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마을 노인들 조사… 끈끈한 공동체적 삶 영위도 큰 몫

▲ 농촌진흥청이 장수마을로 선정한 경남 거제시 사등면 대리마을 노인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풍란 화분을 만들며 즐거워 하고 있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남보다 오래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저 사람은 어떻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혹시 저 사람처럼 하면 나도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장수(長壽)인을 보면 절로 나오는 궁금증들이다.

과연 장수하는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결과’는 이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100세 이상 고령자들이 답변한 장수 비결은 절제된 식생활, 낙천적 성격, 규칙적 생활 등이었고, 선호 식품도 채소ㆍ야채류, 육류, 생선류 등으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평범함 속에 장수의 비법이 있었던 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수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100세 이상 노인이 많이 사는 시군구로는 전남 순천시와 여수시가 각각 1, 3위를 기록했다. 그러다보니 전남은 광역시·도 가운데 100세 이상 노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10만 명당 6.4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호남 지방은 예로부터 장수 마을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국내에서 대표적인 ‘장수 벨트’도 호남 지방에 형성돼 있다. 그렇다면 특정 지역의 사회적ㆍ환경적 특성은 장수와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내놓은 국내 장수인 실태조사 결과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 박 교수팀의 연구는 전남 담양, 곡성, 구례, 전북 순창군 등 호남 장수 벨트 4개 군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크게 장수인의 ‘사회환경적 요인’과 ‘개체적 특성’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외롭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4개 군의 장수 마을을 각각 한 곳씩 정해 참여관찰, 면접 등 심층 조사를 실시한 연구팀은 의미 있는 결론을 적잖이 도출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장수 마을은 모두 ‘공동체적 유대관계’가 상당히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이곳 노인들은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등 다양한 공간에서 함께 어울리는가 하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주민들의 일상사 등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등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서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이는 친족 관계, 이웃 사촌으로서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공동체적 정서가 삶의 일부로 자리잡아 왔다는 점 등이 배경으로 분석됐다.

장수 마을에서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할머니들이 할아버지에 비해 사회적 상호작용이 더 활발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장수하는 할머니의 수가 할아버지보다 많은 이유도 있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관계지향적이라는 특성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했다.

이 때문인지 개별 면접 결과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들보다 우울감과 고독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노년학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역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관계망을 지속하는 것은 노인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밝혀지고 있다.

로위(Rowe)와 칸(Kahn)이라는 학자는 노인들이 지역사회와 통합되는 것이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의 3대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동일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서로의 일생을 지켜본 친족, 친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농촌 환경이 장수 마을 노인들의 건강에 기여할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추론할 수 있다.

노인들의 장수에 가족 등 주변과의 친밀감, 유대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통계청의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고령자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독거 노인이나 양로원 등 집단시설 거주 노인은 10% 선에 불과한 것. 장수하기 위해서는 노년이 외롭지 않아야 하는 셈이다.

소식에 규칙적인 식습관이 좋다

박 교수팀은 장수 벨트 4개군의 90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식습관과 생활습관 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장수인들은 아직도 본인의 건강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경우가 6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약이나 영양제, 건강식품을 간혹 섭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속적인 복용을 하지는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섭취하고 있었다. 식욕이 좋고 식사가 즐겁다고 답변한 경우가 80%를 넘었다. 식단은 우리 전통식 형태인 ‘밥+국(찌개)+반찬’의 조합을 선호했고 반찬으로는 나물류를 많이 섭취하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식품군으로는 과일류, 콩이나 된장 등 두류, 버섯류, 채소류 등 식물성 식품이 많았으나 실제 섭취량은 채소류의 비중이 컸다. 죽이나 수프, 장아찌, 젓갈, 튀김 등은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성과 동물성 식품 섭취 비율은 평균 85:15 정도로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물성 식품 위주의 식단을 꾸려가고 있었다. 사탕, 설탕 등 당류와 된장의 섭취량이 전국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육류 등 동물성 식품군 섭취량이 적기는 하지만 국내 65세 이상 노인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요리 방법은 구워 먹는 것보다 국, 탕, 찌개, 조림 등 형태를 선호했다.

남녀 간 식습관에는 적지 않은 차이점이 발견됐다. 할아버지들은 과일의 섭취량이 매우 낮았고 유제품은 전혀 먹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할머니들은 훨씬 다양한 식품군을 섭취하고 있었다.

이곳 노인들의 장수에는 올바른 생활습관도 한몫한다.

흡연과 음주를 절제하는 것은 기본이고 신체 활동을 충분히 하면서 잠도 9시간 이상 푹 잔다. 집 밖으로까지 나가서 활동하는 경우도 66%에 이른다. 잘 먹고, 활동을 많이 하고, 잘 자는 게 건강한 장수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이다.

박 교수는 “가족력 덕분에 장수하는 것은 20~30%밖에 안 되며 라이프 스타일만 개선하면 충분히 100세까지 살 수 있다”면서 “일하고, 움직이고, 성실하게 살면 장수할 수 있다. 장수의 지향점은 어떤 나이에도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