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감정·영상분석·마약감식 등 첨단 디지털 수사기능 갖춰

16일 오전 대검찰청 과학수사 제1담당관실 산하 문서감정실. 육안으로는 분명 3,100만원을 빌려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차용증서가 있다. 그런데 이를 어떤 기계 속으로 밀어 넣었더니 연결된 모니터에 나타난 차용증서에는 3자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다시 차용증서를 빼내 확인해 보니 3,100만원이라는 금액 그대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차용증서는 빌려준 쪽에서 당초 작성한 숫자 앞에 3자를 가필해 전체 금액을 위조한 것이다. 이를 밝혀낸 기계는 ‘다큐센터’라고 불리는 종합문서감정장비. 다큐센터는 일정한 파장의 적외선을 필적에 비췄을 때 잉크 성분이 다른 경우 반응하는 성질도 다른 점을 이용해 위ㆍ변조 여부를 판별해낸다. 한 대 가격이 1억원에 달하는 스위스제(製) 첨단 과학수사 장비다.

유경숙 문서감정실장은 “전국 검찰청에서 문서 위조나 변조, 사기 사건과 관련해 의뢰하는 문서 감정을 한 달 평균 300여 건 처리한다”며 “최근에는 감정관 개인의 노하우에 의존했던 필적 감정에도 디지털 분석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슷한 시각 영상분석실. 한 분석관이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운 수십 장의 동영상 정지 파일을 들여다보며 확대, 비교 작업에 몰두해 있다. 분석 대상은 검찰 수사관들이 범죄 용의자들의 행적을 원거리에서 추적하며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 분석관은 이 테이프에서 확실한 범죄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 것이다.

영상분석실은 범죄 수사와 관련된 사진, CCTV 테이프, VTR 테이프, CD-ROM, 마이크로 필름 등 일체의 영상물에 대한 화상 분석을 실시해 합성 및 조작 여부는 물론 인물 식별, 동일인 여부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 감정하는 일을 수행한다.

특히 디지털 영상개선 시스템을 이용해 CCTV 등에 찍힌 흐릿한 대상을 분석, 용의자 등과 대조 식별하는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범행 현장에서 찍힌 CCTV 테이프의 정밀 분석 자료를 토대로 피의자의 사진 등과 비교해 동일인 여부를 정확히 판별해낸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 영상분석실

국내 마약수사의 베이스 캠프

검찰은 마약수사와 관련해서 여타 기관에 비해 월등한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대검의 마약감식실은 국내 마약수사의 베이스캠프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마약감식은 크게 마약 사범의 소변이나 모발을 채취해 복용 여부를 감정하는 것과 압수 마약의 성분, 순도, 원산지 등을 감정하는 것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모발 감정은 복용 후 수개월이 지난 마약 성분도 감정할 수 있을 뿐더러 복용 시기 추정도 가능한 수준이다.

마약 범죄가 국제화하면서 압수된 마약의 원산지 및 유통 경로 등을 추적하는 마약지문감정(drug signature analysis)도 새로운 기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마약 범죄에 대한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일선 마약수사팀의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수사를 돕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검찰은 1998년 마약지문감정센터를 설립하고 마약지문감정 운용 프로그램인 ‘스마트프로’를 국내 기술로 개발해 2003년부터 본격적인 마약지문감정을 실시해 오고 있다.

현재 대검의 과학수사 업무는 이창세 과학수사기획관이 총괄하는 가운데 과학수사 제1담당관실에서 유전자감식실, 마약감식실, 문서감정실, 심리분석실, 음성분석실, 영상분석실, 수사장비실을 운영하고 제2담당관실에서는 디지털 자료 압수수색 지원과 디지털 증거 분석 및 복구 업무를 전담하는 체제다.

대검은 ‘디지털 증거수집분석 센터’(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2008년께 문열어 급증하는 경제 사건, 화이트칼라 범죄 등에 대한 디지털 수사 기능을 크게 강화할 방침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