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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5월11일은 입양의 날] '사랑 내림'으로 닮아가는 알토란 다섯 식구
세아이 '공개 입양'한 민경훈씨 부부



/ 김지곤 기자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는 잠시 생각이 멈추는 듯했어요. 그리고는 엄숙한 느낌이 가슴 가득 차오르더군요. 그처럼 첫째 아이와의 만남은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경기 군포시 궁내동에 사는 민경훈씨(44)는 지금도 맏딸 경희(7)를 얻었을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여느 아버지들이 갓 태어난 첫 아기를 대면했을 때 갖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민씨는 ‘가슴’으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민씨는 동갑내기 부인 정선자씨와 1991년 결혼했지만 10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결혼 3년째 되던 해 자궁 외 임신을 한 뒤로 부인 정씨에게 아기가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씨 부부는 이때부터 함께 불임 클리닉을 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반가운 소식은 좀체 들려오지 않았다.

민씨는 아이가 없는 현실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두 사람이 오붓하고 편하게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부인 정씨는 달랐다. 나는 왜 아이를 갖지 못할까 하는 자책감과 패배의식에 시달렸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 동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소외감은 커져만 갔다.

너무나 간절하게 아이를 원했던 정씨는 어렵사리 먼저 운을 뗐다. “여보,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면 어떨까?” 그때가 98년 무렵이었다. 민씨는 부인의 절실함을 알았지만 금세 맞장구를 치지는 못했다. IMF 외환위기 때인지라 경제 사정도 썩 넉넉하지 못했던 데다 무엇보다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덜 됐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결단을 뒤로 미루다 2001년이 다가왔다.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민씨는 어느덧 아내의 뜻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양가의 어른들도 쌍수를 들며 두 사람의 선택을 축복했다.

“비로소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임감이 생겼을 뿐 아니라 삶의 목표까지 달라졌어요. 아이 하나 잘 키우면 내가 세상에 태어난 값은 한다는 생각도 들었죠.”

민씨는 입양 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경희를 소개받고 생모에게 자신의 생각과 굳은 마음가짐을 담은 편지를 써 보냈다. 큰 선물을 준 데 대해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 기르겠다고, 세상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이렇게 해서 그해 2월 생후 두 달이 갓 지난 경희는 민씨와 정씨 부부의 품에 안겼다. 경희를 새 식구로 받아들인 뒤로 부부의 생활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 해보는 아기 키우기가 생각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민씨와 정씨의 얼굴은 오히려 갈수록 환해졌다. 뿐만 아니라 경희를 보려는 친정과 시댁 식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집에는 늘 활기가 넘쳤다.

그러던 차에 정씨는 경희 입양 이후 친하게 지내던 다른 입양 부모들과 함께 대구의 한 미혼모 쉼터를 방문하게 됐다. 한국입양홍보회가 마련한 입양 부모와 미혼모들의 만남 행사였다.

뜻밖에도 이 자리에는 정씨에게 또 다른 운명적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미혼모가 직접 나타나 자신의 아이를 맡아 달라며 애절한 하소연을 한 것. 이 미혼모는 “아이가 큰 뒤에는 낳아준 부모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정씨의 진솔한 입양 소감에 용기를 내어 다가온 터였다.

정씨는 “남편과 상의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도 미혼모의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심사숙고 끝에 정씨는 가족들에게 아이를 하나 더 입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경희를 맞아들였을 때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던 양가 어른들도 이번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잖아도 맞벌이를 하면서 경희를 키우는 처지에 아이를 더 입양하면 너무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한 생명을 거두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정씨의 확고한 의지를 꺾을 사람은 없었다.

경희를 입양한 후 불과 아홉 달밖에 지나지 않은 2001년 11월. 맏아들 홍욱(6)이는 민씨 부부의 둘째 아이로 입양됐다. 그로부터 1년 3개월 뒤, 부부는 또 다시 입양을 했다. 막내 아들 홍경(5)이가 그 때 마지막으로 가족의 일원이 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씨는 입양의 의미에 대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입양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이타적인 사랑을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뿐인가요. 입양을 통해 양육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직접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만큼이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어요.”

정씨는 사랑으로 이뤄낸 자신의 가족이 핏줄로 맺어진 여느 가족과 다를 게 없다는 확신도 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 가족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소중해요. 제가 낳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함을 느끼는 일도 전혀 없어요. 부모로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았느냐 여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느냐 하는 게 아닐까요.”

민씨 가족은 입양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는 이른바 ‘공개 입양’ 사례다.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한 번쯤 앓을 ‘홍역’에 대비해 입양 사실을 조심스레 인식시킨다.

가령 아이들을 잠재울 때 아빠, 엄마와 한 가족이 된 사연을 옛날 이야기 삼아 들려주기도 한다. 또한 한국입양홍보회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데려가 입양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고 있다.

민씨 부부가 이처럼 하는 것은 어차피 비밀은 지켜지지 않는 법인데 일찌감치 사실을 알리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교육 덕분인지 맏딸 경희는 나이답지 않게 어느새 입양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이 생겼다. 정씨는 “얘가 이따금씩 생글거리며 ‘엄마, 난 누구의 애기를 키워야 돼?’라고 묻곤 해요. 그만큼 아이가 입양이라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죠”라고 말했다.

입양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민씨 가족. 그러고 보니 부모와 아이들이 무척 닮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 민씨가 털어 놓은 재미 있는 에피소드 하나.

“한번은 고교 동기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한 적이 있는데, 글쎄 친구 부인이 경희를 보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혹시 경훈씨가 밖에서 낳아 데려와 놓고 입양했다고 우기는 것 아니냐고요. 하하.”

남녀가 만나 오래 사랑을 하면 닮아 간다고 한다. 민씨 가족도 핏줄 못지않게 끈끈한 사랑 덕분에 이제는 서로 닮아 가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5/03 13:19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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