO에 대해 사람들이 하던 얘기들이었다.

이처럼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던 SO가 처음 뜨기 시작한 것은 2000년. SO와 NO(전송망 사업자)를 겸하는 것을 허용하게 하는 통합방송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SO들은 돈을 들여, 혹은 자금을 빌려서라도 자체 망을 까는데 대거 나섰고 가입자 수도 함께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빈약한 자본에 망을 까는데 들인 돈은 부채로 남았다.

부채로 골머리를 앓던 이들에게 희소식이 된 것은 대기업들의 참여. 대기업들은 적지 않은 돈을 주어가며 이들 영세 SO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들은 지금 거대 SO로까지 성장하기에 이른다.

SO의 가치가 날로 급등하면서 최근 엄청난 규모로 이뤄진 SO의 인수합병(M&A)도 결국 이런 흐름 속에 이뤄진 사건들이다.

미래 방송 시장 주도권 다툼 치열

시청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채널 선택권이나 결정권을 갖는 것만으로 이처럼 SO의 가치가 치솟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유는 미래 방송시장, 바로 ‘T-커머스’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앞으로 디지털방송이 구현되고 TV화면을 통해 곧바로 상품 소개와 구매, 배달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T-커머스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실제 최근 SO 시장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보이고 있는 기업 중에도 유독 홈쇼핑 채널로 돈을 번 기업들이 많다. T-커머스의 잠재력을 몸소 체험한 이들이 시장 선점을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분석은 이 때문이다.

SO 시장을 장악해 승자가 되려는 기업들 간의 전쟁은 또 다른 기회이자 위기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인터넷망을 통해 TV시청이 가능토록 하는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등장. IPTV가 현재 케이블TV가 맡고 있는 시장을 잠식할지, 아니면 반대로 새로운 파이를 창출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케이블TV 방송은 앞으로 디지털 환경으로 급변하는데 그에 따른 투자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도 만만찮다. 특히 지금처럼 각 가정이 부담하는 케이블TV 시청료가 여전히 손익분기점 아래를 맴돌고 있을 만큼 수익구조가 아직은 취약하다는 것도 맹점으로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대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김진경 사업지원국 차장은 “SO든 PP든 케이블 방송은 각 주체들의 유기적 협력에 의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유독 SO만의 독주로 바라볼 것은 아니다”며 “SO 자체도 앞으로 급변할 방송 환경에서 기회와 위기라는 양면성를 동시에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과점이 횡포 불러

런칭비 강요, 채널편성 일방 변경, 프로그램 사용료 부당 환급 등…

SO가 흔히 행하는 것으로 지적되는 불공정 거래 행위들이다. SO의 불공정 거래가 이처럼 자꾸 거론되는 이유는 독과점의 폐해 때문이다. 방송허가 구역별로 독과점화가 심화돼, 제대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결국에는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구조이다.

현재 전국 77개의 SO 사업구역 중 38개 구역은 독점이고 나머지 39개 구역도 복점(2개 사업자) 체제이다. 반면 거래의 카운터 파트너라 할 수 있는 PP는 모두 187개나 된다. 프로그램 컨텐츠 기준으로는 450개가 넘는다.

즉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SO를 통할 수 밖에 없는데 PP수는 넘쳐나지만 SO수는 한정돼 있는것. 하나의 지역 방송국인 SO가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채널도 70여 개에 불과해 PP들 간의 경쟁이 불을 보든 뻔한 상황이다.

공정거래 위원회도 이를 의식, 31개 SO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적발. 지난달 4개사에 수신료 담합 등 과징금 4억8,600만원을 부과하는 조치를 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격 담합, 이익 제공 강요, 불이익 제공 등 SO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감시 활동뿐 아니라 경쟁 제한적인 제도와 관행도 개선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