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의 혼 떨칠 '창과 방패' 박주영·이운재 - 패기와 경륜 신구조화, 코리아 신화 재현 자신

2006 독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 재현에 나서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강점 중 하나는 완벽한 신구조화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큰 일’을 이뤄낸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에 패기에 찬 ‘젊은 피’들이 수혈됐다.

딕 아드보카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서 경험을 쌓은 노련한 선수들이 많이 있고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도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며 독일 월드컵에서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월드컵 무대서 펼칠 축구 천재의 진가

‘젊은 피’ 중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은 역시 ‘천재 스트라이커’ 박주영(21ㆍ서울)이다.

소속팀의 부진과 맞물려 올시즌 K리그에서는 지난해와 같은 골폭풍을 몰아치지 못하고 있지만 박주영은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이후 치른 A매치에서 3골을 기록, 대표팀 선수 중 최다 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희망’이라고 불릴 정도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탓에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하면 ‘자질론’ 시비가 일기도 하지만 골잡이로서 그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박주영은 지난해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중 전격적으로 대표팀에 발탁됐고 ‘죽음의 중동 원정’에서 골폭풍을 몰아치며 한국의 6회 연속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몫을 해냈다.

특히 6월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경기에서 0-1로 뒤진 종료 직전 천금의 동점골을 뽑아내며 팀을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패했을 경우 본선 직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즈베키스탄전은 그의 A매치 데뷔전이기도 했다. 이어진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도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뽑아냈고 페널티킥을 유도해 이동국(27ㆍ포항)의 두번째 골의 발판을 만드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월드컵의 해’를 맞아 A매치 첫 골을 뽑아내며 아드보카트호에 병술년 첫 승을 선사한 주인공도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은 1월 2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며 2006년 아드보카트호 첫 골을 기록했고 같은 달 25일 핀란드전에서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선제 결승골을 뽑아내며 월드컵의 해를 맞은 한국 축구에 첫승을 안겼다.

박주영은 이제 독일 무대에서 세계로의 비상을 노린다. 지난해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20세 이하)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는 16강 진출과 세계 무대로의 도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작정이다.

특히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 조별리그 1차전에서 1-2로 석패한 스위스를 상대로 설욕전을 벼르고 있다. 한국은 당시 첫 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 패전한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1승2패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당시 스위스 청소년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필리페 센데로스(21ㆍ아스널)와 스트라이커 요한 폰란텐(21ㆍNAC 브레다)은 A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는 선수들이다. 박주영은 독일 월드컵 G조 최종전에서 이들과의 ‘리턴 매치’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진 빚을 이번에는 반드시 갚을 작정이다.

선수단의 든든한 '형님'

베테랑 중 독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는 단연 주장을 맡고 있는 수문장 이운재(33ㆍ수원)다.

월드컵 출장만도 이번이 세 번째.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 후반전에 최인영과 교체 투입되며 월드컵 그라운드를 처음 밟았고 2002 월드컵 때 한국이 치른 7경기에 모두 출장, 신들린 듯한 선방으로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특히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며 준결승 진출의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독일 월드컵을 맞은 그가 베테랑이자 주장으로서 경기장 안팎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수문장으로서 그라운드에서 수비라인을 안정되게 이끌어야 하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팀의 주장으로서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을 다독거려야 한다.

이운재는 부동의 주전이다. 동계 전지훈련에서도 아드보카트호가 치른 전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일부에서는 과거에 비해 몸놀림이 둔해졌다며 ‘뉴 페이스’의 기용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코칭스태프의 그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정기동 대표팀 골키퍼 코치는 “이운재보다 기량이 뛰어난 골키퍼가 있다면 교체를 검토하겠지만 현재로서 그 이상 가는 골키퍼는 국내에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이운재는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선수로서는 역대 7번째 센츄리 클럽 가입을 노린다. 이운재는 현재 A매치 93경기에 출장, 센츄리클럽 가입에 7경기 만을 남겨 놓고 있다.

독일월드컵 개막 이전에 치를 4차례의 평가전과 G조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장할 경우 A매치 100회 출장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골키퍼로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첫 센츄리 클럽 가입이다.

지난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승 후보들을 차례로 꺾은 경험이 있는 이운재는 한국 축구의 잠재력에 자신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전지훈련 중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프랑스, 스위스를 두려워하기 이전에 그들도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2002월드컵에 비해 선수들의 경험이 풍부해졌고 유럽 빅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며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못 이길 팀도 없고 우리도 세계 축구의 강호’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대표팀의 ‘큰 형님’으로서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큰 형님’으로서 그의 ‘포스’가 여실히 드러났던 경기는 지난 2월 홍콩에서 치렀던 덴마크와의 칼스버그컵 2차전이었다. 대표팀은 당시 조재진(25ㆍ시미즈)의 선제골에도 불구, 수비 조직력이 허물어지며 세 골을 내리 허용하고 1-3으로 패배했다.

경기 후 이운재는 기죽은 후배들에게 “고개 숙이지 마라. 빨리 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 된다. 경기는 앞으로도 계속 있다”며 후배들의 기살리기에 나섰고 대표팀은 다음 전지훈련지인 미국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다.

이운재로서 독일월드컵에서 특히 각별할 경기는 G조 리그전 두 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이다. 이운재는 프랑스에게 2경기에서 모두 8골을 허용하며 대표팀 생활에 ‘오점’을 남겼다.

2001년 5월 대구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리그전(0-5패)에서 무려 5골을 허용했고 1년 후 수원에서 열린 평가전(2-3패)에서도 3골을 허용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문장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운재와 프랑스의 대결은 이번이 세 번째. ‘삼 세번’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물러설 수 없다. 프랑스전은 이운재 개인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자존심도 걸려 있는 대결이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