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근혜계 인사들 당 장악, 불리한 후보 경선방식 돌파가 대권 관건

이명박(MB) 전 서울시장은 과연 청계천을 넘어 청와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청계천 특수에 힘입어 지지율 1위로 한해를 넘기면서 고공행진을 할 때만 해도 그 ‘꿈’은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올 3월 ‘황제테니스’논란에 휩싸여 지지율이 10% 가량 추락하면서 ‘청계천의 꿈’도 휘청댔다. 그 사이 박근혜 전 대표가 4ㆍ30 재보선, 5ㆍ31 지방선거에서 ‘박풍(朴風, 박근혜 바람)’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 지지율이 역전되면서 이 전 시장의 대권행은 급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7ㆍ11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은 강재섭 후보가 당 대표가 되고 이른바 친박근혜계가 당을 장악하면서 일각에선 이 전 시장이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현행 당헌 당규 상 경선 방식도 이 전 시장을 옥죄고 있다. 대의원 20%, 책임당원 30%, 국민선거인단 30%, 여론조사결과 20% 등을 반영해 후보를 결정하도록 돼 있는 경선 방식은 현재의 당 구조상 이 전 시장에게 불리하다.

이 전 시장측과 중도ㆍ소장파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2년여 동안 당을 이끌면서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아 대의원ㆍ책임당원으로 대변되는 당심에서 이 전 시장보다 6대4 정도 앞서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7ㆍ11 전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당 소속 기초의원(1,622명), 광역의원(557명), 기초단체장(155명) 등은 지난 5ㆍ31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로부터 공천장을 받아 당선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중앙당 및 시도당 사무처 직원(210명)의 대다수도 박 전 대표와 생활하면서 유대가 깊은 데다 지난 6월에 선출된 시ㆍ도 당위원장도 대부분 친박계로 포진해 있다. 당내에서는 전체 당원협의회장 243곳 가운데 60% 이상이 친박계 성향의 위원장으로 채워져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그래서 경선 방식 개정을 놓고 이명박ㆍ손학규측은 “대선 승리는 민심에 달려있다”면서 “국민선거인단 숫자를 20만~30만 명으로 늘리거나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방식)도 검토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측은 불가(不可)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요구될 전망이다.

여론조사서 희망적 결과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의 대권 꿈은 물 건너간 것일까?

아직 안갯속에 가려 정확한 향배를 알 수 없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다소 희망적이다.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박 전 대표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내용면에서 청계천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25일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향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5.5%로 가장 높았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20.7%, ‘고건 전 총리’ 19.4% 가 그 뒤를 이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4.1%에 머물렀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박 전 대표 38.9%로 이 전 시장 31.3%보다 우세했다.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는 고 전 총리가 32.3%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고 이 전 시장이 13.4%로 뒤를 잇는 강세를 보였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R&R)가 7월 11일 제주를 제외한 전국 만 19세 이상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을 한 결과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박 전 대표가 26.8%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이 전 시장이 25.7%로 뒤를 이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1.9%의 지지율을 보여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했다.

두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서울, 남자, 40대, 고학력 및 고소득층, 학생층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고 박 전 대표는 충청권, 대구·경북지역, 여자, 50대 이상, 저학력 및 저소득층에서 지지가 높았다.

주목되는 것은 박 전 대표 지지층이 한나라당 지지층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KSOI 한귀영 실장은“박근혜ㆍ이명박 두 주자의 지지분포를 분석하면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지지층과 영남에 국한된 반면, 이 전 시장은 전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고 20~30대 젊은층은 물론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도 지지율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박 전대표가 이 전 시장보다 앞서고,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는 이 전 시장이 고건 전 총리 다음으로 나타나 박 전 대표는 물론 DY(정동영)ㆍGT(김근태)보다 앞선다”며 “내부 경선에서는 박 전 대표가 유리하나 본선에서는 이 전시장이 나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문화일보-KSOI의 차기 대통령 리더십에 관한 조사결과 국민의 40% 이상이 ‘강력하고 진취적인’리더십을 선호했고 30% 가량이 ‘강력하고 안정적인’리더십을, 다음으로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리더십, ‘민주적이고 진취적인’리더십 순으로 꼽았다.

한귀영 실장은 “강력하고 진취적인 리더십은 추진력이 돋보이는 이 전 시장과 연결되고, 강력하고 안정적인 리더십은 박 전 대표에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이 전 시장으로서는 본선에서 유리할 수 있는 상황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정계개편 등 변수 여전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 1년 4개월여가 남았고 한나라당 경선만 해도 10개월여를 앞두고 있다. 정치상황이 돌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불거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정치컨설팅회사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차기대선의 변수로 ‘정계개편’을 꼽았다. 정계개편론은 정치권에서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물밑에서 추진되고 있다. 박 대표는 정계개편론에서 당과 지역ㆍ이념 간 합종연횡에서 상대적으로 이 전 시장이 도전과 유혹을 더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귀영 실장은 “차기 대선은 2002년 때와 같은 이념적 대결이 아닌 어느 후보가 국민(유권자)을 설득할 수 있는‘아젠다’ 내지 ‘대안’을 제시하느냐가 주요 변수”라며“정치노선보다 사회ㆍ경제 문제를 해결할 비전을 제시하거나 복지ㆍ경제라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선지형이 박근혜-이명박 양강 구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손학규 전 지사의 돌발변수 가능성도 있다. 손 전 지사가 잠재적 파괴력이 있는 데다 양강의 미세한 틈에서 독자노선을 택할 지, 아니면 한쪽과 연대해 균형을 깨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예측불허의 대권레이스를 시작한 박ㆍ이 두 대선주자에게 공평한 게 있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교훈일 것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