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장르·만년 조연의 매력 찾아내 흥행대박

충무로에서 이름 하나만으로도 강력한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스타 감독을 꼽으라면?

단연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그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에서부터 ‘살인의 추억’(2003년), 현재 상영중인 ‘괴물’까지. 그가 연출한 장편영화는 고작 세 편에 불과하지만, 각 작품에서 드러나는 감독의 존재감은 경륜, 그 이상이다.

비록 ‘플란다스의 개’는 관객 동원 면에서는 별 재미를 못봤지만, 작품성 면에서는 ‘살인의 추억’ ‘괴물’을 능가하는 평단의 지지를 얻으며 영화계에 ‘봉준호’란 이름 석자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지금도 ‘비운의 명작’으로 널리 회자된다.

괴수 영화인 ‘괴물’이 삼복더위 속에서 지칠 줄 모르는 괴력을 발휘하는 성공의 8할은 이 같은 봉 감독에 대한 영화계와 관객의 신뢰 덕이다.

특히 그가 요즘 잘 나가는 흥행 감독들 중 더욱 주목 받는 것은 개척 정신, 즉 다들 ‘안 되는 작품’이라고 비아냥거릴 때 이를 ‘명품’으로 빚어낸 도전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론 관객들의 유례없는 성원을 얻었고, 얻고 있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은 기획 당시엔 대다수 영화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작품이었다.

“‘살인의 추억’을 만들 당시에는 한국에서 스릴러, 연쇄살인 장르가 별로 없어서 주변에서 우려가 많았다. 다행히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괴수 장르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하지말라고 했다. 괴수 장르에 대한 편견에 많이 있었다. 웬 이무기 영화를 만드냐고?”

그러나 기우였다. 봉 감독은 ‘스릴러’와 ‘괴수’라는 영화계 비호감 장르의 숨겨진 매력을 대중에게 멋지게 알리는 데 성공했다. 봉 감독도 “관객들에게 ‘괴물’로 호응을 얻고 있어서 이런 새로운 장르도 대중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구나, 어떤 장르에도 도전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가능성이 열려 무엇보다 기쁘다”고 ‘괴물’의 의미를 평가했다.

봉 감독의 영화는 또 ‘괴물’이 그렇듯이, 스타 배우보다는 연기를 잘 하는 개성 있는 배우들의 캐릭터를 최대한 끌어낸 점도 눈에 띈다.

배우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이 이른바 ‘봉준호 사단’이다. 배두나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인연을 맺었고, 송강호, 박해일은 ‘살인의 추억’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다. 그리고 ‘괴물’에서 이들보다 비중은 작지만 가장 무게감을 발하는 베테랑 연기자 변희봉은 봉 감독의 세 작품 모두에 출연했다.

대다수 감독들이 스타 배우들의 캐스팅에 골몰할 때, 그는 TV드라마의 만년 조연 변희봉을 20년 만에 스크린으로 불러들여 ‘배우의 재발견’을 일궈냈다. 그게 배우들이 ‘봉준호 칭송가’를 읊는 이유일 것이다.

‘괴물’팀이 처음 야외 단합모임을 가졌을 때 봉 감독은 배우와 스탭들에게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모르도로 가는 프로도의 심정”이라고 고백을 했다. 그리곤 “프로도 옆에는 샘이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자신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이때 “저는 감독님의 샘이에요” 하고 날아든 문자메시지를 보낸 이들이 무려 서른네 명. 이는 영화계에 잘 알려진 일화다.

이러한 봉 감독에 대해 변희봉은 “맹목적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감독”이라 했고, 배두나는 “괴물 영화라는 스토리보다 절대적으로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에 한치의 의심없이 출연했을 정도”라고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다.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심각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유머 능력도 봉 감독의 탁월한 강점이다. 게다가 그 유머 속엔 부조리한 동시대의 ‘사회’ 단면이 담겨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인 그는 1994년 졸업작품으로 단편 ‘지리멸렬’을 발표했을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남의 우유를 훔쳐 마시고 배달 온 신문을 가로채는 신문사 논설위원과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대학교수 등이 주인공. 그때부터 엿보인 ‘풍자의 씨앗’이 지금까지 옹골차게 자라나 결실을 맺고 있다고나 할까.

가족 내력도 범상치 않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천변풍경’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이 그의 외할아버지다. 한국전쟁 당시 친구 상허 이태준(1904~?)을 만나러 부인과 5남매를 남겨두고 북으로 갔던 외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언젠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말한다.

충무로 영화들이 연전연패를 당할 때 흥행 홈런을 쳐내는 ‘거포’ 봉준호 감독. 영화적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절묘하게 배합할 줄 아는 그의 메가폰에 한국 영화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