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케이블TV 트로이카' 체제 - SO 영향력 커지며 협업 체제 삐걱, 영역 다툼 등으로 파열음 커져

국내 케이블TV 산업은 방송채널사용 사업자(PPㆍProgram Provider), 종합유선방송 사업자(SOㆍSystem Operator), 전송망 사업자(NOㆍNetwork Operator)를 3대 축으로 굴러간다. PP가 제작한 프로그램들은 SO라는 계류장에서 편성 과정을 거친 다음, NO가 깔아놓은 전송망을 따라 최종적으로 안방의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구조다.

케이블TV 출범 때부터 정착된 이 같은 협업 체제는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미묘한 파열음을 내며 삐걱거리고 있다. SO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삼권 분립’ 구도에 불균형이 왔고, 이로 인해 3자간 이해 관계에도 충돌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선 케이블TV 업계의 트로이카 체제가 무너지고 ‘한 지붕 세 가족’으로 분열하는 게 아니냐는 성급한 지적도 나온다. 근래 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갑과 을'이 된 SO와 PP

지난해 여름 한 PP업체 대표가 보낸 진정서 한 통이 여당 국회의원 사무실에 접수됐다. 내용은 SO업체들이 PP업체들에게 행하고 있는 각종 불공정행위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진정서는 SO들이 채널 공급 계약을 조건으로 PP들에게 이른바 런칭비를 포함해 광고비 지원, 마케팅 협찬 등 갖가지 ‘가욋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적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정당한 사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털어 놓았다.

진정서의 내용은 얼마 뒤 공정거래위원회의 실태 조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공정위 조사 결과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런칭비를 강요하거나 송출장비 구입 비용을 제공받은 SO와 계약 기간 중에 일방적으로 채널 편성을 변경한 SO 등이 무더기로 적발된 것.

이 같은 SO들의 불공정거래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2004년 실시된 방송위원회의 방송사업자 불공정거래 실태 조사에서도 이미 SO들의 지위 남용은 상당 부분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한 가지 눈여겨볼 사실은 불공정거래행위가 SO뿐만 아니라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에 의해서도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채널을 보유한 MPP들이 자신들의 교섭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SO들에게 부당한 거래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인기 채널을 공급하는 조건으로 비인기 채널을 강제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결국 SO와 PP 사이에 불공정행위가 행사되는 주된 이유는 양자의 역학 관계가 균형을 잃은 데서 비롯되는 셈이다.

SO와 PP간 힘의 불균형이 야기한 갈등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내부에서도 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협회를 구성하는 양대 축인 SO측과 PP측이 서로 불편한 감정을 가진 탓에 ‘화학적 결합’이 좀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 년 전부터 SO측과 PP측이 갈라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어 왔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데 굳이 같은 배를 탈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최근엔 협회 임원진 숫자를 놓고 SO와 PP 진영이 각자 자기 몫을 챙기려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NO도 SO에 살벌한 견제구

이유는 좀 다르지만 SO와 NO 사이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방송통신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방송 사업자인 SO와 통신 사업자인 NO의 영역 다툼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유선통신 사업자인 KT는 최근 다수의 SO들을 상대로 동시다발적인 송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 SO가 자사의 전신주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KT는 케이블TV 업계의 중추적인 NO다.

KT측은 2일 “전국 28개 지사의 전신주 360만여 개 중 18.8%에 해당하는 67만7,000여 개를 조사한 결과 SO의 81.1%가 전신주를 무단 사용하고 있어, 그 정도가 심한 SO들을 상대로 해당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사태가 이렇게 꼬인 것은 2004년 9월 KT가 자사의 전신주를 사용하는 21개 SO들에게 전신주 한 개당 임대료를 42.7원에서 254원으로 대폭 인상하겠다고 통보하면서부터다.

명분은 가격 현실화였다. 하지만 SO들은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 조치에 임대 협상을 거부했고 KT는 그 해 11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KT측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계약 해지 이후에도 SO들이 계속 전신주를 무단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뿐,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좀 복잡해진다.

업계에서는 KT가 자사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잠식해 들어오는 SO들을 견제하기 위해 우회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최근 SO들은 방송 프로그램 송출 외에 기존 케이블망을 활용한 초고속인터넷 사업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SO 업체들은 KT측이 취하는 일련의 조치가 거대 통신사의 횡포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KT가 공기업 시절에 국민 세금으로 확보한 공공 재산인 전신주 등을 갖고 무리한 권리 행사를 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방송위원회에서도 지난해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법 개정 등을 추진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방송 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해 온 ‘케이블 트로이카’. 하지만 이제는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물고 물리는 얄궂은 운명에 빠져들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