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팀장·조리장 등 음지의 살림꾼들, 드러나지 않는 도우미 역할로 선수단 움직이는 '12번째 선수들'

▲ 최주영(왼쪽) 의무팀장이 박주영의 몸 상태를 살피며 걷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그리고 23명의 태극전사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 재현에 나설 축구 국가 대표팀의 ‘주연’들이다. 그러나 주연만으로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법은 없다. 비록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묵묵히 주연을 떠받쳐 주는 조연이 있어야 작품이 산다.

아드보카트호 역시 곳곳에서 ‘조연’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바늘과 실처럼 대표팀을 따라다니며 때로는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때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환상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팀의 ‘숨은 도우미’, 그들은 누구일까.

선수 건강 관리 내 몸처럼

K리그 경기 도중 입은 불의의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이동국 선수. 그가 다쳤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사람이 최주영 의무팀장이다. 11년째 대표팀과 동고동락 중인 최 팀장은 선수의 건강 관리를 전담하는 책임자다.

최 팀장과 2명의 팀원이 하는 일은 크게 부상 예방, 부상 치료, 재활 운동 등이다. 여기에는 선수들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심리 치료사의 역할도 포함된다. 육체적인 부상에는 심리적인 부상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치료와 재활 과정에 있는 선수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면서 완벽한 회복을 독려한다. 건강한 선수들은 물론 이상 징후를 보이는 선수들을 꾸준히 점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런 까닭에 대표 선수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존재로 통한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가 경기장을 마음껏 누빌 때다. 하지만 사실은 어떤 선수도 다치지 않는 것을 더 바란다. 월드컵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선수들이 건강한 몸으로 경기장에 나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월드컵의 제 소임입니다.”

잘 먹어야 힘을 쓰죠

태극전사들이 소집되면 파주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는 부산해진다. 특히 선수들의 입맛을 책임진 정지춘 조리장은 맛깔스러운 음식을 식사 시간에 맞춰 준비하느라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빠진다.

“요즘에는 어떤 음식이든 열량이나 영양소가 모자라진 않죠.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얼마나 맛있게 식사를 하도록 음식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죠. 선수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민, 또 고민하는 게 저와 동료 조리사의 일입니다.”

대표 선수들의 식단은 무엇이 다를까. 정 조리장에 따르면 소집 기간 동안 매일 점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내놓는 메뉴가 스파게티란다. 사람이 움직일 때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탄수화물을 가득 머금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고된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안성맞춤 식단인 셈이다.

정 조리장은 대표팀이 해외에 나갈 때도 동행한다. 이번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현지 음식으로는 선수들의 입맛을 100%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매 끼니 정성스레 내놓는 밥과 국, 반찬은 태극전사들이 힘있게 싸울 에너지가 되고 있다.

태극전사의 천리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은 사전에 상대팀의 장단점을 치밀하게 파악한 덕분에 강호들을 연파할 수 있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전술 마련에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압신 고트비 코치의 비디오 분석이다.

상대팀은 물론 대표팀의 훈련, 경기 장면까지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 이를 토대로 경기력을 해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비디오 분석은 이 때부터 대표팀 운영의 기본이 됐다.

2002년에 압신 고트비 코치를 도우며 노하우를 배운 신승순 비디오 분석관은 지금도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다니며 촬영한 비디오 자료를 대표팀에 제공하는 일을 맡고 있다.

특히 외국팀을 촬영할 때는 종종 제지를 받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첩보원을 방불케 하는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해낸다고 신 분석관은 귀띔한다.

외국인 감독과 국내 선수들의 가교

▲ 박일기(오른쪽) 통역관. 아드보카트 감독의 손과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사람이 있는데 박일기 통역관이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통역이자 개인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외국인 코칭스태프도 물론 그가 챙겨주는 대상이다.

K리그 경기의 출전 선수와 경기 결과, 내용 등을 영문으로 작성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보고하는 것도 그의 주요 업무다. 보통 K리그 경기가 주말에 열리는 까닭에 그는 주말을 반납하고 산다.

보다 더 중요한 임무는 외국인 코칭스태프와 국내 선수들 간의 가교 역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양측의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하면 대표팀의 원만한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손발 돼주는 살림꾼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전한진 차장(대외 행정)과 김대업 과장(대내 행정)은 대표팀의 안방 살림꾼들이다.

특히 전 차장은 월드컵과 같은 큰 국제대회가 열릴 때는 눈코 뜰새 없이 현장을 뛰어다녀야 한다. 대회 제출서류 작성, 항공 및 현지 교통편 예약, 숙소와 훈련장 섭외, 전지훈련 및 평가전 준비 등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한 군데라도 실수가 발생하면 적지 않은 차질이 빚어지는 까닭에 그는 매사 정성을 기울여 일처리를 하고 있다.

치밀하기로 소문난 네덜란드인 감독을 보필하는 데다, 그에 못지않을 만큼 철저한 독일인들이 이번 월드컵을 주최하다 보니 느낀 점도 많다. “무엇이든 항상 확인하고 따지며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는 사람들과 일을 진행하다 보니 힘든 점도 있지만 오히려 배울 것도 많더군요.”

김 과장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요청사항 등을 협회에 전달하고 협회의 계획이나 방침을 대표팀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주로 한다. 해외에 나갔을 때는 선수들의 자질구레한 부탁도 마다하지 않고 들어준다.

그는 선수들과의 접촉이 잦은 편이어서 그들의 속마음도 훤히 들여다본다. 그래서일까. 김 과장은 이번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이 다시 한 번 일을 낼 것으로 점치고 있다.

“선수들은 월드컵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마음가짐 자체가 성숙할 뿐 아니라 처음 출전하게 될 젊은 선수들도 의욕이 불타고 있어요. 결과가 말해주겠지만 저는 아드보카트호가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습니다.”

월드컵 D-30. 태극전사들과 도우미들의 찰떡 호흡은 대회 개막일을 향해 갈수록 더욱 끈끈해지고 있다. 새로운 신화 창조의 가능성도 그 안에서 무르익어 간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