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성 담은 블랙코미디, 관객 흡입력 뛰어나… 막판 어색한 CG는 아쉬워

지난 7월 29일 오전 7시 55분, 서울 용산 CGV에는 적지 않은 관객들이 몰렸다.

이날로 개봉 3일째를 맞은 영화 ‘괴물’을 보기 위해서였다. 조조영화는 대개 오전 10시 전후에 시작하며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이라고 하더라도 오전 9시 이전에 시작하는 경우가 드문데 ‘괴물’의 첫 상영 시간은 파격적으로 오전 8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을 보기 위해 황금 같은 주말에 맛보는 달콤한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는 ‘괴력’을 발휘하고 온 관객들로 상영관 내부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초반 흥행몰이가 예사롭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케 했다.

이 극장은 전체 12개관 중 7개관에서 ‘괴물’을 상영하는 중이었고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미처 표를 예매하지 못한 관객들은 자리가 있는 시간대까지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함에도 괴물을 보기 위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괴물’의 인기는 영화제목 그대로 가히 괴물급이었다. (배급사인 쇼박스측은 이날 하루에만 79만2,762명의 관객을 동원해 ‘태극기 휘날리며’가 갖고 있던 한국 영화사상 하루 관객동원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발표)

"미국의 패권주의 풍자"

영화를 보면서 느낀 ‘괴물’이 지닌 미덕은 상영 시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었다.

2시간 가까이 상영되었지만 그 시간이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결말과 서울의 대표적 상징인 한강을 배경으로 한 동시대성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루한 영화일수록 상영 중에 자주 등장하는 핸드폰 액정 불빛이 이번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이제껏 나온 한국 영화들의 컴퓨터그래픽(CG) 수준에 비하면 혁명적이라 부를 만큼 탁월한 CG를 통해 구현한 괴물의 모습 역시 현실감을 더해준 것도 내심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CG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된 것은 분명하지만 후반부에서 괴물의 죽음을 처리한 CG는 왠지 다소 어설프게 보이는 점이 눈에 거슬리고 긴장감을 반감시켰다.

이 점은 여러 관객이 지적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는 행동이나 피부의 움직임 등에서 괴물 CG는 놀라운 수준이지만 괴물이 불타 죽는 결정적인 장면이 너무 허술했다.” 불길에 휩싸이지 않고 불과 괴물이 따로 노는 듯 붕 뜬 장면이 현실감을 떨어뜨린다는 것.

이에 대해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괴물’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상징하는 하나의 소재로 영화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는 의견부터 “CG에 50억원을 들인 괴물과 수백억 대의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 영화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등 반론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은 영화 속에서 괴물을 태우는 데 사용된 신나로 불을 붙여본 사진을 첨부해 “원래 신나를 끼얹고 불을 붙이면 붕 뜨듯 타오르며, 이것은 ‘봉테일(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쓴다는 뜻)’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이 실제 상황을 가정해 미리 계산한 결과”라고까지 옹호하기도 했다. 어쨌든 논란이 되는 요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기존의 괴수영화와 다른 가장 큰 차별성은 시사성이 담긴 블랙 코미디 성격을 지녀 색다른 재미와 생각거리를 던진다는 점이었다.

대학생 조은난(23) 씨는 “괴물을 죽이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괴물과 가족의 사투를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라크전 등 사회를 풍자한 점이 기발했다”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내 재미있게 봤다”고 호평했다.

물론 영화가 여러 사회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지만 간혹 직설에 가깝게 비판하는 부분은 관객들에 따라 호불호를 갈리게 했다.

주인공 박강두 가족들의 주장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국가 권력과 사실상 따져보면 괴물을 만든 직접적 원인 제공자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핑계로 군대를 파견해 야욕을 드러내는 미국 정부, 무기력한 우리나라 정부 등이 또 하나의 괴물로 묘사된다.

그러다 보니 영화 전반부의 가족들은 실재하는 단 하나의 괴물과 싸우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또 다른 괴물’들이 계속 부각되면서 다소 산만한 구성을 노출시켰다. 사회 풍자를 위해 주사기 하나와 인질 한 명으로 미군 수십 명을 따돌리는 강두의 탈출신 같은 무리한 장면이 나와 영화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식이다.

그러나 어딘가 좀 모자라고 무능력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딸의 실종을 계기로 함께 모여 괴물에 맞서는 설정을 ‘가족애’로 부각시키면서, 개연성이 부족한 몇몇 에피소드들을 그래도 무난히 끌고 간 것으로 보였다.

특히 괴물에게 잡혀간 딸 현서가 환영으로 등장해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은 가족의 소중함을 드러낸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었다.

회사원 김영민(30) 씨는 “잡혀간 딸을 찾기 위해 온 가족이 갑자기 용감해지는 데서 설득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가족이 중시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느끼기엔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라며 “괴물과 가족의 대립에 좀 더 치중했다면 구성이 훨씬 매끄러웠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극장을 나서면서 ‘괴물’를 보고 난 나의 인상은 한마디로 ‘재미있게 잘 만든 영화’ 였다. 뭔가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데 집중한 기존 ‘대박 영화’들과 달리 생각할 점을 던져주는 영화 ‘괴물’은 온라인상에서도 아직까지는 호평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 영화, 맥스무비 등 각종 영화 사이트들마다 네티즌들이 투표한 ‘괴물’ 별점평가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대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논쟁이 일고 있다.

사회성·오락성 무난

“전작인 ‘살인의 추억’보다 작품성이 떨어진다( )”, “코믹한 사회 풍자가 너무 많이 등장해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ID: toyouditto)”, “누구나 알 수 있는 뻔한 은유와 거친 상징으로 쏟아내는 메시지가 불쾌했다(ID: bekuriyu)” 등 의견이 더러 있었다.

그 외에도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강두의 딸 현서의 생존 여부, 괴물을 죽이기 위해 살포된 독가스 ‘옐로우 에이전트’의 정체, 초반 등장한 한강 투신자살 장면의 의미 등에 대해 각 인터넷 게시판마다 네티즌들의 토론이 활발하게 일고 있어 일부 디테일의 미진함은 ‘괴물’이 ‘왕의 남자’를 능가하는 흥행 신기록을 깰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지현 객원기자 leina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