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연구에 꼬박 1년… 한·미 공동작업 괴물 땀구멍까지 정교하게 표현, 50억원 소요

꼬리 하나라도 보일라 애태우던 괴물이 스크린에 전격 등장했다. 크기는 보통 성인의 3~4배 정도. 코끼리나 버스와 비슷한 크기다.

사람 하나쯤은 거뜬히 휘감아 날릴 수 있는 긴 꼬리, 물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특성 때문에 어류의 미끄덩한 몸 표면을 가지고 있다. 커다란 몸에 작게 달라붙어 있는 다리로 봐서는 공룡과도 닮았다. 포유류처럼 이빨이 아래위로 달린 게 아니라, 거의 360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솟아나 있다.

에이리언이나, 킹콩, 고질라 같은 제법 그럴듯한 이름 대신 그냥 무명씨 ‘괴물’이라 칭해진다.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송강호)와 그의 가족, 아버지 박희봉(변희봉), 남동생 박남일(박해일), 여동생 박남주(배두나)가 잡혀간 딸 박현서(고아성)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일 괴물의 모습과 생동감은 영화 <괴물>의 성공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총 제작비 110억원의 절반 가까이 되는 50억원, 충무로 어느 배우도 상상할 수 없는 초특급 개런티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만든 괴물의 출생비로 투입됐다.

괴물 CG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짚어본다.

72명의 스탭이 참가한 CG작업

괴물의 습격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 현실이다. 봉준호 감독이 19년 전 봤다던 괴생물체가 지금의 한강 어디에도 있을 리 만무하다.

감독, 스탭, 배우들은 현장에선 보이지도 않는 컴퓨터상의 가상 생물체인 괴물을 쫓고, 또 쫓기면서 악전고투해야 했다. 카메라의 움직임, 배우들의 시선처리, 현장의 상황까지 모두 괴물이 있다는 가정 하에 진행됐다. 괴물 대신 검은 막대기를 향해 ‘저게 괴물이다’ 최면을 걸고 사투를 벌였다.

먼저, 괴물의 디자인이 관건이었다. 한강변에 흘러들어간 유독물질 포름알데히드 때문에 기형적으로 자란 어류가 바로 괴물의 정체였다.

어류의 돌연변이로 태어난 괴물의 디자인은 게임업체 디자이너 장희철이 맡았다. 꼬박 1년간 괴물의 디자인을 연구했다. 단순히 미학적인 관점에서의 ‘디자인’이 아니었다. 생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실제로 걷고, 뛰고 움직이는 생물체의 모습을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만든 괴물 디자인은 CG작업을 위한 초석이 됐다.

장희철은 <반지의 제왕>의 모형을 만든 뉴질랜드 웨타 워크샵에서 스캐너블 매킷(괴물 축소형) 작업을 했다.

축소형이지만, 피부의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정교한 작업이 수반돼야 했다. 그 소스를 바탕으로 컴퓨터 3D안에서 분석, 디자인해서 괴물의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입 모양 하나만 하더라도 벌리고 있거나, 다물고 있거나, 여러 형태로 보여줘야 한다.

본격적인 CG 작업은 <씬시티>, <헬보이>, <투모로우>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비주얼 이펙트를 담당한 신생 CG업체 오퍼너지(Orphanage)와 진행했다. 한국 업체들의 관심이 워낙 높았던 프로젝트였지만 본격적으로 CG가 중심이 된 SF영화는 충무로에서 단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점 때문에 봉준호 감독은 기술력이 검증된 할리우드 업체의 문을 노크했다.

처음엔 <반지의 제왕>을 시각화한 웨타 디지털과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웨타 디지털측이 <킹콩>등의 작업에 몰두하느라 무산되면서 한동안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스탭들은 한국에서 사전 준비작업을 하면서 할리우드의 실력 있는 업체를 찾아 나섰다.

“대개 CG는 후반 작업인 줄로만 알고 있지 않나. 우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촬영 프로덕션에 모두 포함된 과정이더라.”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괴물>의 CG작업은 촬영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오퍼너지의 직원 중 <괴물>의 시각화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슈퍼바이저와 프로덕션 스탭을 포함해 총 72명.

실사 카메라에 맞춰 CG 동선을 만들어주는 스탭, 실사 플레이트에서 가상 세계를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카메라 매치무브 스탭, 괴물의 뒤에 사람이나 물건이 있을 때 세심하게 아웃라인을 따 분리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로토스코프, 페인트 아티스트 스탭, 또 현실감 있는 근육시스템을 추가해 괴물의 움직이는 뼈대를 만들고, 피부를 입힌 괴물이 몸을 적절한 곳에서 움츠렸다 펼 수 있게 하는 크리쳐 TD 등이 모두 여럿도 아닌 한 마리의 괴물을 표현하는 데 동원됐다.

가상의 움직임에 맞춘 카메라 워크

<괴물> 촬영 현장은 그래서 다른 영화와 달리 항상 CG작업을 위한 준비가 함께 진행됐다. 촬영 역시 CG작업을 위한 토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형구 촬영 감독은 현장에는 없지만 사람의 속도로 쫓기 힘든 괴물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카메라 속도를 얼마나 내야할지, 또 공중을 휙휙 돌아 교각에 척 붙는 괴물의 묘기를 위해서 얼마나 카메라를 들어야 할지, 혹은 내려야 할지 등 모든 상황을 미리 고려해야 했다.

처음 백주대낮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뚝방을 차고 비호같이 뛰는 장면의 속도감을 주기 위해서 괴물의 속도를 가정한 MTB 바이크를 이용해서 리허설을 했다. 그 스피드를 몸에 익혀 괴물의 습격 후 한강에 빠지고, 구르는 스턴트맨들도 속도감 있는 연기를 했다.

실제 촬영 때 사용한 장비는 놀랍게도 골프카다. 보통차와 달리 골프카는 소음도 안 나고 앞에 프레임을 달아 카메라를 얹을 수도 있는 이상적인 구조였다.

<괴물> CG작업엔 외국 스탭들이 현장에 상주했다. 디지털수퍼바이저 캐빈 레퍼티와 프로듀서, 통역자들은 매일 나왔다.

전해준 데이터만 가지고 미국에서 작업하면 지금 같은 정교한 괴물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촬영장의 상황과 감독의 요구사항을 캐치해서 CG작업에 반영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오퍼너지측은 그래픽 작업을 마친 결과물을 컴퓨터 저장하드인 FTA에 올리면 한국 디지털 작업 업체에서 이를 받고, 봉준호 감독은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지적할 사항들을 말했다.

이 과정을 1~2시간 분량 비디오로 찍어 다시 FTA에 올렸다. 그러면 오퍼너지측은 봉 감독의 의견을 듣고 작업을 수정했다. 이런 작업이 있었기에 한국과 미국이라는 시·공간의 제약에도 불구, 무리없이 괴물을 작업할 수 있었다.

물론 괴물 모습 구현이 CG작업의 전부는 아니었다. 괴물이 물에 첨벙 뛰어들 때 생기는 파장까지 모두 CG작업에 포함된다. 아무것도 없는 장면을 촬영해 물이 튈 때 나타날 물방울을 CG로 만들어줘야 한다.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이라면 주변 모습까지 모두 CG작업을 해줘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괴물이 실제로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의 파문, 빗방울, 먹잇감을 매달고 갈 때 꼬리의 움직임에 따른 주변의 변화, 괴물이 땅에 뛰어다닐 때 날리는 먼지, 괴물이 있는 주위의 풀과 없는 풀의 차이, 괴물에 의해 변화하는 자연환경 모두가 괴물의 CG에 포함됐다.

총제작비의 절반 가까이 투입

“괴물의 CG 비용은 50억원 정도지만, 괴물의 완성도는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해도 아깝지 않을 결과다.” 오퍼너지에서 <괴물>의 작업을 함께 한 한국인 엔지니어 박재욱 씨는 괴물의 완성도에 대한 가치를 이같이 말한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잘 구비된 배경 아래 ‘스르륵’ 나타나는 괴수와 달리, 제 몸 하나 가릴 것 없는 백주대낮에 온몸을 드러내는 괴물의 행태는 자살행위와도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만큼 어렵고 무모한 도전이 괴물의 CG 작업이라는 것.

따라서 생생한 괴물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들 모두가 이번에 한국 영화의 신천지를 개척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촬영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습하고, 실험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와 함께 괴물을 작업한 모든 이들은 괴수 영화사에 기록될 획기적 괴물의 탄생은 ‘봉디테일’ 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느 것 하나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이 꼼꼼하게 촬영하는 ‘봉디테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 자신의 스타일에 힘입어 그는 19년 전 자신이 ‘보았다는’ 괴물을 스크린에 불러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화정 필름2.0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