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입양아 장애 아픔 극복한 김산석·이준희씨 가족

“우리 가정은 입양에 성공한 가정임이 틀림 없습니다. 장애가 우리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행복하니까!”

4월 25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조그마한 빌라. 김산석(52ㆍ중소건설업체 부장)ㆍ이준희(49)씨 부부의 작은 집은 왁자지껄하다. 사회 초년생인 큰 아들 용갑(25)씨와 대학생 딸 다정(20)씨부터 재롱둥이 두 딸 예지(6)와 은지(5)까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예지 은지, 요 두 녀석이 네 명 몫을 충분히 해요.”

이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어린 아이들은 엄마, 아빠한테 매달리며 어리광이다.

“아이, 이러면 엄마가 부끄럽잖아.” 여섯 살배기 유치원생 예지가 엄마의 가슴을 주무르며 품 속으로 파고들자, 엄마가 얼굴을 붉힌다.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예지는 요즘 유독 엄마 품을 애타게 찾는다. “엄마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가 봐요. 입양에 대한 개념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지난밤에는 두 아이가 엄마의 양쪽 가슴을 각각 물고 장난을 쳤다. 부인 이씨는 “용갑이와 다정이는 모두 모유 수유를 했는데, 두 아이는 빈 젖만 물려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부부에게 ‘가슴으로 낳은’ 은지와 예지는, ‘배로 낳은’ 용갑, 다정 남매 못지않게 소중한 보물들이다.

부부가 입양을 결정한 것은 2000년 새해 첫날. 인천 대부도로 새해맞이 가족 나들이를 가던 차 안에서 이씨가 ‘입양’이란 말을 먼저 꺼냈다. 가족의 반응이 어떨지 조마조마했지만 의외로 남편 김씨와 중고등학생이던 아들과 딸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갓난아이를 입양할 계획은 아니었다. 다 큰 두 남매와의 나이 차를 고려해 초등학생 아이를 데려오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보육원에 전화했더니 그렇게 큰 아이들은 호적이 있어서 ‘입양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신 신생아 입양기관을 소개 받았다. 아들 용갑씨는 “몸도 약하고 허리 디스크까지 있는 엄마가 신생아를 키우는 것은 무리”라며 말렸지만, 엄마의 굳은 의지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마흔 넷 엄마의 용기

입양자격 및 절차

최근 공개 입양을 원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입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양의 조건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입양으로 따스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현행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입양을 하려면 우선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 만 25세 이상으로, 혼인 신고를 한 뒤 3년 이상 지나야 하며 ◆ 입양 아동과의 나이 차가 50세 미만 ◆ 자녀 수는 입양 아동을 포함해 5명 이내이고 ◆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입양은 반드시 입양기관을 거쳐야 한다. 입양 기관에 문의하면 입양 희망자와 상담해 입양 자격 여부를 살펴본다. 자격을 갖춘 부부는 입양 상담원과 면접 후, 주민등록등본ㆍ호적등본ㆍ부부건강진단서 등 구비서류를 갖춰 입양기관에 접수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동 학대 경력이 있거나, 주변 환경이 아이를 기르기에 부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입양 신청이 취소될 수 있다.

입양기관은 입양 희망자의 직장, 이웃, 가정 등을 2회 이상 직접 방문해 조사한다. 이 중 한 차례는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된다.

이후 입양 부모 교육을 받은 다음 아이와 선을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양부모로 결정되면, 친자입적과 양자입적을 선택해 호적을 만들어야 한다.

입양 문의에서 호적을 만들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3개월. 입양 수속비 등 관련 비용은 200만~300만원이다. 입양 후 6개월 이내 입양 기관의 가정 방문 및 상담도 이뤄진다.

◆ 입양 문의 : 홀트아동복지회 1588-7501, 동방사회복지회 (02) 332-3941, 대한사회복지회(02) 552-1015

/ 임재범 기자

2000년 7월 21일, 생후 1개월의 신생아 예지가 부부의 품에 안겼다. 바라볼수록 너무 예쁜 딸이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예쁜 내 딸이 생겼다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당시 이씨의 나이가 마흔네 살. 육아용품을 사러 가게에 가면 “할머니가 선물하시는 거예요?”라고 점원들이 말을 건넸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엄마의 사랑을 아는지, 세 시간마다 품에 안겨 우유를 먹으면서 예지는 포동포동 잘 자랐다. 그런 예지를 키울수록, 입양에 대한 생각이 다시 간절해졌다. ‘언니, 오빠들이 결혼하고 나면 혼자 남은 예지는 얼마나 외로울까’, ‘비슷한 또래의 다른 입양아가 있으면 서로 의지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씨는 아예 ‘은지’라는 이름까지 지어놓고 ‘예지 동생을 달라’고 기도했다. 이번에는 남편과 아들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집 살림도 넉넉하지 못하고 나이도 있으니 예지만 잘 키우자”는 반대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로 밥도 못 먹고 괴로워했다”는 이씨.

어느 날 기운이 없어 화장실에서 넘어져 갈비뼈 9번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고 입양을 승낙해달라”고 애원해, 마침내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결국 갈비뼈 하나와 은지를 바꾼 셈이죠.”

생후 1개월의 은지를 마침내 막내딸로 맞이한 것이 2002년 1월. 먼저 입양한 예지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에 ‘은지를 예지만큼 안 예뻐해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하얀 머리띠에 드레스를 입은 은지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순간은 그렇게 사랑했던 예지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이씨는 고백했다.

그러나 행복에 겨워 지내던 가족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아픔이 찾아 들었다. 은지가 생후 7개월이 되던 무렵. 이씨가 아이 다리를 주무르다 보니 오른쪽 다리에 비해 왼쪽 다리가 눈에 띄게 짧아 보였다.

눈을 의심했다. 다른 식구들이 모두 와서 확인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cm 정도가 짧았다. 뇌성마비였다. 갑자기 가정에 어두움이 드리웠다. 이씨는 “장애라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병에 대해서도 잘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은지가 평생 장애까지 갖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졌다. 일단 정신없이 업고 다니며 치료하는 일에 매달렸다. 치료비만 수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그러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했던가. 시련은 겹으로 밀려왔다. 2004년 봄 예지마저 손바닥 발바닥이 두꺼워지는 선천성 피부병인 각화증 진단을 받았다. 한방과 양방을 가리지 않고 좋다는 것은 다 써봤지만 결과는 참담하기만 했다. 병원에서는 “유전적인 병이라서 치료약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부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예지는 건강 식품인 종합비타민과 크림을 꾸준히 발라준 결과 근래에는 버석버석하던 피부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피부과에서도 기적적으로 호전됐다고 다시 상태가 나빠지면 오라고 했다.

게다가 돌 무렵 뇌성마비 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왼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여 늘 엉거주춤 앉아만 있던 은지가 이제는 걷고,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부부는 “미운 걸음이지만, 아이가 첫 발을 떼놓던 생후 17개월께 그 날의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늦둥이라 더 예쁘네요"

/ 임재범 기자

그렇게 폭풍 같은 시간들을 함께 하면서 가족들은 더 단단해졌다. 두 아이들의 심리 치료와 물리치료, 유치원, 방과 후 가정학습까지 챙기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부인 이씨는 초인적인 일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몸이 더 건강해졌다.

남편 김씨 역시 가정에 더 충실한 자상한 가장으로 변모했다. 퇴근해 돌아오면 아이들 목욕이나 옷 갈아 입히기, 간식 먹이기까지 손수 챙긴다. “용갑이 다정이가 어릴 때는 늘 바깥일로 바쁘다며 가정 일은 나몰라라 했다”는 김씨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늦둥이가 더 예쁘다고” 멋적게 웃는다.

이뿐이 아니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큰딸 다정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큰아들 용갑씨는 이십대 혈기왕성한 나이임에도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 뒷전으로 한 채 곧장 집으로 달려온다.

“예지ㆍ은지가 없었다면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해야 할 지금,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동생들의 입양을 가장 반대하고 나섰던 용갑씨가 이제야 속내를 털어놓는다. “부모님의 선택을 이제는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사실 이들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매우 빠듯한 형편이다. 아이들 방 하나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했다. 부부와 예지ㆍ은지가 함께 자는 큰 방에는 공간이 부족해 네 명이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두 사람은 위 아래로, 또 두 사람은 양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한다.

그러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러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주위의 편견과 삐딱한 시선이다.

얼마 전에는 예지가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너 가짜 엄마 아빠랑 살지?”하며 놀리더란다. 온 몸에 꼬집힌 흔적도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할까? 부모들이 도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어른들이 무심결에 던지는 핀잔이 마냥 야속하기만 했다.

게다가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들이 우리가 안됐다며 지나칠 정도로 ‘더’ 걱정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기 때문이겠죠.” 용갑씨의 말에, 엄마 이씨도 맞장구를 친다.

“입양을 딱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오직 ‘행복 만들기’입니다. 우리 집은 입양을 통해 정말 행복해졌어요. 사실 주변을 보면, 부유한 가정보다 어려운 가정에서 더 많이 입양을 해요. 힘들어도 서로 보듬어 가며 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고귀한 사랑, 그것은 바로 ‘가족’이란 위대한 이름의 힘이 아닐까.

엄마의 편지
♡ 사랑하는 예지·은지에게 ♡

/ 임재범 기자

엄마가 예지ㆍ은지를 엄마 배로 낳아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 그 부분에서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너희는 엄마 딸이 확실하단다.
예지ㆍ은지를 엄마 딸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얼마나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했는지 아니?
예지ㆍ은지가 우리집에 입양되어 오기 전에 엄마가 써놓은 일기가 있어. 너희가 이담에 커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으면 이 일기를 보며 너희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큰 선택이었는지 알게 될 거야.
또한 예지ㆍ은지가 엄마, 아빠의 딸이 되어 주어서 고마워. 예지ㆍ은지 덕에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 오빠가 예전보다 더 행복하고 우리 가정이 더 밝아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고맙단다.
우리가 가족이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거란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엄마가 예지ㆍ은지를 가장 사랑해주며 잘~키워줄 것 같으니까 엄마 딸이 되게 해주셨나봐. 그런데 오히려 엄마와 아빠가 복을 더 받았어. 이 세상에서 입양이라는 통로를 통해 이렇게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싶어.
은지가 뇌성마비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엄마가 마음이 아파서 집에서나 걸어 다닐 때나 하염없이 울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 그때 엄마는 아픈 걸 알고 난 후 곧바로 은지를 업고 허리가 아픈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다녔지. 어느덧 병원에 다닌 지 3년이 넘었네.
지금은 은지야 어때?
아팠던 왼팔과 왼다리가 좋아졌지?
못 걷던 은지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지?
아이큐도 아주 높게 나와 공부도 잘 하겠다고 판정 받았잖아.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등 뒤에서 도와주셨기에 은지와 엄마가 장애를 이기고 승리한 거야.
엄마의 바람이 있다면 예지ㆍ은지가 어느 분야에서든 가치 있는 일에, 유머가 풍부한 큰 리더가 되는 거야. 또 누구든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 특히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자랐으면 해.
엄마가 예지ㆍ은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마음을 꺼낼 수만 있다면 꺼내서 보여주고 싶어. 아무튼 엄마 아빠는 예지ㆍ은지가 너무 예쁘고 좋아.
앞으로도 예지ㆍ은지가 더욱 행복하고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와 예지ㆍ은지가 서로 사랑하며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자꾸나~
정말로 예지ㆍ은지야 사랑해~.

2006년 4월 26일 엄마로부터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