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발 정계개편 논의 수면 위로, 계파간 방향·폭 異夢

▲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신낙균(왼쪽) 수석부대표 등 당직자들이 여의도 당사에서 5·31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전남지사와 광주시장의 승리를 확인하고 박수를 치고 있다. / 손용석 기자
정치권에 격변기가 도래했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수모를 당한 열린우리당은 폐허 분위기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어떤 식으로건 재건과 정국돌파 카드가 나올 수밖에 없는 바탕이 마련된 셈이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동영 전 의장이 선거기간 중에 띄운 애드벌룬이 아니어도 여당발(發) 정계개편의 싹은 이미 텄다.

하지만 정계개편에 관한 예측은 폭풍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당 내에서도 백가쟁명 수준이다. 정치권 지각변동의 방향과 폭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또한 정치권에 충격을 안겨준 지방선거 결과 속에는 정계개편을 추동하는 요소와 제어하는 요소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운신 폭 넓어진 민주당

정계개편을 앞당기는 요인 중 하나는 민주당이 광주ㆍ전남권 수성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한화갑 대표는 선거 뒤 일성으로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중심에 서겠다”고 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은 없어질 당이 됐고 한나라당은 수구세력인 만큼 고건 전 총리가 중도개혁세력에 뜻이 있다면 이제 민주당밖에 없다”고 ‘고건 영입’에 더욱 적극성을 보였다.

한 대표의 공언대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둔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단순한 우리당과의 호남 맹주 싸움이 아니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자면 “내년 대선까지의 일정에서 ‘먹느냐 먹히느냐’의 사투”였다. 그런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을 지켜냈다.

객관적으로 봐도 민주당이 대선이라는 본게임에 끼어들 ‘판돈’을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 민주당이 정계개편을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딜레마가 있다. 당의 자체적인 대권주자가 없다는 게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고건 전 총리로 눈을 돌린 지는 오래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

범여권 후보로 ‘추대’를 원하는 고 전 총리의 대권 셈법에선 지금 민주당과의 결합이 별로 득이 될 게 없다. 우리당 내홍의 진로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다. 이는 엄연히 정계개편 시기를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우리당의 대참패는 정계개편의 추동 요인이면서 동시에 제어 요인이다. 철저하게 무너진 당을 어떻게 재건할 것이냐는 논쟁이 필연적이다. 재건의 목적은 정권 재창출이다.

그 전략이 지역적 결합에 방점이 찍히면 정계개편은 빨라진다. 호남을 바탕으로 충청권, 수도권으로 북상하는 서부벨트 재구축, 소위 ‘집토끼’단속론이다. 중심축이 누가 되건 기본은 ‘열린우리당+민주당+고건’ 3자연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처참하게 무너진 게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당장 정동영 의장이 물러났다. 당 내에서 이런 방식의 정계개편을 추동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정국주도권을 상실한 우리당에게는 정계개편을 이끌 힘조차 없어 보인다.

게다가 최악의 참패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 모습도 대외적으로 보여야 한다. 지금 상태에선 정치적 기획으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정치적 꼼수로 비쳐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일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영등포 당사를 떠나고 있다. / 신상순 기자
▲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일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영등포 당사를 떠나고 있다.
/ 신상순 기자

결국 어떤 식으로건 여당발(發) 정계개편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면 적어도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다수의 관측이다. 그때부터는 정계개편이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될 것이라는 점에도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여당 내에서 3자연대 형식을 선호하는 세력이 현시점에서 다수라고는 해도 반드시 그 방향으로 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우리당 재야파는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 외곽과 한나라당까지 배제하지 않는 탈호남적 결집을 도모하는 방법론을 선호한다. 청와대와 친노계는 내심 민주당과의 당대당 통합 방식에 부정적인 태도다. 노선에 따른 분화과정을 거쳐 다당제 구조를 형성한 뒤 선거연합을 모색하거나, “야당 할 각오”로 독자세력을 구축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처럼 여권 내에서조차 동상이몽 수준인지라 정계개편의 방향을 지금 예측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념·노선 따른 헤쳐모여 될 듯

일정한 연관은 맺겠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계개편 논의도 꿈틀대고 있다. 한나라당발(發) 정계개편이다. 이 또한 지방선거 결과가 불러온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지방선거 최대의 수혜자로 떠오르면서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기본적인 골격은 박 대표가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대권도전을 위해 당을 이탈하는 시나리오다.

현실화되려면 이는 어쩔 수 없이 여권의 분화와 맞물리게 된다. 특히 박 대표와 지지기반이 겹쳐 대권주자로서 양립이 불가능한 이 시장으로서는 블루오션을 현 여권의 어느 분파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어찌됐건 여야에서 정계개편의 논란이 무성한 것 자체가 보다 큰 틀의 정치권 질서재편을 창출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열린우리당의 사분오열과 한나라당의 분화가 적절한 지점에서 만난다면 현재의 정치권은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전혀 새로운 구조로 변모할 수도 있다. 정치권 ‘빅뱅’, 완전한‘새판짜기’다. 다만 시기 선택이 문제일 뿐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