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내선 항공료는 외국에 비해 이미 저가 수준이에요. 그런데 새로 ‘저가 항공’이라고 내세울 틈새가 없습니다.” 제3민항인 제주항공의 출범에 즈음해 한 항공사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제3민항의 출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외견상 태연한 모습이다. “남의 일에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며 공식적으로는 “제주항공의 출범에 별다른 입장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두 항공사 모두 내심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한정된 파이를 나눠야 하는 실정인 만큼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두 항공사는 회사별, 노선별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

대한항공 경우는 제주항공의 국내선 취항에 일견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상황. 국내 노선 운행에서 연간 1,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 제주항공의 등장으로 이런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다는 계산에서다. 어차피 앞으로 국내 노선이나 운항 편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격’이라는 것.

아시아나 역시 비슷한 입장이지만 대한항공에 비해서는 견제가 심한 편이다. 최근 서울-김해 노선 항공권 가격을 최고 15%까지 할인해 주고 있는 것이 한 예. 그것도 제주항공의 운항 시간대에 집중돼 있다.

제주항공이 5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데 아시아나에서 최고 할인을 적용받으면 두 회사 간 요금이 4,000원 차이에 불과해 승객들이 같은 값이면 아시아나로 몰린다는 것.

아시아나는 표면적으로 “적대적 마케팅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제주항공은 이런 아시아나측의 처사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가 대한항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선 영업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시아나가 수성(守城)에 애쓰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국제선 노선을 놓고서는 두 항공사의 입장이나 태도가 확고하다. 한마디로 국제선을 넘볼 경우 ‘가만두지 않겠다’는 태세다.

대신 “대형 항공기가 들어가는 노선에 저가항공사가 끼어들어 파이를 나눠먹겠다고 하게 되면 시장이 혼탁해지니 대형항공사는 대형으로, 중형항공사는 중형으로 각각의 역할을 나름대로 소화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역할분담론을 강조한다.

제주항공 역시 당장은 국제선 진출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국제선에 진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항공업계에서는 수년 후 제주항공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도 국제선 진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제주항공과 기존 항공사들과의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제주항공은 정기항공사
한성항공은 부정기항공사

"한성항공이 제주항공보다 먼저 출범했잖아요? 그런데 왜 늦게 태어난 제주항공이 제3민항인가요?"

제주항공을 제3민항으로 부르는 이유에 대해 일반인들이 궁금해 하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제주항공이 같은 '저가항공'을 표방한 한성항공과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가장 큰 근거는 제주항공은 '정기 항공사'이고 한성항공은 '부정기 항공사' 라는 것이다.

현행법상 항공사는 정기운송사업자와 부정기운송사업자로 구분된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정해진 장소를 운행하느냐로 둘은 갈린다. 따라서 이들 제주항공과 한성항공은 정체성 자체가 다른 셈이다.

회사 설립 요건에 있어서도 두 가지 사업자는 차이가 크다. 정기항공사가 되려면 항공기를 최소 5대 이상 보유해야 된다. 반면 부정기 항공사는 1대만으로도 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또 최초 설립자본금도 부정기 항공사는 50억원만 있으면 되고 몇 가지 요건을 갖추면 자동으로 등록되지만 정기항공사는 2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하다. 또 등록제가 아니고 운송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부정기항공사는 말 그대로 '부정기적으로' 운행해야 한다. 또 전세기를 운항하는 것처럼 건설교통부로부터 매달 운항 시간과 일자, 장소를 신고하고 승인받아야 한다. 일례로 부정기항공사가 운행 시각을 정확히 '3시'라고 표기하지 않고 '3시경' '3시 전후' 등으로 표시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부정기항공사는 전세기 형식의 운항만으로는 수익성을 맞추기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고속버스나 KTX 등에 비해 전세기 운항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공업계에서는 초기에 부정기항공사로 출범한 한성항공이 앞으로 시장 여건에 따라 정기항공사로의 전환을 모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